새벽 운무에 쌓인 절집에 비구니의 맑고 청아한 독경소리 퍼지면…국내 최대 비구니 도량, 정갈하고 단아한 평지 가람

[주말이 즐겁다] 청도 운문사
새벽 운무에 쌓인 절집에
비구니의 맑고 청아한 독경소리 퍼지면…
국내 최대 비구니 도량, 정갈하고 단아한 평지 가람


사위가 어렴풋이 밝아오는 이른 새벽. 낙동정맥(洛東正脈)의 운문령을 넘어 운문산 기슭으로 들어서다 보면 천년의 세월을 인고해온 절집이 반긴다. 구름으로 들어가는 산문이라는 운문사(雲門寺)다.

첫 관문은, 신성한 가람으로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씻고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일주문이 아니다. 울창하게 들어찬 솔숲이다. 적당히 굽어 자란 홍송이다. 이른 새벽의 신선한 공기에 섞여 온몸을 휘감는 그윽한 솔향기…. 때마침 운문사 비구니 스님이 풀어놓는 법고 소리라도 들려온다면 세상의 번뇌는 모두 씻은 듯이 사라질 것만 같다. 어찌 형식적인 일주문에 비할 수 있으랴.

화랑 수련장이며 삼국유사 탄생한 도량
운문사는 신라 때 창건 당시에는 강건함을 상징하는 화랑도의 무예 닦는 소리가 온산을 쩌렁쩌렁 울리던 절집이다. 557년(진흥왕 18)에 한 승려가 북대암 옆에 작은 암자를 짓고 3년 동안 수도하여 창건한 후, 40여 년의 세월이 지난 600년(신라 진평왕 22) 이 절집을 중창한 원광법사는 이곳에 머물면서 점찰법회를 열고 화랑인 추항과 귀산에게 세속 오계를 내려줌으로써 화랑 정신의 발원지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당시는 신라가 불교를 중흥하고 삼국통일을 위해 국력을 집중하여 군비를 정비할 때였다. 즉 신라가 낙동정맥을 넘어 낙동강 유역으로 뻗어나가는 과정에서 운문사 일대는 전략상 중요한 병참기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 화랑 수련장도 만들어졌던 것이다.

또한 이 절집은 1277년 운문사 주지가 된 일연 스님이 5년 동안 머물면서 겨레의 위대한 유산인 ‘삼국유사’를 집필하였던 내력도 품고 있다. 옛 기록에 의하면 운문사의 절 동쪽에는 일연선사의 행적비가 있었다고 하나 아쉽게도 지금은 찾을 수 없다.

‘호거산 운문사’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범종루를 들어서면 소나무 한 그루가 제일 먼저 방문객을 맞는다. 운문사 보다도 더 유명한 처진 소나무(천연기념물 제180호)다.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으면서도 제법 품위가 넘친다. 매년 삼월 삼짇날 비구니 스님의 정성으로 열두 말의 막걸리를 마신다고 하는 처진 소나무의 수령은 400~500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상한 데가 거의 없이 언제나 푸르다.

조선 초기 형태의 강당 건물로는 가장 큰 규모라는 만세루에도 어느새 초여름의 아침 햇살이 비껴든다. 그 신선한 아침 햇살에 몸을 맡기고 거니는 비구니 스님들의 목소리는 해맑기만 하다. 앳된 비구니 스님의 맑은 눈망울엔 운문산 마루에 걸렸다가 훌쩍 날아가는 흰 구름이 담겨있다. 그렇구나. 세속의 일을 뜬구름처럼 여기고 불문에 들어섰기에 운문사(雲門寺)로구나.

운문사 작압전에 모셔진 석조여래좌상과 사천왕 석주는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운문사는 국내 최대 비구니 도량이자 비구니 강사를 전문으로 양성하는 국내 최초의 승가대학원이다. 현재 260여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이곳에서 공부하며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 청규(百丈淸規)를 철저히 실행하고 있다. 비구니 스님들이 머무는 도량이라 분위기는 언제 보아도 한없이 정갈하고 단아하다. 여기서 한때 삼국을 호령했던 화랑의 상무정신을 짐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호랑이가 의연하게 앉아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호거산(虎踞山) 아래의 넓은 분지인 장군평에 자리잡은 운문사는 평지 가람이다. 전체로 보면 남쪽의 운문산, 북동쪽의 호거산, 서쪽의 억산과 장군봉이 이룬 높고 낮은 겹겹의 높고 깊은 산줄기가 꽃잎처럼 감싸안은 형국이라서 운문사를 연꽃의 화심(花心)에 비유하곤 한다. 호랑이의 기세로 보면 화랑의 자리가 맞고, 연꽃이라 하면 단아함이 넘치는 비구니 도량이라는 점과 잘 어울린다. 이런 산세를 직접 보고싶다면 운문사 북쪽의 북대암에 오르면 된다. 바위 벼랑에 제비집처럼 자리 잡은 북대암에서 내려다보면 운문사는 연꽃 자리에 터를 잡았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만세루 앞 아담한 작압전(鵲鴨殿)은 석조여래좌상(보물 제317호)과 돌에 새긴 사천왕 석주 4개(보물 제318호)를 모신 당우다. 운문사에서 가장 작지만, 매우 의미 깊은 공간으로 꼽힌다. 1400여 년을 이어오고 있는 운문사 내력이 ‘작압’이라는 단어에 들어있다.

원광국사에 이어 930년에 보양국사가 두 번째 중창을 할 때 작압전이 유래했다. 창건 당시 작갑사(鵲岬寺)였던 운문사는 보양국사가 작갑사의 옛터를 찾아 절을 지을 때 까치떼의 도움으로 옛 절터를 확인했다. 보양국사는 절터에서 나온 벽돌로 탑을 세운 뒤 까치떼를 기념하기 위해 ‘까치 작(鵲)’에 ‘오리 압(鴨)’을 쓴 작압전을 지었다. 보물로 지정된 사천왕 석주는 당시 돌로 된 문설주에 사천왕을 새긴 것이 남아있는 것이라 한다.

* 숙식 운문사 입구에는 산채 비빔밥, 피라미 조림, 은어회를 맛볼 수 있는 식당과 민박집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운문사와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운문산자연휴양림(054-371-1323)은 운문사 답사와 더불어 쉬기 좋은 곳이다.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이라는 천혜의 자연자원 덕분에 여름철 피서는 물론 삼림욕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청도는 물 맑은 동창천과 청도천 덕에 오래 전부터 미꾸라지, 메기, 꺽지 같은 민물고기 요리로 유명했는데, 경부선 청도역 앞의 의성식당(054-371-2349) 등에선 유명한 추어탕을 맛볼 수 있다.

* 교통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게 가장 수월하다. 서울산 나들목→24번 국도(밀양 방면)→12km→삼거리(우회전)→69번 국가지원지방도(운문, 청도 방면)→운문령→운문산자연휴양림→운문사. 서울산 나들목에서 30~40분쯤 소요.


민병준 여행작가


입력시간 : 2005-06-22 15:14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