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연인'이 아닌 '연인이라는 운명'

▲ 롤랑 바르트
- 나(너)는 아프다. 너무나, 죽을 만큼 아프다. 종일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홧홧 달아오르고, 불안하고 초조하여 잠시도 안절부절 못한다. 헛것을 보거나 헛소리를 중얼거린다. 달콤한 황홀경을 맛보다 이내 지옥 같은 절망에 빠진다. 울다가 웃는다. 자신이 미친 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날이 밝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나(너)는 병든 것이 아니다. 분명히 아프고 괴롭지만 나(너)는 ‘환자’가 아니다. 나(너)는 ‘연인(戀人)’이다. 나(너)는 바로 ‘사랑하는 사람’인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을 병적(病的)인 것으로, 사랑에 빠진 연인을 환자인 것처럼 취급하는 전통(?)은 꽤나 유구하다고 하겠다.

‘사랑의 열병(病)’이니, ‘상사병(病)’이니, 젊은 날의 한때를 휩쓸고 지나가는 ‘광증(狂症)’이니 하는 표현은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사랑에 눈이 멀다’라는 표현은 짐짓 진부하기까지 하다.

거창한 말일수록 공허하고 실감이 나지 않는 법이지만, 알다시피 ‘사랑’은 인간의 영원한 주제다.

비단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그 모든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사랑과 연관되어 있다. 비록 그 형태와 색깔이 천차만별이지만 어쨌든 인간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사랑 타령’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러나 사랑은 흔해질수록 귀해진다. 유감스럽게도 세상의 그 많은 ‘사랑 타령’의 대부분이 사랑의 진실을 호도하거나 왜곡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현대인들이 자신의 인간관계 속에서가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가장 쉽게 사랑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자본주의는 사랑을 팔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돈으로는 결코 진짜 사랑을 살 수 없다는 진실은 교묘히 은폐된다. 아파트나 자동차의 광고 문구에도, 히트를 꿈꾸는 유행가 가사에도, 쇼윈도 속 마네킹의 미소에도 ‘사랑’이 넘쳐난다. 사랑은 흔해질수록 귀해진다.

이미 선지자적인 수많은 예술가들이 설파한 바, 사랑은 ‘능력’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사랑을 할 수 있고, 누구나 다 연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크나큰 착각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얼핏 ‘사랑 비슷한 것’을 구경하거나, ‘연애 비슷한 것’을 흉내 내는 데 그치고 마는 것이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특별한 사랑을 할 수 있다. 미안하지만 분명히 그렇다.

앞서 언급한 대로 사랑을 병적인 것으로 폄하하는 태도는, 그 특별한 능력에 대한 범인(凡人)들의 시기와 질투다.

사랑이 흔해질수록 귀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진실한 가치가 고귀하게 여겨질수록 사랑에 대한 평가절하나 시시비비 역시 끊이질 않는다.

결코 연인이 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사랑이나 연애는 ‘부질없는 가슴앓이’거나 ‘이겨내야 하는 몹쓸 질병’ 또는 ‘누구나 한때 겪는 성장통’ 쯤으로 매도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단순히 어떤 증세가 있는 환자로 환원시켜서는 안 된다.”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이라 할 수 있는 롤랑 바르트(1915-1980)는 사랑에 빠진 연인이 결코 ‘미치광이’가 아님을 역설하는 것으로, 그의 유명한 저서 <사랑의 단상>을 시작하고 있다.

“이 책의 필요성은 오늘날 사랑의 담론이 ‘지극히 외로운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이 담론은 아마도 수많은 주체들에 의해서 말해져 왔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보호받지 못했다. 그것은 주변의 언어들로부터 버림받았다. 또는 무시되고, 헐뜯어지고, 웃음거리가 되어 왔다. (……) 이렇듯 하나의 담론이 모든 군생 집단 밖으로 추방당하여 스스로의 힘에 의해 비실제적인 것 안으로 표류하게 되면, 그때 그것은 ‘긍정의’ 장소가 - 비록 미미한 것이긴 하지만 - 되는 수밖에 없다. 요컨대 이 긍정은 바로 여기 시작하는 책의 주제이다.”

롤랑 바르트가 <사랑의 단상>에서 주된 텍스트로 삼고 있는 것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로테라는 여인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다 결국 죽음에 이른 청년 베르테르가, 쉽게 환자나 미치광이로 오해받아 조롱거리가 되곤 하는 ‘연인’의 대표선수가 된 것이다.

이 책은 분명 사랑과 연인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단순히 ‘연애지침서’적 성격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의 단상>은 철학과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을 넘나들며 문학과 예술과 인생을 아우르는 고급 담론이다. 그 누구보다도 냉철한 이성과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롤랑 바르트가 특유의 지적이고 세련된 문장으로, 지극히 비이성적이고 부조리하며 모순투성이로 여겨지는 ‘연인’을 분석하고 진단하고 위로하고 격려한다.

이 책은 연인을 위한 적극적이고 아름다운 ‘알리바이’인 것이다.

롤랑 바르트는 ‘연인’이란 존재 자체에 천착한다. 연인이란 거울을 통해 인간의 가장 인간적인 특성을 고찰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의 단상>은 우리에게 나의 ‘운명의 연인’이 누구일까를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연 나 자신이 ‘연인으로서의 운명’을 타고 났을까 하는 것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것은 나아가 인생의 맛과 색깔을 결정짓는 ‘상상력’의 문제로 귀결된다.

연인만이 가지는 남다른 특성과 고유한 태도, 사랑의 행위와 언어의 행위와의 관계, 오직 연인만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기대와 절망과 우수와 고통과 환희, 세상의 모든 비유를 탄생시킨 연인의 미묘한 감각,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연인의 모순된 운명, ‘나는 행복해요, 하지만 슬퍼요.’, 그 덧없는 아름다움을 온 영혼으로 표현하는 연인이라는 인간, 사랑이 가진 다채로운 얼굴과 그 얼굴에 드러나는 신비한 우주 혹은 우주의 신비…….

<사랑의 단상>은 결코 시가 아니면서도 고도의 압축과 생략으로, 결코 희곡이 아니면서도 철저히 절제된 독백으로, 결코 소설이 아니면서도 치열한 사유와 독창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매력적인 산문을 통해 롤랑 바르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역자의 설명대로) 사랑하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글 쓰는 사람)이 마침내 승리하리라는, 아름다운 전언이었을 것이다.


이신조 소설가 coolpond@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