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젤 수염 닮은 여름산의 신사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큰까치수영
카이젤 수염 닮은 여름산의 신사

한여름 산행 길에서 어김없이 만나는 꽃이 있다. 작고 예쁜 꽃송이들이 모아져 마치 카이젤 수염처럼 멋지게 늘어진 꽃차례를 만든다. 꽃은 흰색이어서 수염으로 치자면 나이든 수염이지만, 그 같은 모습이 더없이 풋풋하고 싱그러워 한여름 산행의 큰 기쁨이 된다. 바로 큰까치수영이다.

큰까치수영이란 이름은 그냥 ‘까치수영’보다 꽃차례가 큰데다 꽃이 피어나고 열매가 익어가면서 더 길고 크게 자라니(40cm 까지도 자란다) 앞에 ‘큰’자를 붙였고, ‘수영’자가 붙은 것은 바로 이 길게 늘어난 꽃차례의 모습이 수염 같다 하여 수염으로 부르다가 수영이 된 것일 터이다. 다만 왜 그 앞에 까치가 붙었는지는 알 수 없다. ‘까치는 까마귀에 비해 배의 색깔이 희니 흰 꽃이 피어 그리 붙은 걸까’라고 생각만 해보는 정도가 나의 얄팍한 상상력의 한계다.

큰까치수영은 앵초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이 식물이 살지 않은 산이 있을까 싶을 만큼 전국의 어느 곳엘 가나 볕이 드는 풀밭이나 숲 가장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이웃 일본이나 중국, 러시아까지도 분포한다. 산에서 만나면 보통은 까치수영이라 부르지만,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식물은 큰까치수영이다. 앞에서 말한 차이점 말고도 까치수영의 잎이 더 좁고 둥글며 갈색의 잔털이 나 있어 비교적 쉽게 구별할 수 있다.

키는 보통 허벅지 높이쯤 큰다. 줄기엔 손가락 보다 긴 타원형의 잎들이 어긋나게 달려있다. 어떤 이는 이 큰까치수영의 잎을 보고 부들부들해서 참 순박하고 착하게 보인다라고 했다. 정말 그러고 보면 그래, 우리 꽃이며 우리 잎이려니 싶어진다.

꽃은 초여름에 피기 시작하여 한 여름 내내 볼 수 있는데 이렇듯 개화기가 긴 것도, 한 여름에 시원한 흰 꽃들이 질리지 않게 잔잔하게 피는 것도 모두 큰까치수영이 가지는 장점이다. 꽃 한 송이의 지름은 손톱보다도 작지만 수염 같은 꽃차례의 길이는 다 자라면 한 뼘 정도 까지도 큰다.

쓰임새로 치면 까치수영과 큰까치수영이 대동소이하다. 잎은 어릴 때 나물로 먹는다. 그냥 먹지는 않고 대게는 봄에 채취한 어린잎을 삶아 우려내고 말려 나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잎을 그냥 씹어 보면 약간 새콤한 신맛이 나 약으로도 이용되었다. 생약 이름은 진주채(珍珠菜)라고도 하고, 낭미화피(狼尾巴花)라고도 쓴 기록이 있다. 생리불순이나 인후통, 신경통 등의 증상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요즈음엔 관상자원으로 관심을 모은다. 아주 화려하거나 특별하지 않아 작은 분이나 절화용으로는 부족한 점이 있지만, 여름 정원을 우리 꽃으로 장식하려면 큰까치수영 한 무리정도 심어 놓으면 분위기가 아주 자연스러워 좋다.

큰까치수영을 또 큰가치수염, 민까치수염, 홀아빗대 등 여러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특히 큰꽃꼬리풀은 북한에서 부르는 이름이라고 한다. 한 꽃을 두고 꼬리처럼 보기도, 수염처럼 보기도 했다는 이야기다. 식물이름에 남북한이 다른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아 통일이 되면 무얼 고를까 혼자 고민을 해보기도 한다. 보통 북한 이름은 우리말로 붙인 경우가 많아 정이 갈 때가 많지만, 이 식물은 천상 큰까치수영이다. 꽃꼬리풀도 고운 이름이지만 꼬리풀이란 이름을 가진 다른 식물집안이 있으니 헷갈릴까 해서다. 식물이름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이야기와 고민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재미이기도 하다.

입력시간 : 2005-07-1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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