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무십일홍 무색한 붉은빛 고운자태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배롱나무
화무십일홍 무색한 붉은빛 고운자태

태풍으로 나라 안팎이 어지럽기만 한데, 그 비바람이 물러간 하늘은 잔인하리만치 푸르고 청명하다.

그리고 유난스레 그 하늘 아래서 배롱나무 꽃송이들이 돋보인다. 생각해보니 배롱나무 꽃 피운 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하지만 그 붉은 꽃송이들이 한 여름 더위에 바래어 눈에 들어오지 않다가, 이제야 새삼 그 붉은 빛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계절은 분명 가을인가 보다.

배롱나무는 여름내 몇 달씩 장마와 더위를 거뜬히 이기면서 가을에 이르기까지 꽃을 피워내므로, 우리들에게는 나무백일홍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우리가 흔히 백일홍이라고 부르는 식물은 두 가지가 있는데, 어릴 적 소박한 화단에 심겨져 있던 멕시코 원산의 초본성 백일홍이 그 하나이고, 또 다른 하나는 목본성으로 나무에 꽃을 피우는 목백일홍, 즉 배롱나무다.

사람에 따라서는 나무백일홍이라 부르기도 하고, 초본과 구분 않고 그저 백일홍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두 가지 식물은 모두 꽃이 피면 백일을 간다는 연유로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초본과 목본인 것이 다름은 물론이요, 각각 국화과와 부처꽃과에 속하는 식물학적으로도 서로 전혀 무관하다.

사람들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하여 열흘이상 붉은 꽃은 없다며 세상 아름다운 것들의 유한함을 이야기 하였지만, 배롱나무의 꽃은 백일을 가니 이 말이 무색하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배롱나무의 꽃은 한 송이가 피어 그토록 오랜 나날을 견디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꽃들이 원추상의 꽃차례를 이루어 차례로 피어나는데 그 기간이 백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배롱나무는 비록 꽃 한 송이의 수명은 짧아도 조화를 이루어 순리대로 나가면 영원히 번영할 수 있다는 한 차원 높은 교훈을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닐까.

배롱나무는 낙엽성 큰키나무다. 그러나 아주 크게 자라지는 못하며 대개 3m정도이고 다 자라야 7m정도다.

배롱나무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는 줄기로서, 갈색에서 담홍색을 띠며 간혹 흰색의 둥근 얼룩이 있다. 껍질이 얇아 매우 매끄럽다.

꽃은 한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핀다. 대부분의 꽃은 봄 아니면 이른 여름에 피거나 국화처럼 아주 가을을 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배롱나무는 어른 손 한 뼘을 훨씬 넘는 화려한 꽃차례를 가지 끝에 매어 달고 한여름 내내 피고 가을까지 이어 준다. 꽃 색도 아주 진한 분홍이다.

그러나 이 붉은 꽃덩어리가 주렁주렁 달리는 모양이 아무리 바라 보아도 시원한 기분을 주는 것은 주변의 열기를 모두 흡수하여 꽃빛으로 대신 표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배롱나무의 꽃빛이 모두 붉지는 않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대부분 진한 분홍색 꽃이지만 간혹 흰색의 꽃이나 분홍색이 다소 진하고 옅은 여러 종류가 있다.

그 가운데 특히 흰색 꽃을 피우는 것을 흰배롱나무라 부른다. 이러한 꽃은 꽃잎의 모양 또한 색다른데 여섯 개로 갈라진 꽃받침에 바싹 붙어 역시 여섯 개로 갈라진 꽃잎이 달린다.

이 꽃잎은 부드러운 비단처럼 하늘거리며 많은 주름이 나 있다.

배롱나무는 앞에서 이야기한 이름이외에도 자미(紫薇), 파양수(伯痒樹), 만당홍(滿堂紅) 등의 한자이름이 있다.

특히 자미화는 자주색 꽃이 핀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중국 사람들은 이 꽃을 특히 사랑하여 이 나무가 많이 심겨진 성읍을 자미성이라 이름 지었을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는 간질나무, 간지럼나무라고도 불렀다.

간질나무는 간지럼을 잘 타는 나무라는 뜻으로, 얼룩한 배롱나무의 줄기 가운데 하얀 무늬를 손톱으로 조금 긁으면 나무전체가 움직여 마치 간지럼을 타는 듯 느껴진다고 붙여진 별명이다.

이는 중국의 한자 이름 파양수를 그대로 우리말로 풀어 논 것이다.

배롱나무는 본래 중국이 원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된 절이나 고옥의 마당에서 볼 수 있다.

요즈음은 남부지방의 도로변에 조경용으로 심어 놓은 것도 눈에 띈다. 이렇듯 배롱나무는 우리 주변에 심겨져 자라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자생하고 있지는 않다.

그래도 우리나라 선조들이 가까이 해 사랑하여 노래하던 나무이니, 어쩐지 우리 나무인 것 같다. 올해는 왠지 배롱나무가 오래 오래 피었으면 좋겠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 2005-09-14 20:52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