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이라는 서글픈 오해

몇 해 전 겨울, 한 지방의 소도시(小都市)인 A시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여행이 목적이 아닌 다소 공적인 용무 때문이었다.

A시에 가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맑고 추웠던 어느 겨울날, 아침나절부터 제법 밤이 깊어질 때까지 일행과 함께 A시에서 하루를 보냈다.

두 차례 식사를 했고, 자리를 옮겨가며 차를 마셨다. 종일 A시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A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꽤 유명한 사찰과 풍광이 뛰어나다는 도립공원이 있긴 했지만, A시가 사람들 사이에 관광도시로 알려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런 평범한 지방의 소도시 - 그렇게 크다고도 할 수 없고, 그렇게 작다고도 할 수 없는, 그렇게 유서 깊다고도 할 수 없고, 그렇게 특색 있다고도 할 수 없는, 도시 A. 딱히 널리 알려진 토산품이나 명물 먹을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A시는 분명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름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도시였다. 30만 명에 가깝다는 시민들이 다른 여느 곳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터전이었다.

그날 겨우 하루 동안 보고 느낀 것들이 A시의 참모습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A시의 모든 곳을 속속들이 관찰한 것도 물론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무런 연고가 없는 A시에서 완전한 나그네로 하루를 보내고 난 후, 밤이 깊어져 몹시 피로하면서도 허황되고 서글픈 기분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이다.

그날의 번다한 일정 때문만도, 몸을 움츠러들게 하는 추운 날씨 때문만도 아니었다.

A시는 어딜 가나 ‘발전’ 중이었다. 어떤 공공시설의 유치를 둘러싸고 시민들 간의 찬반논쟁이 있었던 모양으로 어딜 가나 수많은 플래카드가 휘날리고 있었다.

어딜 가나 ‘A시의 발전을 앞당기자!’ 등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철골 구조물을 쌓아 올리고 있는 공사현장이 몇 십 미터가 멀다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아파트와 오피스텔, 복합 상가와 대형 음식점 등이 여기저기서 경쟁적으로 세워지고 있었다.

보다 편리하고 보다 현대적이고 보다 부유해지길 기대하며 A시는 ‘발전’ 중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굴삭기와 크레인 등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왠지 그것이 활기차 보이지는 않았다.

주변 풍경과의 안배라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한 건물의 모양, 요란하게 고함을 치고 있는 인상을 풍기는 색색의 대형 간판들, 오래되고 낡은 것들은 결코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는 식의 가차 없는 개발 논리…….

물론 새삼스러울 것은 없는 일이었다. 이미 서울이나 다른 대도시에서 숱하게 보아왔던 것들이었다. 개발독재의 반세기를 대한민국 사람으로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익숙하게 목격했을 장면들이었다.

저녁 무렵, A시의 신시가지에 도착했었다. 신시가지 중에서도 계획적으로 상업 유흥가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수십 군데의 식당과 카페와 술집과 노래방과 모텔 등이 작은 공원을 둘러싸고 마치 백화점처럼 한데 모여 있었다.

한날한시에 모두 함께 문을 연 듯 그 중 어느 것 하나 ‘새 것’이 아닌 것은 없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어두워진 거리에 그들의 간판이 그야말로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결코 아름답지는 않았다. 평일의 추운 겨울밤인 탓도 있었지만, 그 날 A시의 신시가지 유흥가는 더없이 썰렁하고 을씨년스러웠다.

드물게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유흥’의 감정 따위는 전혀 일지 않았다. 그 황폐한 화려함이 괴기스럽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한참을 망설이다 들어선 ‘야누스’라는 이름의 스카이라운지 카페는 고대 그리스로마풍의 조각품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서울에선 요즘 이런 게 유행이래, 어때, 이 정도면 좀 있어 보이지?’ - 그저 흉내를 내었을 뿐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조악한 인테리어였다.

수천 년 전 신과 인간의 존재를 고민하며 만들어졌던 위대한 예술품들은 그렇게 형편없이 이물스러운 키치로 전락해 있었다.

도대체 ‘발전’이란 무엇인가. 보릿고개 근절과 전깃불과 수세식 화장실 등으로 상징되던 ‘발전’은 넓은 도로와 높은 빌딩과 편리한 자동차를 지나, 최첨단의 전자제품과 초호화의 해외여행과 부지런히 트렌드를 좇는 사치로 오해되어 왔다. 우리는 정말 ‘발전’한 것일까?

스웨덴의 여성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16년 간의 티베트 라다크에서의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한 <오래된 미래>는 이미 너무나도 잘 알려진 책이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이제는 고전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필독서이자 스테디셀러이다. 그러나 이 <오래된 미래>는 아직까지 충분히 읽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발전’에 대한 오해가 이 나라에서, 이 지구상에서 그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비단 이 책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제법 빈번하게 여러 매체들을 통해 ‘티베트’를 접하고 있다.

그들의 소박하고 검소한 삶, 경건한 신앙, 따뜻한 공동체와 진정한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추구하는 그들의 지혜를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가진 것이 적고 훨씬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는 그들이 환경 호르몬이나 새집 증후군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긋지긋한 스팸메일을 지우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세상을 비관해 달리는 지하철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교육비가 부담스러워 출산을 기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미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미래>는 아직까지 충분히 읽히지 않았다. 그 뒤로 A시에 가 본 적이 없지만 A시는 틀림없이 계속 ‘발전’ 중일 것이다.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도 왜 계속 문제가 생기는지, 왜 계속 공허하고 황폐해져 가는지 의아해하면서도 말이다. 물론 다른 많은 곳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라다크인이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에서 티베트어로 적어 준 노래의 몇 구절을 옮겨본다. <오래된 미래>는 더욱 많이 읽혀져야 한다.

“이곳의 우리에게 진보는 없어도 / 복된 마음의 평화가 있다 /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해도 / 더 깊은 법의 길을 가지고 있다 // (……) 죽음의 시간에는 쌓아온 행적 말고는 / 한 조각의 부도 가져갈 수 없다 / 우리가 하는 선하고 악한 행동이 / 우리의 기쁨과 슬픔을 만들어낸다”


소설가 coolpond@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