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은 '올뻬미 체질' 집중력 높이려 새벽회의 즐겨"

출판-현명관 자서전 '아직 끝나지 않은 도전' / 매일경제신문사 발행 / 1만2,000원

“촌놈이 출세했다는 말은 내게 꼭 들어맞는 말이다. 한반도 남쪽 끝자락 제주도에서 태어나서 성장기를 보내고 홀로 어렵사리 상경해 서울고, 서울대 법대를 나와,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무원 생활을 경험했다. 일본 유학 후 삼성그룹에 입사해 경영자로 성장했고, 전경련 부회장으로도 활동했다. 지도를 펴 놓고 보면 조그마한 점에 불과한 제주도에서 출발해서 세계를 상대로 사업을 하는 삼성그룹의 최고경영자까지 되었으니 내 삶은 ‘섬에서 글로벌로 나아간 인생’이었다.”

현명관(65) 삼성물산 회장이 최근 펴낸 자서전 ‘아직 끝나지 않은 도전’의 후기에서 스케치한 자신의 인생 여정이다.

현 회장은 자서전에서 1970대 말 감사원 감사관에서 삼성그룹의 전주제지(현 한솔제지)로 이직한 이후 신라호텔 사장과 그룹 비서실장 등을 거치며 겪었던 40년 직장 생활을 시간 순으로 회고했다.

특히 현 회장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하고 대대적 그룹 변신을 주도했던 1993년부터 3년 2개월간 그룹 비서실장(현 구조조정본부장)을 지내면서 옆에서 지켜 본 이 회장의 모습을 생생히 소개해 주목을 끈다.

현 회장은 “이 회장이 은둔하는 사람, 공식석상에 잘 나타나지 않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승지원(삼성그룹 영빈관)이나 한남동 자택에서 주요 인사들과 식사를 하면서 여러 가지 사안을 협의하고 회의를 한다”며 이 회장이 사람을 만날 때 비서실의 치밀한 역할에 대해서도 상세히 밝혔다.

비서실은 이 회장이 만날 사람의 이력을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당사자의 음식 취향 등 세세한 기호까지 조사한다. 비서실은 또 이 회장이 누구를 만났고, 언제 만난 적이 있으며, 만났을 때는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항상 기록하여 관리한다.

나아가 이 회장을 만나려는 목적이 무엇이고 무슨 얘기가 나올지까지 예상하여 결론 부분까지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이 그룹 비서실의 몫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현 회장은 “이 회장이 정부 관계자를 만나면 사회 인프라에 대한 제안을 많이 했다”며 “영종동 신공항과 가덕도 신항만도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사실은 이 회장의 아이디어”라고 전했다.

삼성그룹의 반도체 사업 진출 역시 세간에는 이병철 회장이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이 회장이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반도체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여 이병철 회장에게 건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현 회장은 “이 회장이 한 문제에 골몰하기 시작하면 끝까지 파고 드는 성격으로 보통 ‘왜’라는 질문을 다섯 번 정도는 한다”며 이 회장의 업무스타일의 일면을 소개했다.

이 회장의 자택 집무실에는 서울ㆍ뉴욕ㆍ런던ㆍ남미 등 세계 곳곳의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5개가 걸려있으며 그곳이 진짜 오피스나 다름없고, 중요한 인사와의 전화는 반드시 녹음을 한다고 전했다.

또 “이 회장은 중요한 회의를 할 때에는 생각을 집중할 시간, 옆에서 방해를 받지 않을 시간을 택하여 토론과 회의를 하는 걸 좋아하는 ‘올빼미 체질’로 새벽 2~4시에 회담이나 회의를 갖곤 했다”고 회고했다.

현 회장은 자신의 인생 역정을 도전의 연속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저서전의 제목을 ‘아직 끝나지 않은 도전’으로 정했다. 이는 아직 남은 도전이 있다는 얘기다.

그는 자서전 말미에 고향 제주도를 글로벌 경제시대에 걸맞는 경쟁력을 갖춘 곳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최근 현 회장이 5ㆍ31 지방선거에서 제주 도지사에 출마할 것이란 소문이 정치권에 나도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