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꽂힌 '작업맨' 총각선생님의 좌충우돌 교생 정복기가벽고 쿨하게 그려낸 신인류의 연애풍속도

[시네마 타운] 한재림 감독 <연애의 목적>
필 꽂힌 '작업맨' 총각선생님의 좌충우돌 교생 정복기
가벽고 쿨하게 그려낸 신인류의 연애풍속도


'앙큼하게 버티고 뻔뻔하게 찝쩍 대고'라는 카피, 순수와 싱그러움의 심볼로 추앙받는 청춘 스타 박해일과 <올드보이>로 재능을 입증한 여배우 강혜정의 호흡, <결혼은, 미친 짓이다> <싱글즈>로 한국 멜로의 패러다임을 살짝 바꿔 놓았던 싸이더스의 도시 로맨스 3부작 중 마지막 작품. 이상만 놓고 본다면 <연애의 목적>은 현대 도시 젊은이들의 사랑관과 신인류의 감성에 부합하는 '쿨'한 로맨스를 담은 연애 영화처럼 보인다.

타에 모범이 돼야 할 교사들이 교육의 성지 학교에서 음탕한 '연애질'을 벌인다는 설정도 파격이지만 '양다리'도 불사하는 연애지상주의를 공공연하게 설파하는 배포 또한 예사롭지 않다. 영화보다 논문이나 보고서를 연상시키는 제목과 달리 <연애의 목적>은 주장하는 바가 뚜렷치 않은 혼란스러운 로맨스 영화다. 겉으로는 쿨한 척하지만 상대방 감정 재기에 여념 없는 인물들, '리얼리티의 미덕'으로 포장된 노골적인 묘사, 솔직하다 못해 도를 넘어버린 상황들이 감정 이입을 방해할 정도다.

연애에 대한 불손한 상상
<연애의 목적>은 학창시절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보았음직한, '총각 교사와 여교생 사이의 로맨스'를 실제로 보여준다. 오래 사귄 애인이 있는 총각 교사 이유림(박해일)은 분방한 자유연애주의자다. 술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는 유림은 역시 결혼할 남자가 있는 교생 최홍(강혜정)을 보고 한 눈에 필이 꽂혀 작업에 들어간다. 피차 임자 있는 몸들이지만 서로에게 부담주지 않는 선에서 연애만 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두 청춘남녀는 사귐의 단계로 넘어간다.

주변의 시선에도 크게 아랑곳하지 않던 둘의 연애 행각은 여관에서 함께 나오는 엽기 사진이 학교 인터넷 게시판을 도배하면서 위기를 맞는다. "또래 젊은이들의 최대 관심사인 '연애'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얘기해보고 싶었다”는 신인감독 한재림의 출사표처럼 <연애의 목적>은 요즘 젊은이들의 연애 풍속을 통해 우리 시대의 사랑관을 에누리없이 까발리려 한다. 감독은 '연애'의 감정을 '사랑'보다 가벼운 뉘앙스로 다룬다.

연애의 밝은 면만이 아니라 그늘까지 함께 다룸으로서 설렘과 환희, 불신과 증오가 뒤엉킨 연애의 실체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교사들의 로맨스라는 예민한 상황을 보여주는데 있어서도 퍽 대담하다. 방과 후 교실에서 서로의 몸을 더듬고 수업 시간에 아이들 몰래 스킨십을 하는가 하면 아이들의 아지트에 숨어 들어 밀어를 속삭이는 두 사람은 이제 막 타오르고 있는 연애의 정석을 골고루 보여준다.

특히 "난 더 이상 순수 청년이 아니에요"라고 항변하듯 느물거리는 작업남으로 변신한 박해일의 연기는 대담함 이상이다. 어린 왕자 같은 그의 순수한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던 숱한 여성 팬들이 배신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박해일은 현실적인 인물을 연기한다. 하지만 박해일의 의미 있는 변신을 보여준 것을 제외한다면, '이유림'은 논란을 낳을만한 문제적인 캐릭터다.

목적이 의심스러운 연애의 흉계
이유림은 흑심이 동한 여자와의 하룻밤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음험한 수컷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무조건 솔직하고 대담하다고 해서 만인이 공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유림은 솔직하게 욕설을 내뱉고 솔직하게 폭력을 휘두르고 솔직하게 가택 침입을 감행하고 솔직하게 여심을 희롱한다. 교생 최홍에게 마음이 동한 유림은 단 둘이 가진 술 자리에서 허겁지겁 조개탕을 먹는 홍에게 "조개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나는 다른 조개 먹고 싶은데..." 라는 음흉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여자와 갖는 처음 술자리에서 건넨 그 말은 유머라기보다 언어 폭력 또는 성희롱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보기 좋은 그림으로 영화를 포장하고 해맑은 순수 청년 박일?연기했다간옳漫?유림의 죄과가 무마되지는 않는다.

이유림은 스토킹에 성희롱, 강간, 공갈, 협박은 물론,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 학생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파렴치한이다. 감독은 '이 영화의 목적은 모범적인 교사상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연애의 행태와 감성을 가치 중립적으로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백번 양보해서 그런 개판 오분 전까지 간 교사가 있다고 치자. 실제로 이보다 더한 선생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하지만 관객들이 그런 망나니를 극장에서 돈 주고 봐야 할 이유는 없다. 적어도 관객은 감독이 창조한 인물에 대한 설득력 있는 '동기화'를 원한다. 유림은 처음에는 호감을 주지만 갈수록 동일화 하기 힘든 역겨운 행태로 일관한다. 애정공세로 치장된 그의 막무가내식 행각을 보고 있노라면 황당하고 때로는 기가 차며, 어느 순간에는 불쾌해지기까지 한다.

난봉꾼에 가까운 막가는 캐릭터를 열정적인 사랑의 전령사로 포장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연애의 목적>은 신선한 연애의 법칙을 제시하는 척 잔뜩 폼을 잡지만 실은 허다한 연애 영화가 보여준 흔해 빠진 설정에 투항하고 만다. 알고 보니 최홍은 못된 놈 만나 몸 빼앗기고 돈 빼앗기고 잠(그녀는 불면증환자다)까지 빼앗긴 '가련한 여인'이었던 것이다.

듣기만 해도 하품 나는 고전적 수법에 당한 이 여인은 '누구나 비밀은 있고 결국 연애는 덧없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고 불면증에서도 벗어난다. 연애에 대한 가벼운 깨달음도 주지 못하는 도식적인 결말도 문제지만 뻔뻔하고 몰염치한 행태를 '사랑' 또는 '연애'의 들끓는 감정과 혼동하는 것은 더욱 치명적인 한계다.

결국 남는 것은 연애의 ‘목적’ 보다 연애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신인류의 연애 풍속을 정의해 보겠다는 거창한 야심을 품었던 <연애의 목적>은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면 곤란하다는 평범한 진리만을 남길 뿐이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5-06-22 15:55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