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함을 정화시키는 순수의 향기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백련
탁함을 정화시키는 순수의 향기

가까운 곳에 백련을 심어 유명한 사찰이 하나 있다. 논 몇 마지기에 들어앉은 연 밭, 그 중에서도 온통 하얗게 피어나는 연꽃 무리를 보는 일은 참으로 행복하다. 그 연꽃들도 이제 꽃잎을 떨구고 하나씩 하나씩 연밥으로 익어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특별히 이번 여름에는 오래 전부터 해보고 있었던 일을 갑자기 체험하게 되었는데 바로 백련차를 마시게 된 것이다.

오래 전 한국일보 칼럼에도 한 번 소개한 적이 있는 충청도의 작은 사찰에 계신 스님의 이야기다. 이 분은 사찰 주변에 백련(白蓮), 즉 흰색의 꽃을 피우는 연꽃을 키우고 계신다.

물론 늘어난 연뿌리를 주변에 나누어주는 일도 그 스님의 중요한 일 중의 하나다. 백련은 탐스럽게 핀 꽃송이의 미려함이 그 어느 꽃에 비기기 어려울 만큼 곱기도 하지만, 꽃 한 송이가 풀어내어 놓는 꽃 향기의 그윽함과 풍부함이 더욱 특별하다.

그 스님은 백련이 피고 지고 다시 계절이 바뀌어 세상이 하얗게 눈이 덮여 버리는 어느 날이면, 마음이 닿는 가까운 몇 사람을 초대한다.

일어서면 천장이 닿고 바로 눕지도 못할 그 단촐한 산사에 지인들이 모이면 방 한 가운데는 적당한 온도의 찻물이 담겨진 커다란 오지 그릇이 놓이고, 그 찻물 위에 백련이 띄워져 다시 한번 꽃을 피운다.

이미 지난 여름 절정이었던 백련이 다시 피기 시작하면 찻잎을 망사에 담아 넣고 꽃잎을 포개어 밀봉해 얼려 두었다가 꺼내어 뜨거운 찻물 위에 띄우면 백련은 다시 한번 차례차례 꽃잎을 펼쳐내고, 그 향기는 온 방안을 진동한다.

찻잔에는 연향(蓮香)을 가득 담은 찻물이 녹아 내리고, 그 차를 함께 나누는 사람들의 맑은 마음이 있고, 문밖에는 소리도 없이 눈이 내린다. 이 일은 스님이 1년에 딱 한번 누리는 호사다.

겨울은 아니지만 바로 그 백련차를 마시는 호사를 누려보게 되었으니 어찌 감동스럽지 않을까.

연꽃은 수련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연꽃은 주로 분홍색이지만 꽃 색이 다른 품종들도 적지 않은데, 백련은 그 중의 하나다.

워낙 오랫동안 불교문화 속에서 살다 보니 그저 우리 식물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땅에 자생지는 없다. 하지만 이 땅의 연꽃에 담긴 우리 마음을 생각해 보면 우리 꽃이라 한 들 누가 무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연꽃의 자생지는 아시아 남부 등 여러 설이 있지만 명확치 않다. 중국에서 연꽃의 고향이 발견되었다고도 하고, 일본에서는 도쿄에서 발견된 연꽃의 씨앗이 2,000년 만에 싹을 틔웠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을 보면, 현재 원산지를 따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잘 아는 식물이지만 수련과 구분을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수련은 방패형의 잎이 한쪽이 갈라져 수면 위에 떠서 크지만, 연꽃은 잎을 물위로 한참 올려 자라므로 꽃이 없어도 쉽게 구분이 가능하다.

꽃잎이 떨어지고 무성하던 노란 수술이 누렇게 늘어지고 나면 꽃턱이 나온다. 우리가 흔히 연밥이라고 부르는 씨앗을 담고 있는 열매다. 잎, 줄기, 뿌리 모두 약에 쓰고, 뿌리는 그 유명한 연근이다.

연꽃하면 불교가 떠오른다. 불교에서 이 꽃을 귀히 여기는 이유는 더러운 물에 살지만 꽃이나 잎에 그 더러움이 묻지 않는 것이 그 첫째 이유라고 한다.

한 해 한해 세상을 살수록 자신을 더럽히지 않고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기에 오늘 져가는 그 연꽃 잎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겠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 2005-08-29 16:50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