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미추 창단 20주년 기념 공연 '주공행장'

권력에 대한 조롱과 시대를 풍자하는 해학이 넘치는 사극 영화들이 잇달아 충무로를 점령한 요즈음, 대학로에서도 맛깔스런 코미디 사극 한 편이 무대에 올라 눈길을 끈다. 극단 미추가 창단 20주년 기념 공연으로 내놓은 ‘주공행장(酒公行狀)’이다.

조선 영조시대의 금주령을 소재로 했다. 옛 가전체 소설의 형식을 빌어 현재와 과거 시제를 오가며, 극의 안팎에 혼재하는 진실과 거짓이라는 명제를 코믹하게 풀어냈다.

극은 조선시대 삼거리 주막에서 흥에 겨운 70세 노인 주호의 회상으로 시작한다. 궁중 연회장에서 술에 취한 신하들이 무수리였던 왕의 생모 영전에 올리는 제주(祭酒)를 거론하며 불만을 쏟아내자, 격분한 왕은 금주령을 내린다.

이에 애주가인 주호의 아버지는 금주령의 폐단을 상소하다 관아에 끌려가 곤장을 맞아 죽게 되고, 열 살 난 주호마저 아버지의 장례 행렬을 따라가며 술을 마시고 취태를 부렸다는 이유로 유배 생활에 처해진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는 주호는 10여 년의 유배 생활을 끝낸 뒤, 술상을 들고 왕 앞에 나타나 술을 권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녔지만 천한 무수리 소생이라는 태생적 한계로 근심했던 왕. 그러한 왕의 인간적 고뇌를 읽어내고 자신의 일생을 걸어 한 잔 술 권하기에 도전했던 소년. 두 사람 간에 신분을 뛰어넘는 인간적인 소통이 따뜻하게 그려진다.

손진책씨가 연출하고, 윤문식, 정태화, 이기봉 등이 출연한다. 26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02) 747-5161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