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의 큰 고개 추풍령을 넘는다. 고속도로와 국도를 지나는 차량, 그리고 경부선 열차가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추풍령은 백두대간에서 가장 통행량이 많은 고개다.

추풍령은 조선시대에도 한반도 중앙과 영남을 잇는 역할을 했지만, 영남대로의 문경새재보다는 규모나 명성에서 한참 뒤졌다. 상황은 1905년 추풍령에 경부선 철도가 놓이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이후 문경새재는 물론이요 죽령과 이화령을 넘나들던 물량까지 물려받았고,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되자 추풍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개로 등극했다.

백두대간에서 가장 큰 고개

추풍령은 구절양장이 아니다. 고갯마루가 해발 221m밖에 안 되고, 언제 고개를 넘었는지도 잘 가늠이 안될 정도로 경사는 완만하다. 열차를 타고 넘을 때도 그렇고, 고속도로나 국도를 이용해도 마찬가지다. 20세기 이후에 나라의 근간인 국도·철도·고속도로가 모두 이 고개를 통과하게 된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사연 없는 고개가 어디 있으랴. 조선 시대 영남의 유생들은 과거시험을 보러 갈 때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낙방한다 하여 마음 약한 유생들은 추풍령 남쪽의 궤방령(혹은 괘방령)을 넘었다.

고갯마루에 있는 당마루마을은 과거에 실패하고 낙향하던 선비가 고향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머물면서 생긴 마을이라고 전한다.

고갯길엔 장지현(1536~1593)장군 사당이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인 1593년 의병장 장지현은 의병 2,000여 명을 거느리고 추풍령에서 2만의 왜군 정예병을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금산 방면에서 진격해온 왜군의 협공을 받아 분전 끝에 전사했다.

추풍령을 넘어서면 경북 김천 땅이다. 북으로 올라오는 봄의 숨결이 한결 따사롭게 품으로 파고든다. 길은 황악산 동쪽 기슭에 터를 잡은 직지사로 이어진다. 직지사로 들어서는 직지천 물줄기 양쪽엔 벚나무가 4km나 줄지어 서있다.

30년 이상 된 아름드리 벚나무도 수백 그루나 되고, 냇가 주변의 노란 개나리와 어우러진 풍경이 좋아 상춘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여기의 벚꽃은 4월 초순 무렵에 하나둘 피기 시작해 10~15일 사이에 만개한다.

마음속의 부처를 갈고 닦는 절집

벚꽃길 끝엔 직지사(直指寺)가 있다.

산수유꽃·벚꽃·진달래꽃 같은 꽃들이 봄날을 밝히는 직지사는 418년(눌지왕2년) 신라의 아도 화상이 창건한 절집이다. 임진왜란 때 거의 다 불에 탄 후 400년 가까이 허름하게 남아 있다가 1970년대 이후 일으킨 불사 덕에 일약 대가람으로 변모했다.

아도 화상이 손가락으로 절터를 가리켜 절을 짓게 해서 직지사가 되었다거나 능여 대사가 절을 확장하면서 손으로 측량한 데서 절집 이름이 유래했다는 전설이 전하지만, 직지사의 ‘직지(直指)’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 즉 ‘사람이 갖고 있는 참된 마음을 똑바로 가리켜 밝게 되면 부처가 된다’는 뜻이다. 마음속의 부처를 갈고 닦으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직지사는 깊은 유래만큼 역사적 사연도 많다.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과 자웅을 겨뤘던 팔공산 전투에서 포위되었다가 신숭겸의 도움으로 탈출해 이곳으로 피신했고, 임진왜란의 위대한 승장인 사명대사(泗溟, 1544~1610년)가 이곳서 출가한 사연도 있다.

천 개의 불상이 조성돼 있다고 해서 천불전(千佛殿)으로도 불리는 비로전(毘盧殿)은 임진왜란 당시 화마를 피한 유일한 건물이다. 고려 초기 경잠대사가 경주 남산의 옥돌로 16년간 빚었다는 천불전 불상들은 모두 표정이 다르다.

불상 중에는 알몸인 불상이 하나 있는데, 민간엔 ‘법당에 들어서자마자 이 불상을 발견하면 반드시 아들을 낳는다’는 재미있는 속설이 전해온다. 경내엔 석조약사여래좌상(보물 제319호) 등 여러 점의 보물이 있다.

비로전 용마루 너머로 보이는 황악산(黃岳山, 1111m)은 산림청이 선정한 ‘한국의 100명산’에 속할 정도로 숲이 빼어난 산이다. 직지사는 운수봉·백운봉·비로봉·형제봉· 신선봉 이렇게 5개의 봉우리에서 흘러내린 물이 하나로 모인 계곡 너른 터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황악산 등산로는 직지사를 기점으로 자연스레 연결된다. 가장 인기 있는 직지사~백련암~운수암~백운봉~비로봉(정상)~형제봉~직지사 회귀 코스가 약 5시간 정도 걸린다. 자세한 사항은 직지사 종무소(054-436-6174)에 문의하거나 홈페이지(www.jikjisa.or.kr) 참조.

별미

직지사 입구에서 승용차로 30여 분 거리인 지례면의 흑돼지는 지리산 흑돼지, 제주도 흑돼지 등과 함께 오래 전부터 이름을 날린 토종 돼지다. 비계층이 얇으면서 지방도 많지 않아 쫄깃하게 씹히는 질감이 좋다.

지례면 소재지인 교리엔 흑돼지(꺼먹돼지) 전문식당이 10여 곳이나 있다. ‘현구 원조2대 불고기’(054-435-0319)가 유명하다. 삼겹살·목살 소금구이와 양념 불고기가 모두 1인분(200g)에 6,000원.

숙식
직지사 입구 시설지구에 김천 파크호텔(054-437-8000), 알프스(054-437-8933) 등 숙박시설이 여럿 있다. 직지사 입구 집단시설지구 식당에서 산채 정식(1인분에 1만원)을 시키면 갖가지 산채와 불고기 등 수십 가지 반찬이 한 상 가득 올라온다.

교통
△ 경부고속도로→ 추풍령 나들목→ 4번 국도(김천 방면)→ 9km→ 덕천삼거리(우회전)→ 3km→ 직지사. 서울서 3시간 소요. 직지사→ 903번 지방도→ 14km→ 구성면 삼거리(우회전)→ 3번 국도(거창 방면)→ 6km→ 지례.
△ 서울→ 김천=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매일 11회(07:10~18:20) 운행. 3시간 소요. 요금 16,500원.
△ 김천→ 직지사= 김천시외버스정류장(054-432-7600)에서 20~30분 간격(06:10~22:40) 수시 운행. 30분 소요. 일반버스 900원, 좌석버스 1,300원.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