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통해 바라 본 철학적 사유와 휴머니즘

세계종교사상사(전 3권)/ 미르치아 엘리아데 지음ㆍ이용주(1권), 최종성 김재현(2권), 박규태(3권) 옮김/ 이학사 발행/ 2만8,000~3만5,000원

저자의 50여년에 걸친 학문 여정이 집대성된 대표작으로, 저자가 1949년 ‘종교 형태론’을 출간하면서 밝힌 구상이 30여년의 연구 끝에 결실을 본 것이다. 서울대 종교학과 출신의 젊은 학자들이 6년여에 걸쳐 번역했으며, 프랑스 문화부의 출판 지원을 받았다.

저자는 “문화의 가장 원초적인 차원에 있어서, 인간 존재로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종교적인 행위다.

왜냐하면 음식 섭취, 성 생활, 노동은 성사(聖事)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종교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종교의 의미를 설명한다.

그럼으로써 여러 종교 현상들의 근본적 통일성과 그러한 종교적 표현이 가진 무궁무진한 새로움을 끊임없이 일깨우고 있다.

이 책은 종교가 저 높은 하늘의 전지전능한 존재와 땅 위의 보잘 것 없는 인간과의 추상적인 관계에 관한 것이나 고도의 신학적 이론과 정교한 형식 속에 갇혀있는 낡은 도그마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서 살아 숨쉬는 유기체라는 것을 보여준다.

또 종교, 종교 경험, 종교 사상이 한정된 언어와 이미지로 정의할 수 없는 장대한 인간 정신의 결정체라는 것을 강조한다.

저자는 구석기 시대에서부터 종교개혁 시대에 이르기까지, 서유럽의 원시 신앙에서부터 티베트의 불교에 이르기까지 시공을 초월하는 인류의 종교 경험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궁극적으로 새로운 휴머니즘을 주장한다. 종교학의 목표를 “올바른 방법으로 신화나 신화적 사고, 상징이나 시원적 이미지, 특히 동양 문화 혹은 원시 문화 속에서 발견된 종교적 창조성을 분석하는 것만이 서양의 정신을 열어주고 새로운 휴머니즘을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고 밝히고 있다.

즉, 탈성화(脫聖化)한 현대 사회의 논리를 뛰어넘어 성스러움 그 자체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고, 그 가운데에서 우주적 유대를 회복하고, 신과 하나된 인간, 도와 하나된 인간, 다르마(법)와 하나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새로운 휴머니즘을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인간을 성스러움을 지향하는 호모 렐리기오수스(종교적 인간)이면서도 범속한 현실을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역설적인 삶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파악한다.

그래서 종교 현상이라는 성스러움의 진실성을 경험함으로써 우리가 변할 것을 기대한다.

역사적 존재인 인간은 역사를 초월하기 위해 사유하고, 상상하며, 창조한다. 역사를 초월하기 위한 인간의 몸짓과 사유와 상징, 그것이 곧 종교라는 것이다.

이 책은 석기 시대에서부터 엘레우시스의 비의까지를 다룬 1권, 고타마 붓다에서부터 기독교의 승리까지를 다룬 2권, 무하마드에서부터 종교개혁 시대까지를 다룬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에 이르는 선사시대 인류의 원초적 종교성이 도구 제작, 언어 발달, 농경 발명 등과 함께 새로운 종교적 가치로 변모하는 과정을 출발점으로 해서 티베트의 전통 종교인 본교의 핵심을 살피고, 티베트 불교의 형성과 발전 과정, 교의와 실천 등을 살피는 것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는다.

저자는 일기 쉬운 개설서를 쓸 것, 여러 종교의 창조적 순간을 포착해 묘사할 것, 개별 종교 전문가의 미시적 해석과는 다른 종합적 이론가의 거시적 관점을 제시할 것 등을 집필의 3가지 원칙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에게 ‘쉽지 않은, 기나긴 여행’을 떠날 것을 요구한다.

늦가을에 접어들면서 마음이 함께 스산해지는 요즘, 방대한 양을 모두 읽지는 못할지라도 관심 있는 부분을 띄엄띄엄 보는 것도 삶을 충분히 풍족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상호 편집위원 s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