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마음을 열고 들어선 그곳은 전설의 땅

[주말이 즐겁다] 청송 주왕산 트레킹
눈과 마음을 열고 들어선 그곳은 전설의 땅

낙동정맥에 솟아있는 청송의 주왕산(周王山ㆍ721m)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렘으로 가득 찬 여정이다. 기묘한 자태로 솟아있는 암봉 사잇길을 거닐며 포도송이처럼 주저리주저리 열린 주왕의 전설을 듣다 보면 나그네는 어느덧 오래된 전설의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전설의 산길 끄트머리에는 이제 곧 추억 속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한 오지마을 내원동이 있다.

주왕산의 상징으로 대접받는 기암

주왕산 상의매표소를 통과하자마자 오른쪽으로 대전사(大典寺)가 반긴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승군을 훈련시키기도 했던 절집이다. 보광전 안에는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이 유정에게 보냈다는 친필 서신을 새긴 목판이 보관되어 있다.

보광전의 용마루 너머로는 웅장한 기암(旗岩)이 솟아 있다. 주왕산 수문장이면서 주왕산의 상징으로 대접 받는 기암은 그 옛날 주왕이 깃발을 세웠다는 전설이 서린 바위다.

조선시대 최고의 인문지리학자인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골이 모두 돌로 되어있어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며 샘과 폭포가 절경’이라고 극찬한 주왕산은 조선시대에는 조선 팔경에 꼽히기도 했는데, 주왕산이 이렇게 대접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뚝 솟은 기암 덕택이다.

대전사에서 주방천 계곡 길을 1.3km 걸으면 제1팔각정 앞 갈림길이다. 왼쪽 길은 제1폭포로 곧장 이어지고, 자하교를 건너는 오른쪽 길은 주왕암과 주왕굴을 들른 뒤 제1폭포로 갈 수 있는 코스다.

자하교를 건너 300m쯤 올라가면 우람한 나한봉에 안겨있는 주왕암(周王庵)이 나온다. 통일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암자다. 여기서 200m 정도 오르면 전설의 주왕굴과 만난다. 주왕이 마장군을 피해 숨었다가 붙잡혔다는 곳이다. 주왕암 가학루 앞에서 산길을 에돌아 조금만 올라가면 주왕이 갑옷과 무기를 숨겼다는 무장굴도 볼 수 있다.

주왕암 앞에서 ‘자연산책로’라는 푯말이 붙어있는 산길을 따른다. 산책로라는 이름대로 어린이도 안전하게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길이 평탄하다.

도중에 만나는 전망대에 오르면 하늘을 찌를 듯 솟은 급수대와 연화봉, 그리고 장군봉의 수려한 자태를 한 눈에 담을 수 있으므로 이 자연산책로 코스를 빼먹으면 서운하다. 자연산책로는 700m 정도 이어지다가 제2팔각정이 있는 주 등산로와 다시 만난다.

제2팔각정 앞에서 나무로 만든 계단을 밟으며 200m 올라 웅장한 바위 사이의 협곡을 빠져나가면 문득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선녀폭포라고도 불리는 주왕산 제1폭포. 낙차는 그리 크지 않으나 거대한 암벽이 공명 장치 역할을 하고 있어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가 제법 큼직하게 들린다.

여기서 1㎞ 더 올라가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쪽 길을 따라 200m 들어가면 오솔길 끝에 걸려있는 제2폭포(용폭포)를 만날 수 있다.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는 2단 폭포인데, 비 온 뒤 수량이 많을 때는 접근이 어렵다.

갈림길로 되돌아 나온 뒤 주 등산로를 따라 200m 오르면 드디어 제3폭포다. 2단으로 쏟아지는 이 폭포는 일명 쌍폭포로도 불리는데, 전체 높이가 22m로 주왕산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폭포다.

상단과 하단 감상처에 각각 전망대를 설치해 놓았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수가 발길과 눈길을 붙들지만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다. 30분 정도만 더 걸으면 전기도 없고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오지마을인 내원동 마을에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도 없고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오지마을

제3폭포를 지나면 언제 협곡을 지나왔냐는 듯 갑자기 골짜기가 넓어진다. 마치 어릴 적 외갓집에 가는 듯 정겨움이 넘치는 길을 따르다 보면 어느 순간 탁 트인 분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내원동이다.

주방천 최상류 8만 평 넓은 분지에 자리잡은 내원동은 청송의 마지막 오지마을이다. 이 마을은 6ㆍ25전쟁 직후에는 한 때 70여 가구 500여 명이 모여 살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당시엔 마을에 양조장까지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 1960~70년대 근대화 바람이 불면서 주민들은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고, 지금은 7가구 18명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한때 고향을 잃은 현대인들에게 포근한 추억을 만들어주던 이들도 이제 곧 내원동을 떠나야만 한다. 내원동은 1990년대에는 전기도 없는 오지마을로 유명세를 떨쳤으나 관광객이 몰리면서 무허가로 음식을 팔았던 게 화근이었다.

수질이 오염된다는 민원을 접한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올해 안에 마을 전체를 이주시키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결국 올 가을이 내원동에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마지막 가을인 셈이다.

트레킹 정보:주왕산에는 여러 코스의 등산로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의매표소~대전사~주왕암~급수대~제1폭포~제2폭포~제3폭포~내원동 코스는 길이 제법 널찍하고 완만해 노약자나 유치원생 정도의 어린이도 무리 없이 다녀올 수 있는 산책로 같은 트레킹 코스다. 왕복하는 데 4시간 정도 걸린다. 입장료 어른 개인 3,200원. 주왕산 관리사무소 전화 054-873-0014.

교통:△서울→중앙고속도로 서안동 나들목→34번 국도→안동→35번 국도(영천 방향)→길안→914번 지방도→청송읍→31번 국도(영천 방향)→청운리 삼거리(좌회전)→914번 지방도→주왕산. 수도권에서 4시간30분~5시간 소요. △동서울→주왕산=매일 5회(08:40 10:20 10:50 14:20 15:00)운행. 4시간 소요.

숙식:주왕산 입구에 명일식당(054-873-2904), 주왕산장(054-873-5511), 주왕산가든(054-874-0088) 등 식당과 민박집이 많다.


글·사진 민병준 여행작가


입력시간 : 2005-08-29 17:19


글·사진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