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물론, 시는 바쁘다. 할 일이 많기도 하다 - 사랑하는 연인에게 세레나데를 선사해야 하고, 잠 못 드는 깊은 밤 누군가를 그리워도 해야 한다.

삭풍의 눈보라 속에서 봄을 기다리는 꽃망울을 예찬해야 하는가 하면, 거울을 들여다보며 까닭 없이 차오르는 근원적 슬픔에 눈물도 지어야 한다.

시는 노을에 빗겨 날아가는 새들과 늙은 어머니의 굽은 등과 깊고 고요한 우물에 대해 말해야 한다. 맞다. 시는 망설여야 하고, 추억해야 하고, 보듬어야 하고, 침묵해야 한다. 아름다운 꿈을 꾸어야 한다. 그것이 서정(抒情)이다.

그러나 과연 ‘서정’만이 시의 본령일까.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 역시 그런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고 정의했다.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 / 첫 번째 전쟁이 아니다. 그 이전에도 / 이미 여러 차례 전쟁이 일어났었다. / 지난번 전쟁이 끝났을 때 / 승전국과 패전국이 있었다. / 패전국에서 하층 서민들은 / 굶주렸다. 승전국에서도 역시 / 하층 서민들은 굶주렸다.”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 전문, 1936-37)

시는 종종 절망하고 분노한다. 시가 처한 시대가, 시인을 둘러싼 세상이 한가로이 아름다운 연가(戀歌)를 읊기에 적절치 않은 경우에 말이다.

하여 시인은 순결한 양심의 목소리로 광기와 욕망에 휩싸인 시대와 세상을 향해 그것이 아니라고, 그것은 옳지 않다고 부르짖는다. 그로 인해 시인은 순교자처럼 핍박받는다. 어쩌면 그것은 시인의 운명이다.

젊은 브레히트는 세상의 변화와 진보를 원했다. 그는 저 도저한 19세기 리얼리즘 문학의 세례를 받은 아들이었다. 브레히트는 파격적인 형식과 내용의 시와 연극을 선보였다.

그는 파시즘에 대항하는 작품들로 인해 일찍이 나치스의 눈 밖에 난 상태였다. 히틀러가 득세하면서 독일에 본격적인 나치스 정권이 들어서자 브레히트 역시 당시의 많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처럼 망명길에 오른다.

그는 망명지 덴마크에서 ‘분서(焚書)’ 소식을 듣는다. 좌익 진보 세력, 유대계, 파시즘에 반하는 지식인과 예술가 등 (물론 브레히트도 일순위로 포함되어 있었다.) 나치스에 의해 ‘불온한 인물’들로 간주된 저자들의 ‘불온한 책’들이 모조리 압수되어 불태워진 것이다.

중세의 ‘마녀 화형식’을 방불케 하는 ‘책 화형식’이 독일 전국에서 발생했다.

“나의 책을 불태워다오! / 그렇게 해 다오! 나의 책을 남겨 놓지 말아 다오! 나의 책들 속에서 / 언제나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이제 와서 / 너희들이 나를 거짓말쟁이처럼 취급한단 말이냐! 나는 너희들에게 명령한다. / 나의 책을 불태워다오!” (‘분서’ 중, 1938)

작가의 피와 땀으로 씌어진 소중한 저작이 불태워지는 시대.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책을 차라리 남김없이 태워버리라고 역설적으로 일갈하는 시인. 과연 브레히트의 시대는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였던 것이다.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브레히트의 망명 생활은 15년간이나 이어진다.

전쟁의 광기를 피해 가족과 함께 유럽 이곳저곳을 떠돌던 브레히트는 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 철도로 러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미국으로 건너가기에 이른다.

불안정한 떠돌이 신세와 다를 바 없는 망명자의 회환을 브레히트는 다음과 같은 싯귀들로 표현했다.

“벽에다 못을 박지 말자. / 저고리는 의자 위에 걸쳐 놓자. / 무엇 때문에 나흘씩이나 머무를 준비를 하느냐? / 너는 내일이면 돌아갈 것이다.” (‘망명기간에 관한 단상’ 중, 1936-37)

“아침마다 밥벌이를 위하여 / 거짓을 사주는 장터로 간다. / 희망을 품고 / 나는 장사꾼들 사이에 끼어든다.” (‘할리우드’ 전문, 1942)

미국에서의 궁핍하고 소외된 이방인의 삶을 마감하고, 브레히트는 오스트리아를 거쳐 전쟁이 끝난 독일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당시, 서독으로부터 입국을 거부당하고 동독으로 귀환한다.

이후 브레히트는 ‘베를린 앙상블’이란 극단을 만들어 ‘서사극’이라는 장르를 통해 현실 문제에 깊이 천착하는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확고히 다져나간다.

그는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얻지만 부패한 동독 사회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브레히트는 죽기 직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편안한 작가가 아니었고, 내가 죽은 뒤에도 그렇게 남기를 바란다. 그렇다 해도 모종의 가능성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소박하고 절제된 문장으로, 단순하고 명료한 목소리로, 요란한 수사나 복잡한 우회 없이,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를 진실하게 노래했던 브레히트.

그의 시가 특히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것은 우리 역시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를 아프게 통과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여전히 우리는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나는 아직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 믿어 다오, 그것은 우연일 따름이다. 내가 / 하고 있는 그 어떤 행위도 나에게 배불리 먹을 권리를 주지 못한다. / 우연히 나는 살아남은 것이다. (나의 행운이 다하면, 나도 그만이다.) // 사람들은 나에게 말한다. 먹고 마셔라! 네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하라! / 그러나 내가 먹는 것이 굶주린 자에게서 빼앗은 것이고, 내가 마시는 물이 목마른 자에게 없는 것이라면 / 어떻게 내가 먹고 마실 수 있겠느냐? / 그런데도 나는 먹고 마신다. // 나도 현명해지고 싶다. 옛날 책에는 무엇이 현명한 것인지 씌어져 있다. / 세상의 싸움에 끼어들지 말고 덧없는 세월을 / 두려움 없이 보내고 / 또한 폭력 없이 지내고 / 악을 선으로 갚고 / 자기의 소망을 충족시키려 하지 말고 망각하는 것이 / 현명한 것이라고. / 이 모든 것을 나는 할 수 없으니, / 참으로, 나는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구나! // (중략) // 우리가 잠겨 버린 밀물로부터 / 떠올라오게 될 너희들은 / 우리의 허약함을 이야기할 때 / 너희들이 겪지 않은 / 이 암울한 시대를 / 생각해다오. / 신발보다도 더 자주 나라를 바꾸면서 / 불의만 있고 분노가 없을 때는 절망하면서 / 계급의 전쟁을 뚫고 우리는 살아오지 않았느냐. / 그러면서 우리는 알게 되었단다. / 비천함에 대한 증오도 / 표정을 일그러뜨린다는 것을. / 불의에 대한 분노도 / 목소리를 쉬게 한다는 것을, 아, 우리는 / 친절한 우애를 위한 터전을 마련하고자 했었지만 / 우리 스스로가 친절하지 못했단다. // 그러나 너희들은, 인간이 인간을 도와주는 / 그런 정도까지 되거든 / 관용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생각해다오.” (‘후손들에게’ 중, 1934-38년)


소설가 coolpond@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