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천하 유아독존

‘독신(獨身)’이 중요한 화두인 세상이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 ‘혼자 사는 사람’이 많은 시대다. ‘초라한 더블보다는 화려한 싱글이 좋다’는 말은 더 이상 새삼스러운 유행어도 아닌 것이다.

결혼 기피와 이혼 증가, 또 가족 해체, 노인 인구 급증 등의 다양한 이유로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의 숫자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이 5년마다 실시하고 있는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00년 기준 우리나라의 총 가구 수는 약 1,439만가구에 이르며, 그 중 ‘1인 가구’ 즉 독신 가구의 수는 약 222만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2005년 현재 다시 인구조사가 실시 중에 있는데, 독신 가구의 수가 300만을 넘을 것이라는 예측결과가 나오고 있다.)

독신의 증가는 다양하고 새로운 사회문화 현상을 동반하고 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다른 그들만의 생활방식을 갖게 마련이다.

그런 그들의 편의와 기호에 맞춰 다양한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독신자들을 위한’이란 용도는 의식주에서 취미 및 여가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걸쳐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며 막대한 경제적 영향력을 파급시키고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멋진 ‘싱글족’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전문직 고소득에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가는 근사한 독신의 모습은 하나의 트렌드를 넘어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으며, 자신이 자기 삶의 주체가 되어 자유를 만끽하는 그들의 모습은 더없이 현대적이며 세련되게 미화되곤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것은 역시 피상적인 겉모습에 불과하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독신의 삶이 그렇게 한결 같이 때깔 좋은 TV광고 속의 한 장면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혼자 산다는 것은 무엇보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마주쳐야 되는 일이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의식해야 되는 일이다.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달리 말해 무엇이든 자신이 ‘직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혼자 사는 사람이 자신이 직접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면 씻지 않은 그릇들은 언제까지나 개수대 속에 그대로 쌓여 있게 된다.

갈아입을 속옷과 양말이 떨어졌어도 자신이 빨래를 미뤘기 때문이라면 불평을 할 수도 없다. 아무도 그를 대신해 바쁜 아침 시간에 셔츠를 다려주지 않는다.

지독한 몸살감기에 걸려 꼼짝없이 누워 있다 하더라도 직접 약국에 약을 지으러 가야 하는 것은 그 자신이다.

조금만 무신경하게 일상을 방치하면 욕실 타일에는 쉽게 곰팡이가 피고, 각종 공과금은 번번이 체납되고 만다.

제때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는커녕 끼니를 때우는 일조차 버겁게 느껴진다. 물론 그 모든 것들은 금전을 통해 대행시키거나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자신이 직접 판단하고 결정하여 그렇게 해야 한다.

삶은 혼자 사는 사람에게 더욱 부지런할 것을, 더욱 치밀할 것을 요구한다. 독신자는 모든 것이 자기 자유지만, 그로 인한 모든 것이 자기 책임이 된다.

그것은 당연히 외롭고 성가시고 피곤한 일이다. 독립(獨立) - 인간에게 있어 홀로서는 일이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가족’이란 제도가 발명된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의 유명한 시인이자 소설가, 에세이스트로도 명성을 날렸던 메이 사튼(1912-1995)의 <혼자 산다는 것>은 역시 독신이었던 그녀 자신의 일기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이 책을 단순히 ‘독신자를 위한 생활지침서’ 정도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독신자에게 있어 진정으로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메이 사튼이 예술가라는 특별한 직업을 가졌던 탓도 있겠지만 그녀는 혼자 살아간다는 것, 즉 앞서 말한 대로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마주치고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의식한다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에 깊이 천착한다. 그녀의 일기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몇 주일 만에 처음으로 혼자 여기서, 마침내 다시 나의 <진짜> 삶을 시작하려고 하고 있다. 그것이 이상한 점이다.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혹은 무엇이 일어난 것인지 캐보고 알아내기 위한 혼자만의 시간이 없는 한, 친구들 그리고 심지어 열렬한 사랑조차도 내 진짜 삶은 아니라는 것이 말이다.

영양분이 되기도 하고 미치게도 만드는 방해받는 때들이 없다면, 이 삶은 삭막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 맛을 완전하게 음미하는 것은 내가 여기 혼자 있고 그리고 이 집과 내가 이전의 대화들을 다시 시작할 때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나는 누구인가’의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독신자이든 그렇지 않든 결국 ‘혼자’라는 것이, 그 누구도 외로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인간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고 멋지게 보인다 하더라도 독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이 혼자임을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강하게 자주 실감하게 되며, 깊은 밤 느닷없이 찾아오는 고통과 외로움으로부터 보호받기도 어렵다.

그러나 메이 사튼은 말한다. 그런 자신을 애써 외면하지 말라고, 고통과 외로움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혼자인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나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있다. 그것은 커다란, 가장 커다란 호사이다.’ ‘나는 존재하기 위한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책임은 막대하다.’ 혼자 살아가는 인간은 여러 가지 괴로움을 겪게 되지만, 자신을 천천히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혼자인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보다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독신의 특권이자, ‘진짜’ 삶이라고 메이 사튼은 말하고 있다.

남의 일기를 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진진하고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혼자 산다는 것>은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 고백이라기보다 자신과 또 다른 자신과의 대화, 혹은 자기 내면으로의 긴 여행기처럼 읽힌다.

삶의 고민들이 천천히 증류되어 한 방울 한 방울씩 모인 물방울 같은 소중한 지혜들이 이 일기 곳곳에 가득하다.

메이 사튼이 말한 대로 ‘어떤 문제의 의미와 목적이란 그 해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혼자’인 모든 인간에게 깊은 위안을 준다.


소설가 coolpond@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