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요즘 극장가에서는 멀티 플렉스가 대세다.

‘왕의 남자’가 천만 관객을 돌파한 것도, 평단과 대중의 혹평을 받은 ‘태풍’이 적어도 4백만 관객을 동원한 것도 어찌 보면 멀티 플랙스 극장의 대중 동원력 덕분이다. 그런데 극장이 멀티라 해서 극장에 걸리는 영화까지 다채로운 것은 아니다.

대작 영화에 비해 흥행 보장성이 낮은 작은 영화들은 대부분 와이드 릴리즈 되는 거대 배급사의 영화들에 눌려 쥐도 새도 모르게 간판을 내리기 일쑤다. 이 때문에 이들은 반짝 장사에 사활을 걸어야만 한다.

물론 혹자는 '왕의 남자'처럼 입소문을 탄 영화를 거론하며 와이드 릴리즈로 대변되는 거대 자본의 논리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이 영화의 작품성이라고 주장할 지 모른다. 하지만 꽤 많은 수의 괜찮은 영화들이 입소문도 나기 전에 사라져야만 하는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 저예산 영화들의 현실이다.

2004년 개봉한 송일곤 감독의 '거미숲'도 반짝 장사에 사활을 걸었지만 큰 재미를 못 본 영화 중 하나다.

주인공은 흥미롭게도 올해 '왕의 남자'로 한국 영화사를 새로이 쓰고 있는 '장생'역의 감우성이다. 감우성은 그 해 가을 무려 동시에 두 편의 미스터리 공포 영화로 관객을 찾았다. 하나가 공수창 감독의 '알포인트', 다른 하나가 바로 '거미숲'이다.

감우성이 자신이 출연한 두 편의 영화를 동시에 개봉해야 했던 것은 결코 배우가 다작을 해서가 아니다. '거미숲'이 7월에 개봉 예정이었으나 당시 블럭버스터 영화들의 대대적인 공세로 개봉관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배우는 안타깝게도 같은 시기 두 편의 비슷한 장르의 영화를 선보여야만 했다.

다행히 감우성은 두 편의 미스터리 영화에서 특유의 섬세하고 절제된 내면 연기로 주목을 끌었다. '왕의 남자' 흥행으로 이제서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듯하지만 사실 영화배우로서 감우성의 발견은 사실 2004년 이미 이루어졌다.

영화 ‘거미숲’은 미스터리 다큐멘터리 PD인 강민이 ‘거미숲의 전설’을 취재하러 거미숲에 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혼수상태에서 14일 만에 깨어난 주인공 강민의 첫마디는 숲에서 두 사람이 죽었다는 충격적인 말.

강민의 진술대로 사건의 단서를 찾아 친구 최 형사는 사건 현장에서 죽은 남녀의 시체를 발견한다.

그런데 죽은 여자가 강민의 내연녀임이 밝혀지고 강민이 유력한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다. 한편, 강민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몰래 병원을 빠져나와 기억을 더듬어 자신만의 진실을 찾아나가지만 거미숲에 다가갈수록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강민이 파헤치는 ‘거미숲의 전설’은 평생토록 그의 잠재의식을 자로잡고 있던 유년시절의 트라우마라는 것이 밝혀지고 결국 잊고 싶었던 기억, 왜곡되었던 기억을 바로잡는 강민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과 대면하게 된다.

‘거미숲’이 보통의 미스터리 스릴러와 차별화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감독의 철학적이고 인간적인 구원의 메시지 때문이다.

아픈 기억을 가진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평범한 소재로 기존의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와는 다른 궤적을 따라간 영화 '거미숲' .

블럭버스터 영화들을 피해 가까스로 개봉했지만 거대 배급사들은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미스터리 영화를 가만두지 않았다. 자국 영화를 보호하는 스크린 쿼터가 있어도 거대 배급사가 자사계열의 복합상영관을 보유한 현실에서 저예산 영화의 사각지대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진정 영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는 마이너 영화를 보호할 수 있는 마이너쿼터라도 필요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