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어떻게 유령이 되는가

이 책은 우울하다. 굉장히, 치명적으로 우울하다.

이 책이 그려내고 있는 우울은, 이 책이 유발시키고 있는 우울은 단순히 감상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언가 영혼의 일부가 파괴되는 듯한 고통을 수반하는 심각한 우울이다. 짐짓 돌이킬 수 없는 우울이다.

아무리 외면하려고 해도,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결국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숙명적인 우울인 것이다.

개리 길모어(1940-1977)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범죄자 중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76년 유타주 프로보에서 이틀간 두 명의 무고한 시민을 총으로 쏘아 살해했다. 그것은 개인적인 원한에 의한 살인이 아니었고,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도 아니었다.

개리 길모어는 어려서부터 소년원을 들락거린 문제아였으며, 이미 노상강도 혐의로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이력의 소유자였다.

당시 가출옥 상태였던 그는 평생에 걸쳐 형성된 충동적이고 모순적인 파괴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또다시 비극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개리 길모어는 곧 체포되었고 법원으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미국 전역으로 악명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당시 미국에서는 사형제도 폐지를 놓고 오랜 기간 논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연방법원에 의해 사형제도가 합헌이라는 결정이 나긴 했지만, 폐지론 쪽의 여론도 만만치 않아 그로부터 과거 10년 동안은 실제 사형이 집행된 적이 없었다.

사회적으로 예민한 문제였던 만큼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관례상 곧 종신형을 의미했다.

그런데 개리 길모어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법정에서 스스로 사형 집행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것도 총살을 원한다고 말했다. (책의 제목인 <내 심장을 향해 쏴라>는 거기에서 연유한다.)

사실상 종신형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상황에서 개리 길모어는 ‘굳이’ 죽음을 선택하고 나선 것이다.

사형제도의 존폐논쟁과 맞물려 그는 단숨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국의 모든 언론이 경쟁적으로 개리 길모어의 사건을 다루었고, 그는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표지 모델로까지 등장했다.

개리 길모어는 악마적인 매력을 가진 범죄자였다. 사형제도 폐지 논쟁이 자신으로 인해 더욱 불붙는 와중에서, 그는 태연하게 권력을 비웃고 대담하게 법과 언론을 조롱하는 한편 침착한 모습으로 죽음에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화가로서의 숨겨진 재능까지 알려지면서 그는 일약 사회적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를 영웅으로 미화하는 사람들도 생겨났고, 악마의 화신으로 저주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개리 길모어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범죄자 중의 한 사람이 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내 심장을 향해 쏴라>는 개리 길모어의 사형이 집행된 지 (그는 자신의 바람대로 총살형을 당했다) 17년이 지난 후 세상에 나온 책이다. 책의 저자인 마이클 길모어는 저명한 음악평론가이자 에세이스트인데, 바로 죽은 개리 길모어의 막내 동생이었다.

여기 한 사람의 흉악한 범죄자가 있다. 그의 인생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그는 불우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가혹하게 학대했고, 그는 자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아버지에게 얻어맞는 장면을 숱하게 목격하면서 자랐다.

그는 반항심에 사로잡혔고 일찍부터 문제아로 낙인찍혔다.

그의 비행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그는 이내 소년원으로 보내졌다. 그는 거기에서 더 큰 폭력과 모순과 절망을 경험했다. 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정서적 안정과 평온한 사랑을 얻지 못한 채, 자신과 세상을 파괴하려는 욕망에 시달리다 결국 살인자가 되었다.

이렇게 요약되는 인생이란 분명 비극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분명한 것은 그러한 비극이 세상에 너무나 흔하다는 사실이다. 비단 개리 길모어만이 그러한 불행을 겪은 것이 아니다. 또 그러한 불행을 겪었다고 해서 모두가 다 범죄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인생에는 단순한 요약만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깊고 심오한 비밀과 진실이 있다. 살인자의 가족, 총살을 자처한 사형수의 동생 마이클 길모어는 그 비밀과 진실에 다가가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이 책을 써내려갔다.

그는 단순히 형의 범죄행각을 쫓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마이클 길모어는 자신의 부모는 물론 백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조부모, 증조부모의 삶까지 집요하게 추적한다.

또한 고향의 문화와 종교 속에서 자신의 형제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세밀하게 묘사한다. 자신의 가족들을 하나하나 치밀한 소설 속의 인물처럼 완벽하게 되살려 놓는다.

책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그것은 자신의 형이 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형수가 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알아내기 위한 지난한 시도였고, 자신의 가족에게 내려진 형벌과도 같은 불행한 운명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는가를 찾아내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었던 것이다.

물론 마이클 길모어는 그 과정에서 가위눌림을 당하는 듯한 공포와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자신과 가족의 치부가 들춰지고, 애써 외면하려 했던 추악한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세월로 인해 아물어가던 상처는 다시금 생생한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형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인간이 가진 어둠에 대한 절망. 돌이킬 수 없는 불행과 운명 앞에서 그는 결국 상처의 완전한 치유라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소름끼치도록 냉엄한 결론에 다다른다.

이 책에서 길모어 가족들은 자주 유령을 목격한다. 여기서의 유령은 섬뜩한 공포와 불행한 운명을 암시하는 악몽과도 같은 존재다. 또한 인간이 가진 모순과 부조리, 그로 인해 만들어진 불행과 상처들이 한데 뒤섞여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는 블랙홀이기도 하다.

이 책은 우리들 누구나 자기 자신 속에 그 유령을, 그 무시무시한 블랙홀을 가지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 책은 우울하다. 굉장히, 치명적으로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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