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드라마서 스타들이 입었던 명품 한복 한자리에, 25일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서 전시회

최근 예사롭지 않게 부상하는 문화 코드가 있다. 바로 우리의 옷, 한복이다.

불편하고 구식이고, 그래서 1년에 한두 번 명절에나 입어 보는, 아니 이도 귀찮아 사람들이 갖추어 놓기도 번거로워 했던 한복이 그 이미지를 털고 새삼스럽게 봄날을 맞고 있는 것이다.

원색의 정직하고 화려한 색상과 자연미 넘치는 선을 앞세운 한복은 급격히 강남 부유층의 마음은 물론 이방인의 시선까지 사로잡으며 고급 오뜨 꾸뒤르(Haute couture: 고급 의상) 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런 한복에 대한 재발견과 변화된 인식, 그리고 생산과 유통은 우리 전통문화의 세계화 가능성도 열고 있는 상황이다.

왜 갑자기 한복이 힘을 얻는 것일까? ‘한류(韓流)’라는 과실을 챙기며 막강하게 성장한 우리의 대중문화가 바로 원동력이다.

한류의 에너지를 전 세계로 확대해 나가고 있는 ‘대장금’을 비롯한 각종 사극 드라마, 1,2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해 우리 영화사를 새로 쓰게 한 ‘왕의 남자’, 최근 개봉해 화제가 되고 있는 ‘음란서생’, 30%대의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궁’ 등등.

나라 안팎에서 성가를 올리고 있는 영상물들이 대부분 한복을 입었다. 옛것이라는 이유로 옷장 구석에 구겨져 있던 한복이 ‘첨단 문화의 종합판’이라는 영상예술의 얼굴로 변신해 서로의 가치 상승을 이루어내고 있다.

‘우리 영상문화의 성가에 따른 한복 미학에 대한 재평가.’ 이런 상관관계를 풀어보는 전시회가 마련돼 눈길을 끈다.

영상 예술의 얼굴로 떠오른 한복

한국일보사는 25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옛 서울고 자리)에서 전시회 ‘韓류, 한복을 입다’를 연다.

대중문화와 한복의 교차점을 예리하게 포착해내려는 전시회다. 주제는 ‘대중문화와 전통으로 만나는 우리 옷’. 대중문화의 상상력 속에 펼쳐진 한복의 다양한 변신은 물론 거장들의 손끝을 통해 재연된 한복의 품격에 심취해 볼 수 있는 기회다.

“전통문화의 혁신을 통한 세계화의 동력 확보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해소, 첨단 오리엔탈 디자인 문화의 영감 제시 등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 기획 의도이다.

행사는 기존의 한복 전시회와는 완전히 다른 복합 문화 이벤트 형식으로 치러진다. 대중문화 속의 한복을 다루는 제1전시관과 정통 한복의 멋스러움에 젖는 제2전시실이 마련된다. 제1전시관은 ‘스타 존’ ‘무비&드라마 존’ ‘한류한복 체험관’으로 나뉜다.

스타 존을 가장 화려하게 장식할 스타는 단연 이영애. ‘한복이 가장 잘 어울리는 스타’ 이영애는 지난 2월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가한 베를린영화제에서 입어 화제가 됐던 진한 색깔의 한복, 지난해 홍콩에서 열린 ‘대장금’ 팬 이벤트 때 입었던 은은한 아름다움의 한복 등 세 벌의 한복을 출품했다. 사진작가 조세현씨가 출품한 25점의 한복 사진도 볼거리다.

무비&드라마 존은 사극과 영화 세트를 재현한 공간으로 연출된다. 토담과 솟을대문으로 꾸며진 공간에 들어서면 ‘대장금’의 수라간이 관람객을 맞는다.

이어 ‘왕의 남자’에서 공길과 장생이 입궐해 연산의 마음을 사로잡는 장면, ‘음란서생’에서 왕과 왕비가 내시들을 대동하고 차를 마시는 장면 등이 계속된다. ‘음란서생’의 의상 디자이너인 정경희씨는 남편인 설치미술작가 오만호씨와 함께 내시들의 배에 LCD를 부착, 영화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설치미술을 시도한다.

사극 · 영화세트 재현 공간 연출

한류한복 체험관은 ‘왕의 남자’에서 임금의 처소, 드라마 ‘궁’의 황태자 부부 내전으로 꾸며진다. 관람객이 작품 속 한복을 입고 사진촬영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예지원 강사가 청소년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복 입기와 전통예절을 가르치는 한류교실을 운영한다.

제2전시관은 중요무형문화재 제89호인 침선장 조교 구혜자씨와 현대적 감각을 추구하는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씨의 작품으로 꾸며진다.

2003년 배용준, 전도연 주연의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의상을 제작한 구혜자씨는 “전통 한복의 멋은 단정함, 편안함, 소박함에 있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다.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입었던 전통 의상 20여 벌을 선보인다.

김영석씨는 경력 7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빠른 속도로 명품 디자이너 반열에 오른 작가.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화려한 현대적 색채 감각으로 모더니티를 부여하고 있다. 조선 여성들의 한복 30여 벌 외에도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1억원 상당의 노리개, 조각보, 비녀, 베개 등 고가 장신구를 출품했다.

내내 꽃망울이 터지는 4월, 고궁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화려한 한복 전시회는 재미와 의미를 함께 찾으려는 가족의 봄 나들이 테마로 제격이다. 또한 한류에 매료돼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에게도 한복 고유의 멋과 맛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행사가 될 듯하다.


권오현 한국일보 편집국 대기자 k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