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사 새로보기] 일본 건국신화


일본이란 나라는 어떻게 해서 태어났을까. 첫 단계인 고대국가 성립은 일본의 건국신화를 통해 그 실상을 더듬을 수 있다.

일본의 건국신화는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실려 있다. 두 책은 모두 8세기 때 천황가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천황가가 일본을 통치하게 된 유래를 설명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설화 서술 방식은 약간 다르다. 『고사기』 쪽이 서사적 성격이 강해서 줄거리가 뚜렷한 이야기 형식을 띠고 있는 반면 『일본서기』는 여러 가지 신화를 긁어모아 둔 듯한 형식이다. 두 책이 전하는 일본 건국신화를 간추리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줄거리다.

【천지가 아직 열리지 않은 아득한 옛날 빼어난 세 신이 있었다. ‘아메노미나카누시노미코토(天御中主尊)’ ‘다카미무스비노미코토(高皇産靈尊)’ ‘가미무스비노미코토(神皇産靈尊)’다.

세 신은 천상의 세계인 ‘다카마노하라’(高天原)에 머물렀다. 천상에는 다른 많은 신들도 있었다. 이 신들의 세상 말기에 ‘이자나기노미코토(伊奬諾尊)’와 ‘이자나미노미코토(伊奬?尊)’가 태어났다.

원래 오누이였던 두 신은 바다만 있던 세상에 땅을 만들고 거기로 내려온다. 둘은 결혼해서 맨 먼저 일본 열도를 낳았다.

이어 산의 신, 바다의 신, 강의 신, 바람의 신 등을 낳았으나 불의 신을 낳은 ‘이자나미노미코토’가 화상을 입어 죽는다.

아내를 잃은 ‘이자나기노미코토’는 지하의 황천국(黃泉國)으로 가서 아내를 데려오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지상으로 돌아와 목욕재계하자 왼쪽 눈에서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 오른쪽 눈에서 ‘쓰쿠요미노미코토(月讀尊)’, 코에서 ‘스사노오노미코토(素?嗚尊)’가 태어난다. 그는 ‘아마테라스오미카미’는 천상을, ‘스사노오노미코토’는 바다를 다스리라고 명한다.

스사노오노미코토는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어머니에게 가고 싶다고 울기만 했다. 노한 아버지에게 쫓겨 나 황천국으로 가기 전에 누나 ‘아마테라스오미카미’를 만나러 천상으로 간다.

‘아마테라스오미카미’는 동생이 하늘나라를 뺏으러 왔다고 경계했으나 그의 칼을 씹어 뱉어 세 여신을 낳은 위력으로 자신감을 얻는다.

실의에 빠진 ‘스사노오노미코토’는 난폭한 행동을 일삼고, 동생의 모습에 실망한 ‘아마테라스오미카미’는 동굴에 숨어버린다. 그러자 태양이 사라지고 천지는 어둠에 잠긴다.

신들은 의논 끝에 동굴 앞에 위에는 구슬, 아래에는 거울을 건 신목(神木)을 세우고 그 아래서 여신이 알몸으로 춤추게 했다.

가슴과 음부를 드러내고 춤추는 여신의 모습 때문에 웃고 떠들썩해지자 ‘아마테라스오미카미’가 궁금증을 못 이겨 동굴 밖으로 얼굴을 내민다.

신들은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의 손을 끌어 동굴 밖으로 나오게 한다. 천지는 빛을 되찾았고, ‘스사노오노미코토’는 지상으로 추방된다.

땅에 내려온 ‘스사노오노미코토’는 이즈모(出雲)로 가서 머리가 여덟 개 달린 큰 뱀을 처치하고 그 꼬리에서 얻은 칼을 ‘아마테라스오미카미’에게 바친다.

또 산채로 뱀의 제물이 되려다가 목숨을 건진 구시나다히메(櫛名田比賣)와 결혼하고 이즈모에 머문다. 그 자손인 ‘오쿠니누시노미코토(大國主命)’가 형들을 쳐부수고 나라를 세웠다.

그러나 지상의 세계는 자기 자손들의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아마테라스오미카미’는 사자를 보내 나라를 양보할 것을 요구한다.

‘오쿠니누시노미코토’는 처음 저항하지만 결국 굴복해 나라를 내준다.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의 자손인 ‘니니기노미코토(瓊瓊杵尊)’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다.

규슈(九州) 남쪽 휴가(日向)에 내려온 그는 ‘고노하나노사쿠야히메(木花佐久夜姬)’에게 첫눈에 반해 결혼한다. ‘고노하나노사쿠야히메’는 하룻밤에 임신을 하여 의심을 받지만 불 속에서 세 아들을 낳아 결백을 증명한다.

