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를 내려놓고 돌아앉아도 歌人의 삶은 버리지 못했다

포크가수 한돌 14년 만의 콘서트
기타를 내려놓고 돌아앉아도 歌人의 삶은 버리지 못했다

언제부턴가 이 땅엔 마음에 위안을 주는 노래보단 상품가치가 있는 상업적 노래만이 주인행세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진지하게 자신의 창작곡을 발표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은 상품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거대 기업화된 시스템에 꺾여 활동을 중단하거나 심산유곡으로 숨어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노래는 실종되고 현란한 춤과 의상과 외모만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에 따라 ‘계층을 초월해 들을 만한 노래가 없다’는 소리만 요란하다. 그 누구의 탓이건 실제로 최근 발표되는 노래는 온통 추억으로 무장한 리메이크판이고 표절도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현실 속에서도 음악의 순수성을 잃지 않고 관객과 함께한 무대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8월27일 토요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어울림 별모래극장. 한적하던 공연장이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입장하는 관객층이 특이했다. 야광등을 든 10대들의 괴성과 환호는 없었지만 부모의 손을 잡고 오는 어린이부터 머리가 희끗한 노년층까지 다양했다.

누구의 공연이었을까. ‘홀로 아리랑’, ‘개똥벌레’, ‘여울목’, ‘꼴지를 위하여’, ‘유리벽‘, ’터‘등 80-90년대를 수놓았던 주옥같은 포크송 뿐 아니라 동요음반 ’하늘 아이들‘을 발표했던, 가수보다는 작곡가로 유명한 한돌의 컴백공연이다.

그가 공식적인 공연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1991년 김민기씨가 운영하는 대학로 학전개관 초청공연이후 처음이다. 활동을 중단하지 14년만의 컴백공연이기 때문일까, 공연시작전엔 사뭇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공연을 앞두고 만난 그에게서 조동진과 함께 80년대 포크음악의 양대 거목이었던 위용을 찾기는 힘들었다.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아이고 힘들어. 처음엔 덤덤했는데 연습을 할수록 부족한 것이 확연하게 느껴져 오랜만에 무대에 오르려니 지금은 너무 떨려죽겠어.” 지난 6월말부터 2달간 16차례의 지독한 연습으로 오늘을 준비했건만 그는 신인가수처럼 음악적인 부족함을 토로했다.

음반을 마지막으로 낸 것도 12년전인 1993년. 그 동안 음악활동 중단은 물론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모든 음반을 파기시켜버린 그다.

“활동을 완전히 중단한 1994년부터 2002년까지 압록강, 백두산, 두만강 지역을 5번이나 다녀왔다. 당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노래가 떠났던 마음이 마비된 시절이었다. 아름다운 것을 봐도 아무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노래를 만들려 해도 완성을 할 수가 없었기에 아예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다시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은 지난 해 봄부터. “지난 2004년 봄에 지리산을 방문했는데 갑자기 봄눈이 내렸다. 그때 아름답다는 생각이 저절로 생겨나면서 노래가 완성되었다.”

다시금 창작의 물고가 트였을 즈음 청개구리 포크공연을 운영하는 김의철로부터 공연을 제의받았다. 그와 음악적인 교류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싶은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크게 뭘 보여준다기 보다는 이제는 노래랑 헤어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무대에 올랐다. 자신있게 뭘 이야기한다기보다는 그야말로 다시 시작하는 무대였다"고 설명했다.

광복60주년에 걸맞게 공연타이틀은 통일을 주제로 한 '금강초롱을 찾아서'. 한돌의 음악은 신음하는 온 국토를 발로 뛰며 체험한 소중한 경험으로 얻어진 노래들이기에 노래 한곡 한곡에는 숨겨진 사연이 많다.

장내가 어두워지고 50을 훌쩍 넘긴 중년의 한돌이 기타를 들고 등장했다. 첫 곡은 ‘용서의 기쁨’. 지리산 종주때 저체온증에 걸려 사지를 넘나들다 회복했을 때 본 아름다운 초록의 산을 담은 노래다.

그는 노래가 만들어진 사연을 직접 관객에게 들려준 후 노래를 시작했다. 관객들과의 교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새로운 시도였다. 작품 발표회 형식으로 치러진 컴백공연은 그의 대표 곡들인 ‘금강초롱’, ‘홀로아웝。?‘꼴지를 위하여’, ‘터’등과 앵콜곡 ‘개똥벌레’까지 총 19곡이 불려졌다.

미발표곡도 많았다. 목포에서 임진각까지 도보 국토순례 때 만든 ‘밑으로 흐르는 길’, 폐교를 주제로 만든 ‘아무도 없는 학교’, 정신대 할머니를 상징하는 ‘도라지꽃’과 백두대간을 노래한 ‘한뫼줄기’등 4곡이다.

