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줏대감의 자존심이 밴 손 맛

[맛집멋집] <푸른밭> 한정식집
터줏대감의 자존심이 밴 손 맛

식당은 많고 갈 곳은 없다? 거리를 가득 메운 식당 간판 중에서 딱히 마음에 드는 곳이 없다니, 사람들 입맛이 까다로운 건지 아니면 진짜 괜찮은 곳이 없다는 얘긴지 알 수가 없다.

문제는 종류는 많지만 두 번 가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호기심에 한번은 가 보지만 단골로 삼고 싶은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가벼워진 주머니 탓에 한번을 먹더라도 본전 생각 나지 않는 곳을 고르고 싶은 것이 요즘 서민들의 마음이다.

맛있고 가격만 적당하다면 1시간 정도 줄 서는 것쯤이야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는 게 우리네 모습이다.

서울 상계동에 자리한 한정식 집 푸른밭은 11년이나 된 노원구의 터줏대감이다. 11년이라는 세월이 뭐 그리 대수냐 말할 수도 있지만, 신흥 주택단지인 이 지역의 식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데 일조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푸른밭이 처음 문 열었을 당시만 해도 노원구에서 정갈한 한식집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거의 전무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술을 취급하는 곳은 많았지만, 가족 외식이나 손님들을 접대하기에 적당한 곳은 없었던 터라 푸른밭에서 밥 한번 먹으려면 예약은 필수였다.

현재 운영을 맡고 있는 박영희 사장이 5년 전 푸른밭을 인수해 주인은 바뀌었지만, 11년 전부터 일해 왔던 안식구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변함없는 것은 이뿐 만이 아니다.

그 동안 원재료 값이 많이 올랐지만 음식 가격은 그대로다. 단골들 때문에 5년 동안 가격을 한번도 올리지 못했다.

요즘에는 주변에 대규모 식당들이 계속 문을 열고 있어 식당 운영이 예전만큼 신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쉽게 접을 수 없는 것은 역시 단골들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단골들 덕분이다.

지하철 7호선과 4호선이 교차하면서 주변 풍경 또한 많이 변했다. 노원구에서 가장 번화한 곳답게 먹을 데가 천지다.

며칠 간격으로 새로운 집이 문을 열기도 하고 또 사라지기도 하는 가운데 푸른밭은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노원역과 상계역 사이에 있어 다소 걸어야 하는 불편이 있지만 잊지 않고 찾는 사람들이 많다.

인근 대학교 교직원들의 회식이나, 가족들의 모임이나, 상견례 장소로 사랑 받고 있다. 툇마루 모습으로 아늑하게 실내를 꾸몄고, 방도 따로 있어 조용히 모임을 갖기 좋다.

한정식 메뉴는 향기정식과 푸른밭 정식 2가지다. 토속호박전, 모듬전, 해파리, 잡채, 가오리 찜, 샐러드 등이 코스로 나온 뒤 여러 반찬과 함께 식사가 뒤따른다.

마무리는 구수한 숭늉 한 대접이다. 밥과 국, 숭늉이 놋그릇에 담겨 나와 더욱 정감 있다.

향기정식은 3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하고, 푸른밭 정식은 2인분부터 주문 가능하다. 향기정식은 버섯전골의 양이 많아 3인분부터 주문을 받는다. 다른 요리와 반찬은 두 코스 모두 같다.

이 집은 예전부터 옐로우 푸드를 꾸준히 서비스하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단호박으로 만든 토속호박전.

단호박 속을 일일이 손으로 긁어내 부침으로 만들어내는데,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맛이 일품이다. 보기엔 간단해 보이지만 손이 많이 가는 메뉴가 주를 이룬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푸른밭의 자존심이다. 이제는 일단 먹어보면 손님들이 먼저 알아채고 좋아할 정도가 됐다.

된장이나 고추장 역시 우리농산물로 만든 것을 시골에서 공수 받고 있다.

메뉴: 향기정식 1만8,000원(1인 가격, 3인부터 가능), 푸른밭 정식 1만3,000원(2인부터), 버섯전골 2만8,000원(3인분).

영업시간: 오전 11시30분부터 밤 9시30분까지. 연중무휴.

찾아가는 길: 지하철 4호선 노원역 1번 출구, 약 100m 직진. 건널목 건너 조명가게 옆 건물 2층. 02-951-0031~2


서태경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09-13 14:37


서태경 자유기고가 shiner96@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