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타운] 장진감독 <박수칠 때 떠나라>


영화 장르에는 ‘관습’이라는 게 있다. 서부극의 총잡이는 악당을 물리친 후 홀연히 마을을 떠나고 멜로드라마의 남녀 주인공은 온갖 역경을 물리치고 사랑을 성취하며 10대 공포영화에서 문란한 성생활을 즐기는 10대 소년, 소녀들은 반드시 죽임을 당한다는 따위의, 반복적으로 쓰여 관객들이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장르의 공식을 ‘관습’이라 한다. <박수칠 때 떠나라> 같은 수사 드라마에도 관습은 있다.

범죄의 배후를 밝혀가는 과정이 미스터리한 방식으로 처리되고 마지막에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 예비된다는 것이 그 관습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이런 장르의 관습을 충실히 지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공식이 깨지기 위해 존재하듯, 장르의 관습도 언젠가는 깨지고 말 규칙이다. 아니나 다를까, <박수칠 때 떠나라>에는 이런 장르 공식에 대한 위반도 있다. 관습이 깨졌을 때 관객들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신선하다’, 다른 하나는 ‘어설프다. 이게 뭐냐’다. 관습의 파괴가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줬을 때 전자의 반응이, 의도를 알 수 없는 엉뚱한 방향으로 굴절될 때 후자의 반응이 나온다. 미리 결론짓자면, <박수칠 때 떠나라>는 전자가 될 뻔했지만 후자로 귀결된다.

버라이어티 리얼 수사쇼

<박수칠 때 떠나라>는 2000년 동명의 연극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장진 감독의 작품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재능 있는 문화기획자이자 연극연출가, 영화감독인 장진은 현재 극장가에서 선전 중인 <웰컴 투 동막골>에 이어 자신이 쓴 희곡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연출했다. 강남의 한 고급 호텔에서 미모의 여성이 칼로 9군데를 난자당한 시체로 발견된다. 일명 ‘정유정 살인사건’이라 이름 붙여진 살인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열혈 검사 최연기(차승원)이 나서고 사건 발생 한 시간 만에 유력한 용의자 김영훈(신하균)이 검거된다.

강력하게 범행 사실을 부인하는 용의자 영훈과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살인사건을 실시간 생중계하는 미디어, 살인사건 당시 호텔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이 모아지면서 정유정 살인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용의 선상에 있던 인물들의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사건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굴절된다. 5년 전 연극 <박수칠 때 떠나라>의 주인공은 최민식과 무명 시절의 정재영이었다.

정재영은 영화에서도 카메오로 특별 출연해 재미를 더하는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한다. 장진 영화의 관건은 늘 하나였다. ‘이야기꾼 기질을 타고난 그가 연극으로 단련된 자신의 스타일을 영화에 녹여내는가’가 문제였다. 연극적인 세팅과 연기, 연출 스타일을 영화적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전작들에 비해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와 남녀 간의 로맨스를 캐릭터 중심으로 끌고 간 <아는 여자>가 평단의 호평을 받은 이유도 여기 있다.

<박수칠 때 떠나라> 역시 연극으로서 장점이 많았던 원작의 재미를 어떻게 스크린 위에 살려내는가에 초점이 모아졌다. 원작의 테마는 미디어의 과장법에 의해 왜곡되고 실종돼버린 진실이다. 하지만 영화가 무엇을 주장하고 싶은 것인지는 모호하다.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영화의 제목이 사건 해결의 단서(후반부 반전의 핵이기 때문에 그 실체를 여기서 발설할 수는 없다)가 되기는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은 남는다. 중제: 중심이 없는 산만한 헛다리 짚기 달리 말 할 것도 없이 장진에게 <박수칠 때 떠나라>는 색다른 선택이었다.

조롱과 희화화의 대가인 그가 미스터리 드라마라는 본격 장르 영화에 도전장을 던졌다는 것부터가 그렇다. 하지만 ‘리얼 수사극’이라는 장르를 표방한 이 영화는 결과적으로 리얼한 수사극은 되지 못했다. 수사 드라마의 외피를 쓰긴 했지만 <박수칠 때 떠나라>에는 특유의 장진식 유머 감각이 오롯이 남아있다.

중심 없는 산만한 헛구성에 쓴 웃음

살인 사건을 쫓아가는 검사의 추리와 속도감 넘치는 사건 전개, 중계 방송과 TV 토론을 통한 미디어의 광란을 묘사하는 초반부는 그런대로 볼 만하다. 문제는 용의 선상의 인물들이 정체를 드러내고 사건이 뒤엉키기 시작하면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하는 이야기다. 사건 발생 한 시간 만에 강력한 용의자가 잡힌 명쾌해보이던 사건 수사는 시간이 갈値?초점이 흐려진다. 초점이 흐려지는 현상은 영화의 구성 요소들에서도 확인된다.

선정적인 이슈에 부화뇌동하는 매스 미디어, 허명 뿐인 과학 수사의 허구성에 비해 초자연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미신과 주술의 힘(영화의 마지막에 무당을 불러 범인을 색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CCTV와 폐쇄회로로 대표되는 현대적인 감시, 통제 시스템에 대한 비판 등 너무 많은 맥락과 의도가 난무한다.

산만함은 장진 영화의 전매 특허였지만 이 영화에서는 도를 넘은 듯한 느낌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의 기본 전략은 ‘헛다리 짚기’다. 장진은 이 영화의 운명이 태생적으로 그런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목적은 사건의 해결이 아니라 사건의 핵심은 사라져버린 채 그걸 쫓다가 황망하게 버려지는 인간들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명백하게 해결되는 미스터리가 아닌 혼란에 빠져가는 상황과 허망한 결론은 미스터리 장르의 관습을 통째로 배신한다. 물론, 이것은 장진의 의식적인 전략이다. 그런 이유로 미스터리나 스릴러의 긴박한 재미를 쫓는 관객이라면 분명 이 영화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들만이 장진의 팬은 아니다. 그의 부조리 유머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쓴웃음을 지으며 볼 수 있는 영화다. 미궁에 빠진 미녀 살인사건만큼 장편 상업영화를 다섯 편이나 만든 감독이 여전히 중심 없는 이야기에 끌린다는 것도 미스터리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5-08-17 19:40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