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의 조건

무라카미 류는 한국에 가장 널리 알려진 일본 소설가 중의 한 사람이다. 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 이 세 작가의 작품이 한국에서 팔리는 일본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며 베스트셀러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세 작가 모두 나름의 독특한 작품 세계로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상당수의 고정 팬을 확보하고 있다.

그 셋 중 무라카미 류의 작가적 개성은 단연 도드라져 보인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의 문제를 특유의 도시적이고 세련된 감각으로 표현하고 있고, 요시모토 바나나는 순정만화의 그것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여리고 섬세한 감수성으로 삶의 부조리에 접근한다.

도식화의 무리가 따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광물성’이라고 한다면,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식물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라카미 류는 어떠한가. 그의 소설은 확실히 ‘동물적’이다.

1976년 미술대학 중퇴자였던 24세의 무라카미 류는 소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발표,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과 ‘군조 신인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의 등장이 단연 화제가 되었던 것은 무엇보다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던 파괴력 때문이었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섹스와 마약, 서구대중문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로큰롤에 중독되어 내일의 꿈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당시 일본 신세대들의 방황과 절망을 적나라하게 그린 작품이다.

무라카미 류는 특유의 아웃사이더적인 감성으로 자본주의의 폐해 속에서 극단적인 자기 파괴의 욕망으로 치닫는 청춘들의 초상을 과감한 묘사와 파격적인 구성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젊음에 있어 지독한 절망은 섣부른 희망보다 훨씬 절실한 것이다. 그래서 그 혼란스럽고 끈적끈적한 로큰롤의 선율을 닮은 소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결코 길들일 수 없는 야생의 짐승처럼 더없이 거친 매력을 발산한다.

무라카미 류는 극단적인 것을 지향하는 작가다. 그는 섹스, 폭력, 살인, 매춘 등의 소재를 거침없이 다루며 인간의 기괴하고 어두운 본능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비롯하여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69>, <코인로커 베이비스>, <교코>, <러브&팝>, <토파즈>, <인 더 미소 수프>, <공생충> 등의 작품에는 동성애, 그룹섹스, 마약중독, 원조교제, 이지매, 은둔형 외톨이, 가학적 혹은 피학적인 변태 성욕 등의 소재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작가는 타락과 퇴폐에 찌들고 무기력과 공황 상태에 빠진 현대 일본사회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당연히 무라카미 류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거의 대부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아들이다.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기괴함을 넘어 엽기적이기까지 한 주인공들의 극단적인 방황과 절망을 통해 작가가 결국 무엇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의문을 갖게 된다.

그것은 놀랍게도 ‘생명력’이다. 무라카미 류는 단순히 독자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기 위해 극단적인 소재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절망하고 괴로워하는 것으로 살아 꿈틀거린다. 반항과 파괴를 통해 거친 생명력을 뿜어낸다.

그들은 자신을 구속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려 몸부림치며 새로운 길을 향해 내달린다. 그것은 강렬하고 매혹적인 에너지로 무라카미 류 소설 특유의 아우라를 형성한다.

무라카미 류는 수필집 <자살보다 섹스>에서 순수문학을 ‘제도와 생명력의 싸움을 다루는 장르’라고 정의한다. 소설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주제를 직접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자살보다 섹스>는 무라카미 류의 마니아이거나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한 편도 읽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마니아라면 작가의 세계관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문외한이라면 작가의 수필을 통해 소설에 접근하는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무라카미 류의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섹스나 폭력의 하드코어적인 묘사를 불편하게 여겼던 독자들에게도 부담 없이 받아지리라 생각된다.

‘무라카미 류의 연애와 여성론’이란 부제가 달린 <자살보다 섹스>는 소설 속에서 줄곧 극단적이고 어두운 것에 집착했던 작가가 실은 얼마나 상식적이며 건강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인지 보여준다. 무라카미 류는 명쾌하고 단도직입적인 말투로 다음과 같은 도발적인 문장들을 쏟아낸다.

‘재능 있는 아름다운 여자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좋은 섹스는 전쟁을 방지한다.’, ‘아줌마들은 다른 사람의 오르가슴을 질투한다.’, ‘남자는 소모품이고 여자는 전리품이다.’, ‘아무 사랑이나 다 부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애매모호함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명확해지는 것이 진정으로 사랑을 추구하는 길이라고 착각하는 바보들이 의외로 많다.’, ‘우리의 여러 가지 노력은 보다 훌륭한 타인과 만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무라카미 류는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인간, 즉 온전히 자립한 인간만이 연애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는 것이 ‘특별한 연애’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는 의존은 세상의 가장 큰 죄악이며, 남녀가 서로에게 의존하는 것은 연애를 망치는 지름길일 뿐이라고 말한다.

무라카미 류의 문학은 얼핏 위험하고 불온하게 느껴진다. 그의 문장은 확실히 도발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도발을 위한 도발이 아니다.

그는 지극히 건강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생명력 넘치는 소설가다.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깊은 성찰 끝에 세상의 거짓에 맞선다. 그것이 진정한 도발의 조건이다.


소설가 coolpond@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