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토란' 투잡스…본업이 헷갈려

11월3일 오후 4시, 서울 강남 신사동의 한 레스토랑. 근사한 야외 테라스에다, 입구 옆 에 써 있는 ‘발렛 파킹’(valet+parking: 주차서비스 대행) 이라는 문구가 한 눈에도 ‘품위 있는’ 음식점임을 보여준다. 점심 시간이 훨씬 지난 시간에도 20, 30대 젊은 여성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처음엔 연예인 이름을 보고 우연히 들렀죠. 그러다가 분위기도 편하고 맛도 있어 단골이 됐어요.”

강남 토박이라는 최모(29)씨는 최근 출근 도장을 찍다시피 이곳을 들락거린다. 최씨는 “두 달 전 호기심에 처음 왔다가, 요즘은 친구들과 일주일에 서너 번 이상 찾는다”고 말했다.

2년 여동안 40여 가맹점 오픈

탤런트 선우재덕의 스파게티 전문점 ‘스게티’다. 이곳은 스파게티를 조리하거나 서빙하는 선우씨를 보려는 손님들로 연일 붐빈다.

이은영 매니저는 “선우재덕 사장님이 나와 인사하면 손님들이 사진도 찍고 사인도 받으며 신기해 한다”면서 “TV에서 보던 스타가 직접 음식을 나르는 것만으로도 손님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예인 사장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소위 ‘한물간’ 연예인이 부업으로 뛰어드는 경우가 많았으나 근래에는 한창 물오른 스타들까지 앞 다퉈 나서는 분위기다.

업종도 다양하다. 전통적인 외식업은 물론이고 의류, 화장품, 액세서리, 스포츠 분야까지 장르를 따지지 않는 것이 요즘 스타 최고 경영자(CEO) 붐의 특징이다.

탤런트 선우재덕은 그들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이는 연예인 CEO다. 2003년 8월 1호점(경방필점)을 개설한 이래 2년여 만에 전국에 40여 개의 가맹점을 냈을 만큼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동대문 두산타워에 매장을 내고 의류사업에 뛰어든 가수 김완선

“스파게티를 라면이나 떡볶이와 같이 대중적인 음식으로 만들겠다”는 야무진 청사진을 갖고 있는 그는 내년에는 해외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첨단 유행을 이끌어가는 문화 아이콘의 특성을 살려 패션업계 쪽으로 진출한 스타는 특히나 많다. 신세대 젊은이들에게 ‘패션 스타일 교본’이 돼온 소위 ‘패셔니스타(fashionista)’로 주목 받는 연예인들이 직접 의류 매장을 내면서 연일 화제를 낳고 있다.

가수 출신 탤런트 이혜영은 직접 만든 의류브랜드 ‘미싱 도로시’를 통해 100억원대의 연매출을 올리면서 최근 연예인들의 사업가 변신 붐에 불을 질렀다.

이어 지난 8월 패션모델 출신 탤런트 변정수가 패션브랜드 ‘엘라호야’를 선보였고, 9월에는 톱스타 황신혜가 언더웨어 및 주얼리 패션브랜드 ‘엘리프리’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모두 TV홈쇼핑 시장에서 ‘돈줄 캐기’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게 공통점이다.

학생복 브랜드 공동대표로 발군의 경영솜씨를 보이는 토니안

그간 모델의 역할에 한정됐던 이들은 사업의 주체로 변신하면서 상품 기획단계에서부터 소재 및 디자인, 홍보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나서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독특한 아이템으로 대박 행진

중견탤런트 김영애는 TV홈쇼핑시장에서 대표적인 성공 신화를 일군 연예인 CEO다. 2002년 출시된 김영애의 ‘황토솔림욕’은 GS홈쇼핑의 올 상반기 매출 1위를 기록한 상품으로, 지난 9월 방송에서는 3시간 만에 60억원의 경이적인 매출을 올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황금알을 낳는’ TV홈쇼핑 시장이나 강남 등의 ‘럭셔리’ 상권 대신 동대문 등 재래시장을 두드린 패셔니스타들의 행보도 이채롭다.

지난 4월 탤런트 이승연은 동대문 제일평화시장 지하매장에 ‘어바웃 엘(about L)’이라는 작은 옷 가게를 열었고, 6월에는 김완선이 두산타워에 ‘카멜리아 에스’ 의류 매장을 내고 사장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 9월 서울 은평구 불광역 옆에 문을 연 상가 ‘팜스퀘어’ 매장에는 연예인 사장들이 무더기 입점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 상가 3층 ‘팜 스타존’에 여성그룹 SES의 유진, 탤런트 이의정, 댄스그룹 DJ DOC의 김창열, 개그맨 노홍철, 모델 출신 개그맨 홍진경 등이 줄지어 입점했다.

HOT출신 가수 토니안은 신세대 연예인 CEO로 발군의 실력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학생복 브랜드 ‘스쿨룩스’의 공동대표를 맡은 그는 1년 만에 140억원 매출을 달성하는 등 사업가로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같은 연예인 CEO 붐은 스타 마케팅의 확대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얘기다. TV홈쇼핑 등지에서 보여주는 연예인 파워는 실로 강력하다. 연예인들을 닮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의 소비 욕망을 자극하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홍진경은 어머니와 함께 김치사업에 열중이다.

동대문에서 승승장구 중인 이승연의 ‘어바웃 엘(about L)’을 최근 인터넷 쇼핑몰에 입점시킨 ‘g마켓’의 홍보팀 주경자씨는 “신세대들의 연예인 패션 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워낙 높은 데다가 연예인들도 자신의 감각을 뽐내면서 이를 상품화하는데 긍정적인 분위기라 앞으로도 스타 샵(shop) 열풍은 다양한 형태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연예인 입장에서는 불안정한 미래를 대비하는 ‘보험’으로써, 또 자아실현의 출구로 사업에 대거 참가하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연예기획사 ‘명작엔터테인먼트’ 지상화 대표는 “연예인들이 불규칙적인 수입에 대비해 또다른 수입원을 필요로 하는데다, 모델이나 배우 등 주어진 대로의 역할만 수행하는 수동적 입장에서 벗어나 나름의 영역확장에 대한 열망을 표출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너도나도식 진출에 우려의 목소리도

그러나 최근 연예인들의 ‘너도나도’식 사업 진출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외식업의 성공 신화인 탤런트 선우재덕은 “얼굴이 익히 알려진 연예인으로서의 홍보 효과만큼이나 주변의 기대치가 높아 어깨가 너무나 무겁다”며 “특히 만인의 우상으로 대접 받아온 연예인들이 대중의 눈높이로 내려와 사업을 하다 보면, 대인관계 등에서 좌절을 겪는 사례가 많다”고 충고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