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 않은 꿈은 없다

그런 소설이 있다. 막힘 없이 읽히는 문장에 박진감 넘치는 사건 전개, 대단한 활약상을 펼치는 매력적인 주인공, 그리고 이제 무슨 유행처럼 되어버린 극적 반전까지.

독자에게 ‘읽는 재미’를 한껏 선사하며 결말이 궁금해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그런 소설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다른 소설도 있다. 여러 번 천천히 음미하지 않고는 쉽게 읽히지 않는 문장과 왠지 대단한 모험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드는 성격의 소유자인 주인공, 특별한 스펙터클 없이 단조롭게 전개되는 사건, 거기에 모호하기만 한 결말까지.

독자에게 쉽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지 않는, 그리 친절하다고는 할 수 없는 소설, 일목요연하게 한 마디로 정리되지 않는, 아니 정리할 수 없는 그런 소설 말이다.

물론 둘 중의 어느 쪽이 더 나은지를 따지는 것은 아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우선 취향의 문제다. 취향에 옳고 그름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취향이 편협한 선택에 의해 별다른 성찰 없이 그저 습관화된 취향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더구나 그 대상이 ‘소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지금은 소설만이 유일하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원하는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시대가 아니다.

(과거 한때는 그러한 적도 있었다) 첨단의 매스미디어 기술과 결합해 나날이 새로움을 더하고 있는 드라마, 영화, 만화 등과 비교해 볼 때 재미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오히려 소설의 경쟁력은 과거 어느 때보다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다채롭고 광범위한 흥미거리를 생각해본다면 ‘재미있는 이야기’는 더 이상 소설의 전유물일 수 없다.

그렇다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추구하는 소설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쉽고 재미있는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작가로서의 뛰어난 역량이다.

누구나 다 발휘할 수 있는 재능이 아니다. 다만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소설의 유일한 본령이 아닐 때, 우리는 무엇 때문에 소설을 읽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는 것이다.

여기 한 편의 소설이 있고, 그 소설 속의 주인공이 있다.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그 주인공의 하루하루도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일상들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나 드높은 이상을 품지 않는다. 강렬한 욕구나 드높은 이상이 없으니 그에 따른 좌절이나 상실감도 없다. 그는 스스로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작가 은희경

그는 자신에게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을 뒤바꿀만한 특별한 사건이 일어날 거라는 기대 따위는 하지 않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다. 그에게 유난히 관심을 갖는 분야나 색다른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자신이 행복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불행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직업적인 성실함으로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그런 30대의 남자이며, 이름은 준이다.

준, 그는 소설의 주인공으로 그렇게 적합해 보이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우리가 흥미로워 하는 소설 속의 주인공들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그는 영웅도, 반항아도, 몽상가도, 이상주의자도 아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에게 일어나는 사건은 아슬아슬한 모험도, 과격한 혁명도, 드라마틱한 멜로도 아니다.

그는 고난의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야 하는 곤경에 빠진 오디세우스가 아닌 것이다. 그는 별 수 없이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적당히 성실하고 적당히 재미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가 우리 자신과 너무나 닮아 있다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가 우리 자신을 투사하기에 너무나 알맞은 인물이라면? 단순한 재미를 넘어 소설의 진정한 효용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꿈이었을까>는 누구보다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쓸 줄 아는 소설가 은희경의 작품이다.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마이너리그> 등과 같은 그녀의 작품들은 무엇보다도 우선 ‘재미’있다는 점에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소설 속에 나오는 에곤 실레의 '이중 자화상'

거기에 탄탄한 서사적 구조와 뛰어난 소설적 완성도가 더해진다. 은희경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런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그것은 꿈이었을까>는 다소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소설은 앞서 언급한대로 ‘재미있는 이야기’로서의 기능이 은희경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떨어진다.

특유의 재기 발랄한 입담이나 아이러니컬한 유머는 결코 작품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꿈이었을까>는 흐릿한 안개에 휩싸인 것처럼 모호하고 불분명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지극히 몽환적인 작품이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에 익숙한 독자라면 ‘은희경답지 않은’ 소설이란 느낌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이 작가의 숨겨진 또 다른 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을 통해 앞으로 전개될 은희경 소설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특별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지 않는 주인공 진은 어느 날 꿈같은 한 순간을 경험하고, 그 순간을 함께했던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그 여자를 사랑하는 일은, 그 여자를 찾아 헤매는 일은 낯선 꿈과도 같은 일이다. 더없이 모호하고 불분명한 꿈과 같은 일이다.

그 꿈으로 가는 길에 에곤 실레의 그림 <이중자화상>이 있고,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성>이 있고, 끊임없이 비틀즈의 노래들이 흐른다.

비틀즈의 노래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카프카의 소설이나 실레의 그림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해도 그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낯선 꿈에 기꺼이 빠져들고 만다. 낯설지 않은 꿈이란 없기 때문이다. 더없이 모호하고 불분명한, 그 낯선 꿈조차 분명 우리 생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coolpond@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