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 수놓은 우윳빛 환상

첫눈도 내리고, 겨울이 다가왔다. 하지만 겨울의 한복판에 가까이 갈수록 산과 들에서 꽃을 만나기란 정말 어렵다.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당연한 일이긴 하다.

땅이 얼고 물이 어는데 몸체에 수분을 가득 담은 식물들이 땅 위로 올라와 꽃을 피우는 것을 기대하는 일조차 잘못이긴 하다.

그래도 남쪽에 가면 겨울이 다 왔을 즈음 꽃을 피우는 우리 나무가 있는데 바로 팔손이다. 팔손이는 워낙 이국적인 풍모를 하고 있고, 제주도나 남쪽 섬에서는 바깥에서 자라지만 중부지방에서는 대부분 화분에 넣어 실내에서 키운다.

그래서 그저 외국에서 들어온 수많은 관엽식물 가운데 하나려니 하지만, 이 땅에 절로 나고 자라는 우리 나무임에 틀림없다.

충무에서 배를 타고 가다 보면 한산면 비진도라는 섬에 닿는다. 이 섬에는 크게는 4m까지도 자라는 팔손이의 자생지가 있으며, 자생적인 분포에 의미가 높아 천연기념물 63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물론 인근의 다른 섬에서도 볼 수 있는데 오래 전 태풍의 피해를 입기도 하고, 일부 사람들이 마구 캐어 팔아버린 탓에 천연의 자생지는 많이 줄어들었다.

오늘 우리가 남쪽지방의 정원에서 어렵지 않게 팔손이를 볼 수 있게 된 것은 1970년대 들어 이순신 장군 전승지를 꾸미면서 이 나무의 이식사업을 함께 한 것이 성공을 하면서 좀 더 본격적으로 증식하였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이 때문에 아주 먼 섬으로 찾아가지 않아도 겨울에 풍성한 우유 빛으로 꽃을 피우는 팔손이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팔손이는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작은 키 나무다. 무성하게 자란 모습을 그냥 보면 풀 같기도 하지만 분명 나무이고, 그것도 언제나 푸른 상록수다.

팔손이란 이름은 어린아이 팔뚝 길이만큼 큼직한 잎이 8갈래로 갈라져 붙여졌다. 하지만 7개인 것도 9개인 것도 있다. 겨울철에는 잎이 아래로 쳐지는 경향이 있으니, 꽃이 더 잘 보이라는 잎의 배려일까.

줄기의 끝에 달리는 유백색의 둥근 꽃은 우산모양으로 모여 달리고 이들이 또 다시 모여 전체적으로는 큼직한 원추상의 꽃차례를 보여준다.

이듬해 봄을 보내며 꽃이 달렸던 자리에는 둥글고 까만 열매가 녹두 알만하게 열려 푸른 잎새와 멋진 조화를 이룬다.

팔손이는 팔각금반 또는 팔금반이라고도 부른다. 이 이름은 생약명인데 진해, 거담, 진통의 효능이 있으나 파트시야 사포톡신과 파트신이라는 독성분이 있으므로 의사의 지시를 따라 써야 한다.

그 밖에 말린 잎 300~500g을 목욕물에 우려 자주 몸을 담그면 루마치스 등에 효과를 본다.

팔손이의 학명 중 속(屬)명 훼트시아(Fetsia)는 일본어 여덟 팔(八)자의 야스라는 음이 잘못 전해져 된 것이라고 한다.

비진도에서는 팔손이를 두고 총각나무라고 부르는데, 마음속에 비밀을 간직한 채 잎새처럼 넙적한 얼굴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는 투박한 섬 총각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이 나무의 꽃말은 ‘비밀’이다.

실내 조경이 발달하면서 몬스테라를 비롯하여 수없이 많은 관엽식물들이 등장하고 또 번성하고 있다.

이왕이면 우리 나라 산으로서는 드문 관엽식물 팔손이를 좀 더 많이 찾아 주고 아껴주었으면 싶다. 겨울이 되니 계절을 가리지 않고 푸른 잎을 볼 수 있는, 게다가 꽃도 주는 이 나무가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