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없는 행복한 10년 실험

열정의 음악 공동체 화음체임버오케스트라
지휘자 없는 행복한 10년 실험

명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일화 하나. 어느날 리허설을 하다가 토스카니니가 더블베이스 주자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장 나가! 넌 해고야.” 조용히 악기를 싸들고 나가던 더블베이스 주자가 한 마디 했다. “토스카니니, 넌 개새끼야!”

이 격한 에피소드는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의 위상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지휘자가 누구냐에 따라 연주가 달라질 만큼 지휘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보니, 지휘자는 애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많은 음악 조크 중에는 지휘자를 곯리는 게 많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한 오케스트라 단원이 사무실에 전화를 했다. “지휘자 좀 바꿔주세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말.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이 단원이 같은 전화를 계속 한다. “돌아가셨다는데, 왜 자꾸 전화하세요?” 답이 걸작이다. “그 말이 듣고 싶어서요.”

이런 독재형 지휘자는 토스카니니 같은 전설적 거장들의 시대 이야기다. 요즘은 단원들을 존중하고 설득하면서 음악을 만들어가는 민주주의형 지휘자가 많다.

하지만 지휘자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를 상상할 수 있을까. 구소련에서 공산혁명 직후 잠깐 그런 시도가 있었다.

음악은 평등해야 하니 지휘자 없이 해보자고 했다가 음악 해석과 레퍼토리 선정에 너무 시간이 걸려서 포기했다. 하기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갈 수 있다.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는 선장 없이 표류하는 배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100명의 대형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30명 안쪽의 체임버급 오케스트라는 어떨까. 이 때도 누군가 지휘를 하거나 지휘자가 없더라도 악장이 주도하고 단원들은 따라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지휘자 없이 출발한 우리나라 단체가 있다. 내년이면 창단 10년이 되는 화음체임버오케스트라다.

19명의 현악 주자로 이뤄진 이 작은 오케스트라는 지휘자의 지시 대신 4명의 리더를 중심으로 단원들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해서 음악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방식을 택했다.

멤버 들은 아무런 인맥이나 이해 관계 없이 오직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만으로 모였다. 모두 동등한 인격적 관계로 만났기 때문에 서열 같은 건 없다.

리더라고 해서 권위를 내세우는 법도 없다. 연습 중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격론이 오간다. 합주는 서로 양보하고 절제하는 게 미덕으로 통하지만, 이들은 각자의 개성을 최대한 살리고 능력과 열정을 조화시키면서 함께 큰 그림을 그려왔다. 이런 방식은 국내에 유례가 없다. 외국에서도 28명의 체임버 오케스트라 ‘오르페우스 앙상블’이 거의 유일하다.

지휘자 없이 잘 굴러갈 수 있을까. 말이 좋아 민주적 공동체이지 앙상블이 제대로 되기나 할까. 의심하는 눈길이 많았다. 학벌 따지고 인맥 따지고 권위 챙기는 한국 사회 풍토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들 했다.

하지만 실험은 성공했다. 국내 대표적인 연주단체로 성장했고 세계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멤버들은 행복해 보인다.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로 만들어낸 음악인 만큼 ‘내 것’ 이라는 애착이 크고 자부심도 대단하다. 처음에는 힘들었다고 한다. 합의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연습도 더 많이 해야 하는 이런 방식이 몸에 맞기까지 오랜 인내가 필요했다.

화음체임버오케스트라는 진용이 탄탄하다. 리더 그룹의 4명은 배익환(바이올린ㆍ미국 인디애나 음대 교수), 마티아스 북홀츠(비올라, 독일 쾰른 음대 교수), 조영창(첼로ㆍ 독일 에센 음대), 미치노리 분야(더블베이스ㆍ 독일 뷔르츠부르크 음대 교수) 등이다.

모두 내로라 하는 세계적 연주자들이다. 다른 단원들도 주요 국제 콩쿠르 우승 호옥푀염曆째?기량을 갖추고 있다. 마티아스 북홀츠와 미치노리 분야 두 사람만 외국인이고 나머지는 모두 한국인이다.

