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두 얼굴 / 로버트 A. 아이작 지음 / 김정민 옮김 / 이른아침 발행 / 1만 5,000원

세계 최대 부자 225명의 재산을 합치면 1조 달러 이상으로 이는 세계 인구 중 최빈층 47%의 연간 수입 전체와 맞먹는 수준이다. 세계 3대 부자의 재산은 48개 최빈국 연간 국민총생산(GNP)의 합을 넘는다. (1998년 기준)

또 하나. 미국 국민의 평균 연봉은 1970년 32,522달러에서 99년 35,864달러로 29년 동안 약 10% 늘었다. 이에 비해 상위 100위권 CEO의 연 평균 수입은 이 기간에 130만 달러에서 3,750만 달러로 약 2,900% 상승했다.

세 번째 사례. 삼성그룹과 현대 · 기아차 그룹의 2006년 매출 목표는 각각 150조원, 100조원에 달해 합치면 올해 우리나라의 국가예산 221조원을 초과한다.

가히 부익부 빈익빈이다. 부자와 빈자의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올해 국정의 최우선과제로 양극화해소 문제를 제기했다.

왜 이렇게 부자는 끝없이 돈을 벌고 빈자는 그 반대인가? 빈자는 게으르고 운이 나빠서 그런가? 그렇지 않다면 빈자는 헤어나올 수 없는 구조적인 빈곤의 덫에 걸린 것인가?

미국 로버트 A. 아이작 교수는 신작 ‘세계화의 두얼굴’에서 양극화 문제의 뿌리를 파헤친다.

양극화의 원인으로 그는 세계화를 든다. 그 시기는 1980년대부터라고 본다. 영국 마가렛 대처 수상과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보수주의 세력은 ‘세계화’라는 명분하에 경제와 정치시스템의 ‘탈규제화’를 밀어붙였다.

그들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시장의 모든 규제를 풀어 정부 개입이 없는 ‘카지노 자본주의’가 필요하며 평범한 시민도 이 게임에 참여하면 누구라도 부를 축적할 수 있다고 약속했다.

이와 함께 하이테크와 통신혁명, 기업가 정신, 기업 경쟁력, 민영화, 혁신, 자본시장의 개방, 농산물 시장 개방 등 자유시장 이데올로기 공세를 지속했다.

저자는 이를 한마디로 ‘부자들의 반란’이라고 규정한다. 80년대 이후 세계의 주도권이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대중(mass)에서 부자들에게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저자는 “세계화의 열매를 딴 것은 극소수의 국가와 극소수의 부자들이었으며 중산층은 하류층으로 떨어지고 빈자들은 부를 축적할 기회는커녕 일자리마저 위협받고 있다”며 기득권 세력은 더 많은 가난을 양산하면서 스스로는 훨씬 부유해졌다고 지적한다.

이 과정에 다국적 기업들은 세계적 네트워킹을 통해 ‘권력’까지 강화한다. 저비용의 국가에 아웃소싱하고, 자동화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인수합병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덩치를 키운다.

가속화하는 경쟁에서 구조조정과 인력감축을 서슴치 않는다. 이에 따라 시대에 뒤떨어지고 불필요한 사람들을 해고해 실업자와 불완전 고용을 양산한다. 이것이 21세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고용없는 성장’의 실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여기다 부자들은 GDP성장의 지표만을 내세워 세계 경제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고 홍보한다. 부의 편중과 빈곤의 확산을 망각케하는 통계의 착시현상이다. 경제는 나아지지만 실제로는 빈자들의 생활은 더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의 어두운 얼굴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IMF의 혹독한 프로그램에 의해 신자유주의경제 체제가 도입됨에 따라 부익부 빈익빈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 높은 이자율과 구조조정 때문에 빈자들의 빚은 눈덩이처럼 불었고 고용은 불안해졌다.

물론 세계화는 피할 수 없다. 거부하면 세계시장 경쟁력에서 밀려 빈자들의 삶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야말로 딜레마다.

이에 대해 저자는 하나의 해법을 제시한다. ‘인간의 얼굴을 가진 세계화’의 복원이다.

그 돌파구를 교육에서 찾는다. 저자는 “기술 속도는 너무 빠르기 때문에 교육을 통하지 않고는 따라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기회의 평등 차원에서 교육격차를 줄여야 한다”며 “부자들과 부유국들이 신경제의 첨단기술에 접속할 수 있는 인재를 기르기 위해 빈국과 가난한 지역에 ‘지속 가능한 하이테크 공동체와 학습센터’를 세우자”고 역설한다.

그 운영은 정부나 기존의 국제기구가 아니라 NGO가 맡아 투명하게 시행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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