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향기가 마음을 빼앗네"

남도로 모처럼 야외조사를 나갔다. 아직 남쪽은 농익은 가을모습은 아니었으나 청명한 하늘이 얼마나 깊던지…. 집집마다 주렁주렁 잘 익은 감들은 바라만 보아도 흐뭇하고, 산길에 떨어진 밤톨을 주워 으석으석 깨물어 먹는 재미도 솔찬이 좋았다.

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다 만개의 상태를 막 지나고 있는, 그래도 그 꽃은 여전히 아름다운 금목서 한그루를 만났다.

금목서 꽃구경을 한지가 몇 해 만인가. 그 그윽한 향기에 잠시 마음을 내놓아 본지가 또 얼마만인가. 잠시 나무 밑에 발길을 멈추어 눈과 코와 마음을 열어 한동안 그 나무를 보았다.

꼬치꼬치 따지고 보면 금목서는 태생이 우리 나무이지는 않지만, 이 나무가 남쪽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마당에 심어져 사랑받던 세월들을 헤아려 보니, 우리나무로 소개함도 괜찮을 듯 싶다. 더욱이 이 계절에 이렇게 곱고 향기 그윽한 꽃을 피우는 나무 또한 흔치 않으니 말이다.

금목서는 중국이 고향인 상록활엽수다. 마주 나는 잎은 긴 타원형으로 손가락 두 마디쯤 길이인데, 상록활엽수 잎들이 대게 그러하듯 두껍고 질기다.

꽃은 10월에 핀다. 아주 자잘한 꽃들이 잎자루마다 가득 매어달려 있다. 꽃 색은 약간 흰색을 섞은 듯한 주황색.

금목서하면 떠오르는 것이 향기이듯 이 작은 꽃들이 품어 내는 향기로, 꽃이 절정일 즈음이면 근처에만 가도 달콤하고도 향긋한 냄새로 주변을 온통 향기롭게 만든다.

비슷하지만 순백의 꽃이 피는 것은 은목서다. 은목서 역시 향기도 좋고 꽃빛도 깨끗하여 정원수로 좋다.

또 아주 혼동을 많이 하는 나무 중에 구골나무라고 있다. 흰 꽃이 피어 은목서와 혼동을 흔히 하는데 자세히 보면 꽃도 조금 다르지만 잎 가장자리가 삐죽삐죽 뾰족하여 구별할 수 있다.

이 금목서를 최고의 정원수 축에 넣는 일들이 많다. 그 이유는 여럿 있다. 나무 전체의 모양도 정원에 심기에 적절할 정도로 그리 작지도 크지도 않고,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이면서 넓은 잎이어서 좋다.

무엇보다도 앞에서 말한 꽃향기는 나무 곁에 서 있으면, 우울했던 마음까지도 행복하게 해줄 듯 대단하다. 한 나무를 단정한 모양으로 키워도 좋고, 가지가 강하고 조밀하게 나니 생울타리로 키워도 좋다.

나도 이 나무를 처음 만나고 정원이 있다면 꼭 심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애석하게도 실현 불가능. 그 이유는 추위에 약해 중부지방에선 마당에서 키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부지방의 유난히 나무가 많은 오래된 정원, 학교 같은 곳에 가 보면 이 나무구경이 그리 어렵지 않다.

향기로운 꽃으로는 차를 만든다. 말 그대로 꽃차다. 가장 쉽게 차로 마시는 방법은 꽃이 피었을 때 꽃과 잎을 조금 잘라 그늘에 말려 밀봉해 두었다가 녹차를 다릴 때 조금 넣으면 더없이 향기롭고 풍류 가득한 꽃차가 된다.

흔히 꽃차라고 하면 국화차나 장미차처럼 꽃을 말려두었다가 꽃으로만 차를 우려 향기를 즐기는데 이 금목서는 꽃으로만 차를 만들기에는 그 향이 너무 강렬하여 녹차와 함께 쓴다.

꽃으로 술을 담그기도 하고, 잎은 기침, 가래 등을 삭히는 등 몇 가지 증상에 처방한다고 한다.

그저 눈으로 뿐 아니라 향기로 말할 수 있는 식물들을 보기 시작하니, 그 풀과 나무들을 향한 마음이 더욱 풍부해지는 듯 싶다. 올 가을은 금목서 향기만큼 가을이 그윽하게 저물어갔으면….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