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큼한 사과향에 가을이 익는다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 상큼한 사과 향기는 구수한 낙엽 냄새와 더불어 가을을 대표하는 두 가지 향기 가운데 하나다.

식이 섬유가 풍부하고, 납을 해독하는 효과 덕분에 최근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빨갛게 익어가는 가을을 만끽하며 맛있는 사과를 직접 따 볼 수 있는 곳, 충주 향림 마을을 찾아가 보았다.

향기로운 숲이 있는 마을

옛날 수천 명의 스님들이 수도하던 큰 절이 있었다는 향림 마을. 절 안팎에 향나무가 많아 ‘향기로운 숲’이라는 뜻으로 마을 이름을 향림이라 했다. 지금은 절의 흔적조차 없지만 마을 사람들은 어린 시절 마을 곳곳에 자라던 향나무를 기억하고 있다.

향림 마을에 들어서니 달콤한 과일 향이 나는 듯하다. 마을 곳곳에 자리한 과수원 덕분이다. 여름에는 복숭아, 가을에는 사과가 주종이다.

복숭아나무는 제법 굵은데 반해 사과나무는 몇 년 되지 않은 듯 가늘다. 그런데도 사과는 주렁주렁 열렸다.

이것이 충주 사과의 특징이라고 꽁지네 과수원을 운영하는 신재승씨가 설명한다. 나무 간격도 두 세 걸음 정도로 좁고, 사다리 없이 딸 수 있을 정도로 키도 야트막하다.

최근 몇 년 사이 충주 사과가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먼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사과 산지로 명성을 날리던 경북 지방의 날씨가 예전 같지 않게 됐다는 것. 일교차가 크고 수확할 무렵에는 기온이 어느 정도 낮아야 하는데 지금은 충주가 사과 재배에 가장 적합한 기후라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사과만을 연구하는 연구소가 있어 선진 재배 기술을 농가들에게 알려주고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사과 따는 것도 요령

꽁지네 과수원에 도착하니 완만하게 비탈진 언덕에 아담한 과수원이 들어서 있다. 익을 대로 익어서인지 사과 속에 들어찬 꿀을 따먹으려는 벌들이 붕붕거린다.

체험을 시작하기 전 신재승씨의 사과 따기 요령을 먼저 들었다. 비틀거나 아래로 잡아당기면 가지가 상하기 때문에 사과를 살짝 위로 젖히듯 들어주면 잘 따진다는 것.

또 윗부분은 물론 아랫부분까지 잘 익은 것을 따야 당도가 높고 맛있다고. 사과 따기를 처음 해보는 이들은 따는 것 자체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사과나무에 피해를 주는 경우가 종종 있어 미리 주의를 해야 한다.

농부의 입장에서는 사과 하나보다 나뭇가지 하나가 더 중요하다. 다음해에 몇 개의 사과가 주렁주렁 열릴 가지가 찢어지거나 부러진 것을 보면 자신이 다친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고.

사과를 바구니에 담기 전에 사과 꼭지를 짧게 잘라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꼭지가 다른 사과에 상처를 내기 때문.

일 하면서 먹는 달디 단 사과

“와~ 크다! 사과가 내 얼굴만 하네.”

“봐봐. 이건 정말 빨갛지?”

체험에 나선 아이들은 하나 딸 때마다 서로 자랑하기에 바쁘다.

사과 하나를 골라 옷자락에 슥슥 닦은 다음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과즙이 가득 흘러나오고 아삭아삭하며 그 맛은 달디 달다. 일하다가 먹는 사과는 세상 어느 것보다 맛있다.

잔류 농약 걱정에 늘 깎아 먹곤 했는데 지난 늦여름에 마지막 농약을 쳤다는 말을 들으니 안심이다.

대부분의 사과 농가에서는 수확철이 가까워지면 농약을 치지 않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게다가 과수원에서 사용하는 농약은 수용성이라 물에 잘 씻으면 된다. 껍질에 영양소가 더 많아 깎지 않는 게 좋다는 얘기다.

한 시간도 채 안됐는데 벌써 상자가 가득 찼다. 직접 딴 사과를 종이 상자에 옮겨 담아 상자 크기에 따라 비용을 지불하면 된다. 굵고 잘 익은 것만 골라 딸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

무엇보다 사과 따기 체험을 직접 해보고, 그렇게 수확한 사과를 집에서 먹으면서 사과 딸 때의 추억을 가족끼리 함께 나눌 수 있어 더욱 즐겁다.

향림 마을과 엄정면에는 몇 가지 농산물을 모아 소비자들에게 직거래하는 유통모임이 있는데 꽁지네 과수원의 사과뿐만 아니라 태양초 고추, 버섯, 장류 등을 취급한다. 마을을 찾으면 이들 농산물도 도시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고.

역사 유적지 가득한 충주

과수원 체험을 하고 난 다음 충주의 유적지를 둘러보면 가을 나들이 길이 훨씬 풍요로워진다.

충주는 역사 유적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 고장이다. 중원고구려비, 탄금대, 중앙탑, 충주산성, 중원미륵사지 등 각 시대별 주요 유적이 숱하게 남아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충주로 향할 경우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은 중원고구려비다. 중국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와 함께 고구려 때 세워진 비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장수왕이 남하정책을 통해 충주에 진출한 것을 기념해 그 후손인 문자왕이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중원고구려비에서 지척에 자리한 중앙탑의 정식 명칭은 탑평리 7층석탑이다. 현존하는 신라 석탑 가운데는 규모가 가장 크다. 단아하면서도 장중한 아름다움이 흐르는 탑신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악성으로 이름난 우륵 선생이 남한강을 굽어보며 거문고를 타던 자리가 바로 탄금대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왜군을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이밖에 충주호와 충주댐, 청풍문화재단지, 수안보온천과 능암온천, 수주팔봉, 삼탄유원지 등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다양하다. 충주역 주변에 조성된 사과나무 가로수 길은 충주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 볼거리다.

체험정보

*향림 마을 꽁지네 과수 : 사과 따기 체험 3㎏ 1박스 9,000원, 5㎏ 1박스 1만5,000원. 전화로 연락 후 마을을 찾아가면 꽁지네 과수원에서 사과 따기 체험이 가능하고, 직접 수확한 사과를 저렴한 값에 구입할 수 있다. ☎043-851-7810, 011-9409-1067

*찾아가기 : 중부내륙고속도로 감곡IC로 나간 다음 제천방면으로 38번 국도를 달린다. 목계대교를 건넌 후 엄정면 표시를 따라 간다. 엄정면사무소에서 과수원이 있는 향림 마을까지 차량으로 5분 거리. 목계대교를 건너기 직전 599번 지방도로 우회전하면 중원고구려비, 중앙탑, 충주박물관, 탄금대 등이 차례로 나타난다. 사과나무 가로수는 충주역~달천사거리~마이웨딩홀에 이르는 구간에 조성돼 있다. 충주시 관광이용정보센터 ☎043-850-5853




글ㆍ사진 김숙현 자유기고가 pararang@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