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성모병원 조혈모세포이식센터 항암제 · 방사선 사용량 대폭 줄이고 T 임파구로 암세포 공격유도 치료법

▲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조혈모이식센터에서 백혈병 환자의 조혈모세포이식 시술을 위해 혈액을 추출하고 있다. / 임재범 기자
지고지순한 사랑을 주제로 한 멜로드라마나 영화에서 비운의 여주인공들이 자주 걸리는 백혈병.

그래서 성인 암 중 10대 암에도 들지 못하지만 일반인들에겐 친숙한 병이다. 불치병의 덫에 걸린 극중 주인공이 끝내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한다는 설정이 대부분이지만, 백혈병은 드라마에서 묘사하듯 불치병은 아니다.

백혈병은 혈액에 생겨난 암이다. 세균, 바이러스 등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인체를 지켜내는 방위군 역할을 하는 백혈구가 어떤 원인에 의해 암세포로 돌변한 뒤 이상 증식을 일으킴으로써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의 생산이 점차 줄어들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병이다. 멀쩡한 백혈구가 왜 암세포로 변하는지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규명되지 않았다.

백혈병은 크게 골수성과 림프구성으로 나뉘며, 각각 급성과 만성이 있다. 골수성 백혈병은 과립구라 부르는 미성숙 백혈구가, 림프구성 백혈병은 림프구라 부르는 미성숙 백혈구가 각각 암세포로 변한 것이다. 일

반적으로 성인에게는 급성골수성, 급성임파구성, 만성골수성 순으로 발병이 많고, 소아의 경우에는 급성임파구성, 급성골수성 순이다. 만성임파구성 백혈병은 국내에 드물다.

백혈병을 치료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조혈모세포 이식이다. 조혈모세포 이식이란 피를 만드는 세포, 즉 조혈모세포를 새로 주입하여 망가진 조혈기능을 회복시키는 치료법이다.

골수, 말초혈액, 제대혈에서 채취하는 조혈모세포의 이식은 자기의 것을 이용하느냐 아니면 타인의 것이냐에 따라 자가이식, 동종이식으로 나뉘는데, 채취 장소와 누구의 것이냐에 따라 치료효과가 큰 차이가 난다.

이식 대상자 연령대 높여 조혈모세포 이식은 간단한 시술이 아니다. 이식을 하는 의사나 시술을 받는 환자나 아주 조심스러우면서도 힘든 과정의 연속이다.

환자에게 맞는 조혈모세포가 과연 있느냐, 어디에서 세포를 채취하느냐, 이식 전의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를 견딜 수 있느냐, 후유증에는 어떻게 대처하느냐 등 치료과정마다 난제 투성이다.

가톨릭의대 조혈모이식센터 이종욱(48)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다행히 최근 최신 기술과 약제들이 속속 나오면서 백혈병 치료율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조혈모세포 이식 분야의 개선된 치료법 중 하나가 ‘미니 이식’이다. 5년 전만 해도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는 환자들은 이식 전 대량의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했다.

▲ 가톨릭 조혈모이식센터 이종욱 교수. 이 교수는 조혈모이식과 재생불량성 빈혈 분야 국내 권위자다.

이식을 위한 준비 과정으로, 새로운 조혈모세포가 들어설 골수에 가득 들어찬 암세포를 먼저 괴멸시켜야 했던 까닭이다. 이를 ‘이식 전 처치’라고 하는데, 몸이 허약한 50세 이상 노년층 환자의 경우에는 대량의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 후유증으로 치료 중에 숨지는 사례가 많았다.

미니 이식이란 항암제와 방사선 사용량을 대폭 줄이는 대신 새로운 조혈모세포 내에 들어있는 ‘암세포 킬러’인 T임파구로 하여금 잔존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암세포를 단계적으로 박멸하는 치료법.

미니 이식의 등장에 따라 이식 대상자의 연령대가 훨씬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이식 전 처치 과정도 예전보다 편해졌다. 그렇다고 모든 환자들에게 미니 이식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해 “병이 많이 진행됐거나 재발한 환자인 경우에는 암세포 증식 속도가 워낙 빨라 한계가 있기 때문에 환자 나이와 건강 상태에 따라 미니 이식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기적의 항암제’로 불리는 글리벡이 나온 이후 만성골수성과 일부 급성임파구성 백혈병 치료 성적도 한결 좋아졌다.

백혈병 중에서도 고약한 것이 ‘필라델피아 염색체’가 발견되는 경우. 필라델피아 염색체는 만성골수성 백혈병에 흔한 것인데, 급성임파구성 백혈병에 걸린 성인에서도 5명 중 1명꼴로 발견된다.

“필라델피아 염색체가 있는 경우 이식을 해도 완치율이 40% 정도밖에 안 됐는데, 글리벡이 나온 이후 이 약을 먼저 쓴 뒤 이식을 하는 새로운 방법을 적용한 결과 완치율이 80%선으로 올라갔다”고 이 교수는 설명한다.

조혈모세포를 어디에서 채취하는 것이 좋으냐도 고민거리.

이 교수는 이와 관련, “골수와 말초혈액을 각각 사용한 경우를 비교한 결과, 조혈모세포 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말초혈액을 이용하는 경우 치료 속도가 빠른 반면 치명적인 면역학적 합병증 발생가능성이 높다”며 “재발 환자의 경우 말초혈액 쪽이 낫지만 병세가 비교적 좋은 환자라면 꼭 말초혈액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한다.

'임의 비급여 약제' 불법 사용의 딜레마
조혈모세포 이식은 예전에는 가난한 환자들이 꿈도 못 꾸던 치료법이었다. 골수이식 비용이 6,000만~7,000만원으로 비쌌기 때문이다. 다행히 1992년부터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되면서 비용부담이 2,000~3,000만원으로 크게 줄었다. 조혈모세포 이식에 대한 건강보험 혜택은 그동안 꾸준히 확대돼 왔다. 이종욱 교수 등 이 분야 전문의들이 건의서, 소견서를 들고 보건복지부ㆍ보험공단 등을 찾아가 끈질기게 설득한 결과다. 보험 대상 확대로 치료비 부담은 덜었지만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임의 비급여 약제 사용 문제다. 의사들에게는 '뜨거운 감자'다. 임의 비급여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치료약으로 인정을 하지 않는 데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임의로 쓰는 것. 명백한 불법 의료행위다.

백혈병 전문의들은 그러나 임의 비급여 약제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종종 내몰린다. 특히 급성 백혈병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시간을 다투며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 완치냐 죽음이냐, 두 가지 길만 있을 뿐이다. 치료 효과가 더 뛰어나거나 부작용 발생을 줄여주는 효과가 입증된 신약이 있다면 비싸더라도 의사들은 이런 것들을 총동원해야 한다. 암과 사투를 벌이는 환자들을 위해 최상의 치료법을 쓰야 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백혈병 환자들의 비용부담은 커질 수 있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환자를 살려야 하는 의사들의 직업 윤리와 법의 테두리 내에서 치료를 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임의 비급여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하루빨리 풀어야 할 숙제다.




송강섭 의학전문기자 speci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