사냥을 즐기던 막내 아들 ‘야마사치히코(山幸彦)’는 낚시를 즐기던 맏형 우미사치히코(海幸彦)한테 낚싯바늘을 빌려 낚시를 하다가 바다에 빠뜨린다.

형의 성화에 못 이겨 바다로 간 ‘야마사치히코’는 조수(潮水)의 신의 도움으로 해신의 궁전으로 가서 딸 ‘도요타마비메(豊玉毘賣)’와 결혼한다.

3년 후 해신으로부터 잃어버린 낚싯바늘과 썰물ㆍ밀물 구슬을 받아서 육지로 온다. 두 구슬의 힘으로 형을 이기고 형의 후손인 하야토(準人) 일족을 복속시킨다.

‘도요타마비메’의 아들 ‘우가야후키아에즈노미코토(?집草집不合命)’은 이모 ‘다마요리비메(玉依毘賣)’와 결혼하여 네 아들을 낳는데 막내 아들 ‘간야마토이와레비코(神日本磐余彦)’가 휴가에서 야마토(大和) 지방으로 정벌해 와 초대 진무(神武) 천황이 된다.】

이 이야기는 신화의 구성요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 태초의 혼돈과 천지의 탄생, 신들의 갈등과 그것이 인간 세계에 미친 영향, 인간의 현실적 삶을 위한 신들의 역할 등이 빠짐없이 들어있다.

또 수많은 주인공들의 이름이나 행동에서는 수렵과 채집, 어로, 농경 생활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일본 고대 왕권의 탄생 과정을 그린 이 신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북방 아시아계 공통의 천손강림 설화가 기본 골격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일본 고대 왕권의 주축 세력이 북방계와 깊은 관계에 있음을 드러내는 동시에 단군신화나 동명성왕 설화 등과 마찬가지로 지배층이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왔음을 알려 준다.

특히 신들이 사는 하늘나라를 ‘높은(高) 하늘(天) 들판(原)’으로 상정한 것은 흥미롭다. 높다는 것은 지리적 감각으로는 북쪽을 가리키는 예가 많고, 사회적 감각으로는 높은 지위를 상징하기도 한다.

더욱이 신들이 사는 하늘나라를 들판으로 상정한 데서는 북방 아시아의 넓은 초원을 달리던 유목민의 잠재의식을 더듬게 한다.

그런데 단군신화에 나오는 하늘로부터의 강림이 만주지역에서 출발한 것임을 가리킨다면 일본 열도로의 강림의 출발지인 ‘다카마노하라’는 한반도 이외에는 상정하기 어렵다.

이 신화는 또 고대 일본의 지배층 사이에 여러 차례의 ‘형제의 난’이 있었고, 적어도 한 차례 크게 계통이 바뀌었음을 드러낸다.

‘스사노오노미코토’가 하늘나라에서 쫓겨난 후 시마네(島根)현의 이즈모(出雲) 지역에 정착해서 여덟 부족(머리 여덟 달린 뱀)을 쳐부수고, 현지인과 결혼동맹을 맺어 나라를 세웠다.

지금도 동해안에서 배를 타고 조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주로 닿는 일본의 해안이 시마네 현이다.

그런데 ‘스사노오노미코토’의 자손은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한 뿌리에서 나왔지만 역사 과정에서 이미 계통이 달라진 ‘니니기노미코토’에게 나라를 양보한다.

말이 양보이지 전쟁과 정복의 결과이다. 신라 계통의 초기 지배자가 나중에 같은 한반도에서 오긴 했지만 계통이 다른 집단에 의해 교체됐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야마사치히코’의 이야기에서 규슈 지역의 패권을 확립할 때 해양 세력의 적극적인 협력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조류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뛰어난 항해술을 가진 집단이고, 해신의 두 딸 이름에서 보듯 해상 교역의 결과 구슬 등 재화를 풍부하게 확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항해술과 경제적 힘이 규슈 지역의 정치적 통합과정에서 커다란 힘을 발휘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앞서 여러 차례 거론한 해민(海民) 집단이 가장 강력한 후보이다.

또 규슈 세력의 북상이 이뤄질 5세기 초 당시 북방 유목민 세력과 해양세력이 결합했고, 전투력의 기초인 철제 무기를 대량 확보한 정치세력은 한반도 남부에 세력을 펼쳤던 가야연맹밖에 없었다.

일본의 건국 신화를 읽으면서 김해 가락국 이야기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가야 지배층이 한반도에서 못 다 이룬 고대국가 건설을 바다 건너에서 이룬 것일까.


황영식 논설위원


입력시간 : 2005-10-11 18:38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