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를 보면 눈길을 끄는 광고가 한 편 있다. 영화 형식을 적용해 제작한 기아 자동차 회사의 신차 광고다. ‘애드 무비’로 불리는 이 블록버스터급 광고는 기존 광고 제작비의 3배가 넘는 돈을 들여 영화적 완성도를 높였다.

광고 연출은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박광현 감독이 맡았다. 지난해 영화 ‘웰컴 투 동막골’로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신인상과 감독상을 휩쓴 박광현 감독은 CF감독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 이번 광고 연출은 영화감독으로 멋지게 데뷔를 한 그가 친정에 돌아와 내심 감독으로서의 실력을 뽐낸 게 아닌가 싶다.

외국의 영화감독들 중에도 CF감독 출신답게 독특한 비주얼 감각을 갖고 있는 감독들이 많다.

미국 감독협회로부터 ‘올해의 CF감독’으로도 선정된 바 있는 마이클 베이 감독은 영화 ‘나쁜 녀석들’,‘아마겟돈’에 화려한 영상미를 선보였다. 에로틱한 영화에서 섬세한 연출력을 인정받은 에드리안 라인도 CF 출신답게 대사 없이 영상만으로도 관객을 사로잡았다.

이처럼 CF 출신 감독들은 광고 속의 크리에이티브한 이미지를 스크린으로 확장해 영화를 보다 다양하고 기발하게 만들어 나가고 있다.

‘맥도날드'와 '선영아 사랑해’ CF로 유명한 박광현 감독 역시 대사보다 이미지를 먼저 생각하는 그의 광고적 마인드를 영화에 담아 영화를 기발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의 재기발랄한 재주는 ‘웰컴 투 동막골’에서의 맷돼지 사냥 장면만 봐도 알 수 있다. 원작에는 없는 이 장면은 슬로우 모션 하나만으로 코믹스럽게 연출되었다. 그렇다면 단순한 비주얼만으로도 웃음을 만들어내는 이 신예 감독의 데뷔작은 무엇이었을까?

박 감독은 비상업적 단편영화 제작이나 조연출 시절을 겪지 않고 상대적으로 조금 수월한 방법으로 입봉을 한 케이스다.

CF감독 시절 쓴 시나리오가 장진 감독에 눈에 띄어 운 좋게 영화감독이 된 것. 이 때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세 편의 단편이 모인 옴니버스 영화 ‘묻지마 패밀리’다. 여기서 박 감독은 첫 번째 에피소드 ‘내 나이키’를 맡아 제작했다.

‘내 나이키’는 옴니버스 영화의 세 가지 에피소드 가운데 가장 대중적이고 상업성이 강하다는 평을 받은 영화다.

1980년대 가난하고 고단했던 시절을 ‘나이키’라는 상징적인 아이템으로 풀어나가고 있는 이 영화는 감독의 처녀작치고는 향수와 유머를 잘 버무려내고 있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그 시절 모든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나이키 운동화를 갖고 싶은 한 소년. 운동화를 사기 위해 돈을 모으지만 동네 왈패들에게 모두 뺏기고 만다. 나이키 운동화는 살 수 없게 되었지만 결국 소년은 나이키를 신고야 만다.

이 마지막 결말은 그야말로 관객이 무릎을 탁 칠만큼 기막히다. 줄거리는 단조롭고 건조해 보이지만 이를 세심하게 엮어내는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이 외에 다른 두 편의 에피소드인, 4개의 모텔방에서 얽히고설키는 오해와 복수극을 그린 ‘사방에 적’,‘짝사랑하는 교회 누나와의 설레는 재회를 그린 ’교회누나‘는 각각 단편영화와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이 연출했다.

단편영화 네 편이 모였지만 배우의 면면을 살펴보면 단편영화답지 않은 무게감마저 느껴진다.

조금은 엉뚱해 보이는 고시생역에서 포스터 속 국회의원의 임원희와 날나리 형이면서 모텔 벨보이 류승범, 동네 깡패이자 바람난 제비 신하균과 아내를 죽이는 남편역의 정재영까지. 장진 사단이 대거 총출동한 이 옴니버스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세 가지 에피소드에 다양한 이미지로 등장하고 있는 배우들의 변신이다.

2002년 개봉해 나름대로 호평을 받은 영화 ‘묻지마 패밀리’. 하지만 호평에도 불구하고 ‘블랙 준(검은 6월, 2002년 월드컵 기간)’의 위협 속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월드컵 당시 프랑스를 물리친 세네갈의 돌풍처럼 대작 사이에서 꽤 순항하며 개봉 첫 주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 신인감독들에게는 그야말로 잊을 수 없는 월드컵이 되었을 것이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