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클루니 감독 '굿 나잇 앤 굿럭'

언론 혹은 대중매체를 지칭하는 비유는 많다. 혹자는 '세상의 감시자'라 했고, 누군가는 '진실의 파수꾼', 철권통치 시대에는 '정권의 시녀', 또 최근에는 '언론 권력'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쓰이고 있다.

그릇된 관행과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심한 언론인들에게건, 공평무사한 언론의 본분을 잊지 않은 훌륭한 저널리스트에게건, 이 영화 <굿 나잇 앤 굿 럭>은 가슴에 새겨둘 만한 메시지를 던진다.

새삼스럽긴 하지만 언론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에 대해 뼈아픈 각성을 주는 효과를 따진다면, <굿 나잇 앤 굿 럭>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추적하는 용감한 뉴욕타임스 저널리스트들을 다룬 영화 <대통령의 음모> 만큼이나 감동적이다.

<대통령의 음모>의 소재가 된 워터게이트와 <굿 나잇 앤 굿 럭>의 매카시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정치적 음모로 인한 비이성적인 상황'을 돌파하는 인간의 양심에 대한 자각이다.

앵커와 정치인이 벌인 '미디어 전쟁'

<굿 나잇 앤 굿 럭>은 매카시즘이라는 집단적 마녀사냥이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과거를 배경으로 한다. 1953년 10월 14일부터 약 3주 동안 CBS 앵커 에드워드 머로와 매카시 상원의원 간에 벌어진 '미디어 전쟁'이 소재다.

언론인들이 주최하는 시상식에서 한 언론인에게 '공로상'을 시상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 상의 주인공은 수십 년간 진정한 언론인의 상을 보여준 CBS 앵커 에드워드 머로(데이비드 스트라던).

머로의 연설을 뒤로 한 채 시간은 '미국 전역에 암약하고 있는 빨갱이를 색출하라'는 지상명령에 따라 광란의 마녀사냥이 횡행하던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CBS 시사프로 ‘See It Now'의 앵커 에드워드 머로는 마녀사냥을 주도한 매카시 상원의원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려 한다.

머로와 프로듀서 프레드(조지 클루니)는 연좌제에 걸려 공군에서 쫓겨난 군인 라둘로비치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매카시의 기만적 행각을 방송을 통해 낱낱이 폭로한다. 매카시에 대한 공격의 수위를 높일수록 광고주들의 압박과 방송국 사장의 압력이 들어오지만 '진실을 알린다'는 머로의 방송 철학은 전혀 위축되지 않고 이어진다.

<굿 나잇 앤 굿 럭>은 제한된 공간만을 보여준다. '매카시즘'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언론의 본분'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사건이 시작되고 전개되는 공간은 한정적이다.

CBS의 편집실, 회의실, 스튜디오, 반미활동조사위원회의 조사가 이뤄지는 법정 등 극히 제한된 공간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까닭에 긴박하고 박진감 넘치는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정글과 같은 자본주의의 시장법칙에 종속된 언론의 모습과 매카시즘이라는 야만적 마녀사냥이 이뤄지는 상황, 그리고 다면적인 언론인들의 모습을 단출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엮어놓은 솜씨가 여간 야무진 게 아니다.

<굿 나잇 앤 굿 럭>은 객관적인 '팩트'를 바탕으로 저널리스트의 '시각'을 담으려 한 머로의 방송 철학처럼 사실에 근거했지만 그 어조는 사뭇 단호한 앵커의 멘트를 경청하는 듯한 영화다.

50년대 벌어졌던 사건에 근거해 구성한 이 영화의 에피소드들은 현재 미국 뿐 아니라 언론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보다 확장된 이야기로 그 외연을 넓히고 있다.

연기보다 탁월한 클루니의 연출

<굿 나잇 앤 굿 럭>이 긴장감 넘치는 정치드라마의 느낌을 주는 것은 영화의 형식도 한몫을 한다. 고풍스러운 흑백 화면에 인물의 얼굴을 빈번하게 클로즈업하는 카메라는 머로와 그 주변인물들에 주목하면서 타이트한 이야기의 밀도를 만들어내고 있다.

영화의 형식과 내용, 그리고 메시지를 아우르는 조화로운 연출력을 보여준 사람이 할리우드 스타 배우 조지 클루니라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뉴스 앵커였던 아버지를 곁에서 보고 자란 조지 클루니는 감독 데뷔작이었던 <컨페션>에 이어 다시 한 번 미디어를 영화의 소재로 끌어들였다.

새빨간 거짓말과 판타지로 점철된 자서전을 쓴 방송 프로듀서를 주인공으로 한 <컨페션>이 '픽션'을 통해 진실에 이르고자 한 토크쇼 진행자의 이야기였다면 <굿 나잇 앤 굿 럭>은 '팩트'를 통해 또 다른 진실을 추구하는 뉴스 앵커의 이야기인 셈이다.

두 영화에서 일관된 클루니의 관심이라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진실과 그것을 캐내려는 미디어의 노력이다. 타블로이드 신문 스캔들 기사의 단골 손님인 조지 클루니의 영화적 비전은 꽤 진지하고 경청할 만하다.

할리우드 주류 배우인 그가 비주류의 취향과 색깔을 지닌 영화들을 만든다는 것이 무엇보다 흥미롭다. 그 배경에는 클루니의 영화적 동지이면서 이 영화의 프로듀서이기도 한 영화감독 스티븐 소더버그의 존재가 크다.

<조지 클루니의 표적> <오션스 일레븐> <솔라리스> 등 소더버그 영화에 전속 배우처럼 얼굴을 내미는 클루니는 그에게 '감독'으로서의 자질과 태도 등을 학습한 듯하다.

영화는 다시 시상식 장면으로 돌아가 머로의 연설을 들려주면서 끝난다. 머로는 최후 진술을 통해 매카시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마녀사냥의 광풍에 휩싸인 '우리 안의 불안과 공포'를 말한다.

정말 두려운 적은 매카시가 아니라 사냥당할 것을 두려워해 진실을 멀리하고 눈을 돌리려는 집단적 무의식이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황우석 스캔들을 통해 뼈저리게 이 같은 교훈을 얻었다. 언론과 정부가 키워낸 '거대한 우상'이 궤멸됐을 때 엄습한 공포, 그리고 황우석 추종자들이 보여주는 비이성적 모습은 한국 사회 내부의 신경증을 너무도 확연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가 지금도 유효한 의미를 가진다면 에드워드 머로가 던진 바로 그 경고 때문이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