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태백산맥과 꼬막, 그리고 찰진 역사와 문화의 고장

남도 땅, 순천과 보성 사이에 자리한 벌교.

이념으로 빚어진 동족상잔의 비극을 다룬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무대로 잘 알려진 고을이다. ‘태백산맥’은 비록 픽션이지만 벌교엔 소설 속의 배경이었던 장소들이 소설과 너무나도 똑 같은 위치에 남아 있어 소설의 현실감을 곱절로 높여준다.

또 소설에서 작가가 특별한 애정으로 풀어놓은 쫄깃한 맛의 꼬막은 이젠 벌교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봄이 오는 벌교 땅으로 달려가 ‘문학 기행’과 ‘별미 기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자.

소설 '태백산맥'의 생생한 무대

‘한의 모닥불’, ‘민중의 불꽃’, ‘분단과 전쟁’, ‘전쟁과 분단’ 이렇게 총 4부작 10권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여순사건이 일어나던 1948년 10월, 좌익이 장악했던 벌교가 다시 군경의 수중으로 들어간 뒤 좌익의 비밀당원인 정하섭이 벌교로 잠입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버스터미널 옆쪽의 벚나무 언덕길을 오르면 소설의 첫 장을 열어 가는 현부잣집이 나온다. 여기서 정하섭은 무당 딸 소화의 집에 몸을 숨기고, 소화는 그의 심부름꾼 노릇을 한다.

현부잣집 가까이 있던 무당집은 이젠 허물어져 흔적을 찾을 수 없으나 현부잣집은 최근 번듯하게 복구해놓았다. 대문 앞의 연못을 지나 누마루가 있는 으리으리한 문간채를 들어서면 정면에 안채가 있다. 안채의 양식은 한옥을 기본 틀로 삼았지만 곳곳에 왜색이 가미된 독특한 구조다.

벌교 읍내 한가운데를 적시고 흐르는 벌교천엔 여러 개의 다리가 걸려있다. 역시 모두 소설의 배경이다. 경전선 열차가 지나는 철다리는 염상구가 벌교의 주먹세계를 장악하기 위해 우두머리였던 쌍칼과 담력 겨루기를 했던 곳이다.

▲ 벌교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본 홍교(위)
▲ 소설 '태백산맥'의 첫 장면을 열어 가는 현부잣집.

철다리 상류의 부용교는 우익과 좌익 인사들이 희생을 당한 현장. 벌교 주민들은 흔히 ‘소화다리’라 부르는데 소설 속의 새끼 무당인 소화(素花)와 연관이 있는 게 아니라, 일왕 히로히또(昭和 6년) 때인 1931년에 만들어져서 그렇다는 것이다.

여순사건 때는 여기서 우익인사와 지주 등 1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반란군이 진압되었을 때는 반대로 좌익 인사들의 피로 물들었다. 소화다리는 이젠 낡아 인도로만 쓰이고, 그 옆에 차량 통행이 가능한 새로운 다리를 붙였다.

염상진과 하대치 등이 지주들에게서 빼앗은 쌀을 소작인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쌓아 놓았던 홍교(보물 제304호)는 소화다리 상류에 있다. 원래 이 자리엔 뗏목으로 만든 다리가 있어 현재의 벌교(筏橋)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그 뗏목다리가 있던 자리에 세운 홍교는 1729년(영조 5)에 선암사의 초안선사에 의하여 석교(石橋)로 건립되었고, 1737년(영조 13) 다리를 다시 고치면서 3칸의 무지개 다리로 만들어졌다.

선암사의 홍교를 세운 초안선사가 세운 다리답게 선암사 승선교와 빼닮았다. 홍교는 폭 4m, 길이 80m에 이르는 거대한 다리로서 웅대한 아름다움과 우수한 축조기술을 엿볼 수 있는 한국의 대표적 석교로 꼽힌다.

이외에도 벌교엔 일제 치하 조선인의 아픔을 증언하는 6km에 걸친 중도방죽, 서민영과 이지숙이 아이들을 가르치던 야학교회, 토벌대 숙소로 쓰이던 남도여관, 양심적 지주로 그려진 김사용과 그의 아들 김범우의 집, 작가가 문학적 상상력의 나래를 펼쳤던 조정래 옛집 등 소설 속의 배경이 되었던 장소들이 대부분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쫄깃한 꼬막으로 입맛 돋우고

‘태백산맥’에서도 비유로 등장하듯이 벌교의 명물은 역시 쫄깃한 맛이 일품인 꼬막이다. 정하섭을 맞은 소화가 하룻밤을 지낸 다음날 아침밥을 준비하면서 꼬막이 없음을 아쉬워한다. 이 대목에서 작가는 벌교 꼬막에 대해 조리법까지 자세히 풀어놓는다.

이렇듯 꼬막은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꼬막은 훌륭한 밑반찬이지만, 호사가들은 염상구가 외서댁을 범하고 ‘쫄깃쫄깃한 겨울 꼬막 맛’이라 비유했던 것을 떠올리기도 한다.

꼬막은 벌교천의 민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갯강 주변의 갯벌에서 제일 잘 자라고 맛도 가장 좋다. 장암․대포 등 여자만을 끼고 있는 이 갯벌을 벌교사람들은 ‘참뻘’이라 부른다.

여기서 채취하는 자연산 꼬막인 참꼬막은 주름 골이 깊고 껍질이 단단하다.

똥꼬막이라고 부르는 새꼬막은 양식 꼬막으로 껍질의 주름이 얕고 맛은 참꼬막에 조금 떨어진다. 참꼬막은 추석부터 설날 무렵까지가 제일 맛있지만, 3월에도 쫄깃하고 탱탱한 꼬막을 충분히 맛볼 수 있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별미

벌교에선 어느 식당이나 양념꼬막을 밑반찬으로 내놓는다. 하지만 꼬막 전문집에서 꼬막 정식을 시키면 삶은 꼬막 · 양념 꼬막 · 꼬막 회무침 · 꼬막 된장국 · 꼬막전 등 꼬막요리를 골고루 맛볼 수 있다. 부용교(소화다리) 앞의 벌교꼬막식당(061-857-7675)이 유명하다. 꼬막 정식 1인분에 10,000원.

숙식

벌교 읍내에 중앙여관(061-857-0891), 그랜드모텔(061-858-5050), 대도장(061-858-0239)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2인1실 30,000원 내외.

가족 여행객이라면 승용차로 10~20분 거리의 낙안읍성 민박집을 이용하면 된다. 또 벌교에서 녹차밭 가는 길에 지나게 되는 율포해안에 풀하우스민박(061-852-8428), 해돋이민박(061-852-6790) 등 콘도식 민박집과 녹돈삼겹살(1인분 7,000원) 식당이 많다.

교통

△ 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순천 나들목→2번 국도→벌교. 서울서 5시간30분~6시간 소요.
△ 서울→벌교=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매일 2회(우등 08:10, 일반 15:10) 운행. 일반 18,100원 우등 26,900원.
△ 용산역(서울)→벌교역=무궁화호가 매일 1회(10:05) 출발. 6시간10분 소요. 요금 24,700원.
△ 부산→벌교=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매일 7회(08:50~15:40) 운행. 3시간30분 소요. 요금 13,000원.


글·사진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