후텁지근했던 8월의 마지막 날,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화음체임버오케스트라의 창단 10주년 기념 음악회가 있었다. 내년 3월까지 세 차례 공연하는 10주년 기념 시리즈의 첫 회다, 차이코프스키의 ‘세레나데’와 ‘플로렌스의 추억’ 두 곡으로 울산ㆍ광주ㆍ대전을 돌고 서울에서 가진 피날레 무대였다.

연주는 뜨겁고 신선했다. 그 특별한 에恪測?멤버 개개인의 뛰어난 기량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 단체만의 독특하고 이상적인 운영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화음체임버오케스트라의 이런 실험과 그 바탕에 깔린 정신은 바깥에서는 잘 알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저 연주 잘 하는 단체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대표 겸 음악감독 박상연(비올라)은 그보다는 무형의 건축물로서 화음체임버오케스트라가 갖는 가치와 상징성을 더 강조한다.

“우리가 해온 방식, 즉 개개인의 능력과 열정, 개성의 조화에 의한 창조가 음악을 넘어 우리 모두의 자산이 되고 우리 삶의 가치에도 영향을 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회적 확대재생산 과정을 통해 화음체임버오케스트라의 역사적ㆍ문화적ㆍ사회적 가치가 드러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의 민주적 공동체를 넘어 자율과 조화의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는 이런 말은 뜬 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10년 전 화음체임버오케스트라가 출발할 때도 다들 이상적이지만 비현실적인 모델이라고 했다.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새로운 길을 택해 이상적인 그룹을 만들어보겠다는 무모하고 과격한, 그러나 열정적인 꿈”(창단 10주년 기념 백서에서 박상연 대표의 말)을 현실로 바꾼 엔진은 무엇일까.

답은 여기에 참여한 음악가들의 노력과, 한 기업의 조용하고 꾸준한 후원이다. ㈜CJ다. 놀랍게도 계약서 한 장 없이 10년을 한결같이 동행해왔다. 기업 이름을 앞세우거나 이런저런 요구를 하지 않고 말이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아름다운 파트너십이다.
















화음체임버오케스트라는 미술관 음악회로 유명한 실내악단 화음(1993~)을 모태로 만들어졌다. ‘화음’이라는 이름도 흔히 생각하는 ‘하모니’가 아니라 ‘그림 화(畵)’에 ‘소리 음(音)’을 쓴다. ‘그림에서 음악이 들리고 음악에서 그림이 보인다’는 생각, ‘음악은 영혼의 데상’이라는 이상을 담고 있는 이름이다.

화음체임버오케스트라는 처음부터 한국 국적의 세계적인 연주단체를 목표로 출발했다. 박상연 대표는 처음엔 외국에서 시작할 생각도 했다고 한다.

“본고장 유럽의 독일 같은 데서 출발하면 더 빨리 인정 받고 성장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연주 잘 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해요. 그런 단체는 워낙 많고, 튼튼한 자본과 좋은 기획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나올 수 있으니까요.

그보다는 한국에서 새로운 음악,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 힘들더라도 한국에서 하자고 결심했죠. 우리나라처럼 모든 것을 소화해내는 역동적인 나라가 없어요. 그만큼 가능성도 많죠. 한 50년 뒤, 이르면 20~30년 뒤엔 순수음악에서도 굉장한 결실이 나올 거라고 믿습니다.”

화음체임버오케스트라는 그 때를 준비하고 있다. 실내악단 화음이 남양주 서호미술관에서 연간 10회 음악회를 하면서 전시작을 주제로 새로 작곡된 음악을 연주하는 ‘자화상 프로젝트’는 한국산 창작음악의 걸작을 예비하는 과정이다. 꿈을 향해 가는 먼 길을 그들은 커다란 확신과 희망으로 걷고 있다. 그리고 꿈은 이루어지고 있다.


오미환기자


입력시간 : 2005-09-07 12:14


오미환기자 mh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