백두대간을 우리말로 표현한 공연 엔딩곡 '한뫼줄기'는 무려 8년이 걸려 완성한 사연 많은 곡. ‘홀로아리랑’,‘ 터’ 같은 노래는 통일의 염원을 담았다면 이 노래는 통일이 된 후의 상황을 노래한 곡이라 한다.

게스트로 출연한 ‘소리의 마녀’ 한영애가 ‘여울목’과 더불어 한돌과 함께 ‘고운동 달빛’을 불렀다. ‘고운동 달빛’은 1993년 한돌이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함께 발표했던 환경보호를 외쳤던 노래.

웅장했던 스케일의 노래였기에 혼성 듀엣의 단촐한 구성이 걱정되었지만 전혀 새롭게 풀어낸다. 멀리 일본에서 온 재일동포가수 이정미와 어울림 합창단 어린이들과 함께 노래한 ‘홀로아리랑’은 온통 동심으로 가득했다. 이날 한돌의 음악은 이전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직장인 김용권씨는 “예전보다 한층 차분해지고 클래식적인 분위기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홀로아리랑, 개똥벌레는 대중적인 노래라 좋아했었는데 오늘 공연은 자신만의 색깔과 사상이 집중되어 대중성은 소외된 듯 해 자칫 마니아들을 위한 음악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만든 음반이 어린 날의 일기처럼 부족하고 창피해서 다 없애버렸다는 한돌. 그래서 이번엔 하고 싶은 표현대로 음악을 했다. 공연 후 그는 “내 생각대로 대중에게 변모한 음악이 잘 전달되었는지 걱정이 된다.

하지만 적어도 내 음악을 좋아했던 사람들은 더 좋아하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고 안도하는 표정이다. 시인 최은영씨는 ”독도문제가 전 국민의 이슈로 들끓을 무렵, 가수 한돌보다 ‘홀로 아리랑’을 먼저 알게 되었다. 가사나 곡이 어찌나 가슴을 파고 드는지 한달 가까이 그 노래에 푹 빠져 지냈다.

콘서트에서 만난 한돌님은 단순히 ‘홀로 아리랑’만을 부른 가수만은 아니었다. 마음이 절로 맑아지는 곱고 아름다운 노랫말들. ‘가시 담’, ‘고운동’ ‘사잇섬’등 그만이 찾아 낸 시어들이 인상적이었고 단순히 고운 노랫말만 이었다면 감동은 덜 했을지도 모른다.

민족의 뼈아픈 과거를 일깨우고 우리의 정체성을 찾자는 것, 훼손되어 가는 자연의 신음소리를 들려주며 역사와 자연, 생명사랑의 의식을 일깨워주는 메신저였다. 가수 한돌에게 한층 더 매료된 감동의 밤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컴백공연은 매진사례를 기록할 만큼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인기가수들도 더 이상 음반을 만들어 발표하길 꺼려하는 요즘, 그의 컴백을 반기는 열성 포크팬이라고 자신을 밝힌 김민성씨(46)는 “돈이 되지않는다고 다 노래판을 떠나는 지금 바보같은 그는 돌아왔어요.

노래의 상품성보다 음악만 생각하는 것 같아 더욱 반갑지만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합니다”라고 한돌의 향후 음악활동을 걱정했다.

여하튼 가수를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은 곧 배고픈 일이 되버린 지금, 잘나가는 가수들 조차 연기자로 엔터테이너로 먹고 살길을 찾는 지금, 한돌은 돌아왔다.

그의 노래를 오랫동안 듣고 싶기에 이 땅에 상품으로서의 노래와 가슴으로 노래하는 노래가 모두 공존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노래다운 노래, 삶의 정성이 들어간 노래가 적어도 멸종이 되서는 안되지 않을까.

그렇담 인터넷으로 음악을 듣다가 가슴을 치는 노래가 있다면 음반 한장을 사주는 건 어떨까. 그런 작은 마음이 모여 혹 큰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우린 앞으로 수십년간 듣고 싶은 노래를 계속해 들을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컴백공연날 꽉 찬 객석은 아직 이 땅엔 진짜 노래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인 듯 해 우울하지만은 않았다. 공연 후 한돌은 “옛날과 차별을 두기 위해 모든 노래를 재해석했다. 이전과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을 것이다.

사실 크게 뭘 보여준다기 보다 이제는 노래랑 헤어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야말로 다시 시작하는 무대였다”고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글·사진 최규성차장


입력시간 : 2005-09-07 10:57


글·사진 최규성차장 ks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