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 백도

여수에서 남으로 114km, 제주에서 북으로 108km 떨어져 있는 섬, 100여 년 전
'포트 해밀턴'(Port Hamilton)이라는 이름으로서구에 알려졌던 섬, 거문도(巨文島). 이렇듯 망망대해 한가운데 솟아있는 거문도는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요즘엔 동백꽃과 수선화가 곱게 피어나는 환상의 섬으로 탈바꿈한다.

거문도 불탄봉(195m)은 동백 밀림이다. 동백나무 사이로 나있는 산길은 동백잎의 진녹색으로 뒤덮여 어둑하지만 여기저기 피어난 동백 꽃송이의 화사한 미소가 반갑다. 대부분 붉은 동백이지만 가끔 분홍 동백도 눈에 띈다.

일제 때의 지하 벙커가 남아있는 불탄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도내만(島內灣)은 세 개의 섬이 병풍처럼 둘러쳐서 잔잔한 호수처럼 보인다. 구한말에 유럽 열강이 동북아 진출의 교두보로서 군침을 흘렸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역사는 1885년(고종 22년) 군함 6척과 수송선 2척으로 구성된 영국 동양함대가 거문도를 2년 간 점령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지금도 바다가 보이는 고도 언덕엔 영국군 수병 묘지가 남아 있다.

불탄봉 정상에서 내려서면 널따란 억새밭. 해풍에 억새가 누웠다 일어선다. 그 너머로 녹색의 동백숲이 다시 펼쳐져 있고, 아래로는 쪽빛 바다가 손짓한다. 산길 옆의 무덤가엔 수선화도 피었다.

하얀 꽃잎과 노란 봉오리는 흰 접시 위에 금색의 술잔을 올려놓은 것만 같아 금잔은대(金盞銀臺)라고 부른다는 꽃. 바람 세찬 언덕에서도 꿋꿋한 수선화의 맑은 향내가 몸 속으로 스며든다.

길은 다시 동백숲으로 이어진다. 오른쪽으로는 가파른 해안 절벽이 위태로운 ‘기와집 몰랑’이다. ‘몰랑’이란 산마루란 뜻의 전라도 방언이니, 이는 ‘기와집 형상의 산마루’란 뜻이다. 이 해안 절벽은 바다에서 보면 정말로 웅장한 기와집 용마루를 닮았다.

동백꽃으로 뒤덮힌 불단봉

거문도 불탄봉 오르는 길의 동백

바위지대를 넘어서면 다시 동백숲이다. 떨어진 꽃송이가 등산화에 밟힐까 발길이 조심스럽다. 동박새 지저귀는 소리도 요란하다. 이번엔 해안에 우뚝 솟은 신선바위다. 바위 사이로 조심스레 오르면 남성미 넘치는 거문도 해벽 너머로 새하얀 등대가 아련하다.

파도가 센 날이면 바닷물이 넘나든다는 목넘이재를 넘어, 떨어진 동백꽃이 붉은 양탄자처럼 깔리는 동백 터널을 지나면 등대가 코앞이다. 등대 옆의 정자 관백정에 오른다. 동쪽을 바라보면 머나먼 수평선에서 환영인 듯 솟은 섬들이 햇살에 하얗게 빛난다. 신비의 바위섬 백도(白島)다.

불탄봉의 본격 산행과 탐승을 곁들인 삼호교→덕촌마을회관→불탄봉→기와집 몰랑→신선바위→보로봉→등대 코스는 4시간30분 정도 걸리고, 가볍게 산책하며 동백꽃 탐승을 즐기는 삼호교→유림해변→기와집몰랑→신선바위→보로봉 코스는 2시간이면 충분하다.

환영처럼 나타나는 백도

거문도항에서 백도로 가는 유람선에 몸을 싣는다. 옥빛의 망망대해를 얼마나 나아갔을까. 옅은 해무 사이로 환상인 듯 문득 바위섬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상백도와 하백도를 합쳐 모두 39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진 백도.

국가명승지 7호로 지정되어 있는 백도에는 희귀한 난이 많이 자라는데 향이 너무 진해서 옛날 어부들은 짙은 해무가 드리워지면 백도의 난향을 등대 삼아 뱃길을 찾았다고 한다.

예전엔 배에서 내려 잠깐씩 섬을 둘러볼 수도 있었으나 1980년대 중반부터 출입이 금지됐다. 상백도엔 태양열 무인 등대가 있어 이곳을 지나는 선박들의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무인도지만 거문도 주민들은 전설을 건져 올렸다. 태초에 옥황상제의 아들이 용왕의 딸과 눈이 맞아 이곳에 내려와 머물렀다.

옥황상제는 100명의 신하를 내려보냈으나 아들은 물론이요, 바다 풍광에 매료된 신하들도 모두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자 화가 난 옥황상제는 아들과 신하들을 모두 돌로 변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오랜 세월 파도와 해풍에 맞서 살아가면서 모두 무엇인가를 닮아갔다.

왕관바위가 눈길을 사로잡고, 등대섬을 지나면 바다에서 헤엄치는 물개바위가 반긴다. 시루떡바위로 주린 배를 채우고 병풍바위 지나면 먹이를 채 갈 듯한 매바위.

해조음 듣는 관음보살상 우러르면, 하늘 향해 불쑥 솟은 백도 최고의 명물 서방바위다. 남근 닮은 이 서방바위에 은근한 눈길 주는 각시바위를 지나면 언제나 자애로운 성모마리아바위, 거북바위…. 백도의 전설은 이렇듯 바위섬 곳곳에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여행정보
교통 △ 경부(중부)고속도로→비룡분기점→대전․통영간고속도로→진주분기점→남해고속도로(광주 방면)→순천 나들목→17번 국도→순천→여수항. 서울서 5시간30분 소요.
△ 서울→여수=강남터미널에서 매일 40~60분 간격으로 17회(06:00~17:50) 운행. 일반 19,200원, 우등 28,600원. 부산종합터미널과 대구서부시외버스정류장에서 매일 6~7회 운행. 4시간 소요. 광주종합터미널에서 수시 운행. 1시간50분 소요.
△ 용산역→여수역=매시 50분마다 12회(06:50~22:50) 운행. 새마을호(07:50 13:50 17:50) 5시간 소요. 요금 35,900원. 무궁화호(9회) 5시간40분 소요. 요금 24,200원.

배편 △ 여수항→거문도=매일 2회(08:00 13:30) 출항. 2시간20분 소요, 요금(편도) 일반 28,200원 학생 25,600원 어린이 14,100원. 거문도→여수항=12:00 16:00 출항.
△ 거문도↔백도=10:30 출항. 1시간30분~2시간30분 소요. 왕복 19,000~25,000원.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려면 거문도관광(www.geomundo.co.kr 080-665-4477)에 문의.

숙식 거문도 부둣가에 거문장(061-666-8052) 하얀집(061-666-8053), 해동각(061-666-4242) 등의 숙박시설이 많다. 2인1실 기준 25,000~30,000원. 섬마을식당(061-666-8111) 등에서 회를 맛볼 수 있다. 자연산 모듬회(4인 기준 5~6만원), 우럭탕(4인 기준 3만원), 갈치조림(1인분 1만원) 등을 차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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