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활 타오르는 남자

[이신조의 책과 나누는 밀어] <반 고흐, 영혼의 편지>
활활 타오르는 남자

지난 수만 년 동안,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인간들 중 영혼의 온도가 가장 높았던 인간은 누구일까.

예수, 베토벤, 나폴레옹, 레닌, 미켈란젤로, 체 게바라 등(그들의 직업은 주로 예술가나 혁명가다)의 열혈남아들이 상위권 다툼을 벌일 것이다.

물론 영혼의 깊이나 넓이, 또 그 온전함이나 품위를 대상으로 한다면 순위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영혼의 온도, 그 강렬한 집념과 뜨거운 열정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력한 우승 후보가 여기 있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그림을 정식으로 배워본 적 없는 늦깎이 화가, 수백 편의 작품 중 살아서는 단 한 점의 유화밖에 팔지 못한 화가, 자신의 귀를 면도칼로 자른 화가, 정신병 발작으로 요양소를 제 집처럼 들락거렸던 화가, 사회로부터 거절 당하고 사람들로부터 오해 받으며 평생을 가난 속에서 살다간 화가, ‘인생의 고통은 살아 있는 그 자체’라고 말한 화가, 권총 자살마저 단번에 성공을 거두지 못한 화가, 자신의 유일한 후원자이자 영혼의 동반자였던 동생 테오에게 모두 668통의 편지를 쓴 화가.

‘예술가가 되려는 생각은 나쁘지 않다.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과 영혼을 가지고 있다면 그걸 억누를 수는 없지. 소망하는 것을 터뜨리기보다는 태워버리는 게 낫지 않겠니. 나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구원과 같다. 그리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불행했을 테니까.’

이런 절절한 내면의 고백이 가득한 편지들을 묶은 책이 바로 <반 고흐, 영혼의 편지>다.

물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서든 팔리고 있는 책이다. 이미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음이 분명하고,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영원히 스테디 셀러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죽어서도 지독한 가난뱅이인 반 고흐에게는 단 한 푼의 저작료도 돌아가지 않는다.

현재 그의 그림은 보통 한 점에 수천만 달러를 호가한다. ‘의사 가셰의 초상’(1890)은 1990년 한 일본인 사업가에게 984억 원에 팔렸다. 그 일본인의 개인소장품이 된 이후 그 그림을 직접 본 사람은 없다고 한다.

천문학적인 가격의 진품이든 1달러짜리 그림엽서이든, 카페 벽면에, 티셔츠에, 수첩에, 커피 잔에, 달력에, 그의 그림은 지구 어디에든 있다.

어디에서든 사고 팔리며, 끝없이 모방되고 재창조되며, 불멸의 사랑을 받는다. 작가 어빙 스톤은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라는 소설을 썼고, 가수 돈 맥클린은 <빈센트>라는 아름다운 노래를 그에게 바쳤다. 영혼만은, 반 고흐의 불타는 영혼만은 결코 가난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반 고흐는 누구보다도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영혼의 불길 같은 특유의 거친 붓 터치로 그려진 그의 자화상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림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에너지, 날것 그대로의 뜨거운 예술혼을 경험하게 한다. 그러나 미술평론가 이주헌은 ‘반 고흐의 그림들은 모두 자화상이다’라고 말한다.

파이프가 놓인 빈 의자도 반 고흐 자신이며, 낡고 더러운 검정 구두도 반 고흐 자신이다.

이글거리며 솟아오르는 실편백나무도, 음산하게 밀밭 위를 날아가는 까마귀 떼도, 요양소 창 밖의 쓸쓸한 정원도, 소용돌이치며 빛나는 밤하늘의 별들도, 노란 정념에 휩싸인 해바라기도, 어둠 속에서 감자를 나눠 먹는 가난한 농부들도 바로 반 고흐 자신인 것이다.

요컨대 편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내밀한 편지는, 자신의 영혼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는, 일기 이상이다.

그 어떤 문학작품 이상이다. 연인에게도, 동료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온전히 이해 받지 못했던 반 고흐가 유일하게 자신을 믿고 지지하고 사랑해 준 동생 테오에게 쓴 668통의 편지는 그의 또 다른 걸작품이다.

그가 글로 그린 그림이다. 984억 원을 준다 해도 받아볼 수 없는 영혼의 러브 레터다.

‘성당보다는 사람의 눈을 그리는 게 더 좋다. 사람의 눈은, 그 아무리 장엄하고 인상적인 성당도 가질 수 없는 매력을 담고 있다. 거지든 매춘부든 사람의 영혼이 더 흥미롭다.’ /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는 채 그 그림에 감탄하고, 좋다고 인정하는 것이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일이다.’ / ‘영원에 근접하는 남자와 여자를 그리고 싶다.’ / ‘이따금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아직도 내 안에는 평온함, 순수한 조화, 그리고 음악이 존재한다.’ / ‘이제 나는 내년이 오기 전에 50점의 그림을 그릴 계획이라는 말만 덧붙이고 싶다. 결심을 꼭 지킬 것이다.’ / ‘나에겐 그림 밖에 없다.’ / ‘우리가 사랑에 빠졌다면, 그냥 사랑에 빠진 것이고, 그게 전부 아니겠니. 그러니 실의에 빠지거나 감정을 억제하거나, 불빛을 꺼버리지 말고, 맑은 머리를 유지하도록 하자. 그리고 ‘신이여, 고맙습니다. 저는 사랑에 빠졌습니다.’하고 말하자.’

반 고흐의 신화는 동생 테오의 죽음으로 완성된다. 권총으로 자신의 가슴을 쏘고 37세의 나이로 반 고흐가 숨을 거두자, 절망과 비탄 속에서 형의 유작전(遺作展)을 열기 위해 애를 쓰던 테오는 갑작스럽게 발광을 일으킨 후 사망하고 만다. 형이 죽은 지 불과 6개월 뒤의 일이었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 10년 남짓 광기와도 같은 뜨거운 열정으로 휘몰아치듯 그림을 그린 반 고흐의 캔버스와 물감은, 빵과 옷과 잠자리는 모두 테오가 마련해준 것들이었다.

자신의 귀를 자르는 소동을 벌인 한 달 뒤, 반 고흐는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나를 정신병원에 가둬버리든지, 아니면 온 힘을 다해 그림을 그리도록 내버려다오.

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약속해 온 그림을 너에게 보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내겠지. 돈은 반드시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마.’

그렇게 사랑과 슬픔으로 서로의 영혼을 나눠가진 두 형제는 프랑스 오베르의 한 시골 교회 마당에 작은 묘비를 나란히 하고 함께 누워 있다.

활활 타오르는 남자,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와 그림이 담긴 이 책은 너무나 뜨겁고 슬프고 아름답다.


이신조 소설가


입력시간 : 2005-09-13 16:56


이신조 소설가 coolpond@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