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참대

나무에 피는 봄꽃들은 화사하기 이를 데 없다. 대부분 잎도 없이 나무 가지마다 꽃이 가득하니, 여간해서는 그 아름다움을 다른 데 비견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미 봄거리를 점령해버린 개나리와 이어 핀 벚나무가 그러하며 산에 소담하게 핀 진달래꽃도 눈부시다. 시골길을 걷다보면 만나는, 보기만 해도 가슴 설레이게 하는 분홍빛 복숭아꽃이며 하얀 배꽃, 길둑에 눈이 내린 듯 백설처럼 피어나는 조팝나무꽃들도 상춘객의 숨을 먹게 한다.

그 중에 물참대꽃은 그 화려함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산과 들에 저마다 꽃들이 지천이어서 꽃구경에 조금은 질려서 떠난 숲에서 만나기 때문일 게다.

또한 꽃이며 잎이며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흰색 꽃들도 맑기가 이를 데 없지만 이전에 본 꽃들의 잔상이 아직도 기억 속에서 지워지기 전에 눈에 띄어 물참대꽃의 진면목을 모른 탓이 크다.

하지만 누군가 그랬다. 숲을 거닐다 물참대를 만나니 주변이 환해지고 마음도 환해지더라고. 나도 그러했다.

물참대는 범의귀과에 속하는, 낙엽이 지는, 키가 작은 나무이다.

숲 가장자리나 계곡물이 흘러 그리 건조하지 않은 곳, 그래도 땅은 전석지처럼 물빠짐이 잘 되는 곳, 그늘이 지지만 어둡지 않을 정도의 빛이 드는 그런 숲에서 한 무더기로 자라 꽃을 피운다.

마주나는 길쭉한 잎도 평범하고, 손톱만한 흰 꽃들이 소복하니 반원형을 만들며 곳곳에 달린다. 구슬처럼 동그란 꽃봉오리가 방긋 터지면 5장의 꽃잎과 5장의 꽃받침을 가진 전형적인 꽃송이들이 곱기만 하다.

하지만 수술은 10개이고 암술은 2~3개로 수가 적어 비슷한 꽃모양을 한 장미과 식물들과 구별이 가능하다. 아주 비슷한 나무로 말발도리가 있지만 물참대는 잎 뒷면에 털이 없어 구별이 가능하다.

종모양의 열매는 가을에 익는데 그 속엔 무수히 많은 작은 씨앗들이 들어 있다. 댕강목, 댕강말발도리란 별명이 있다. 하지만 인동과에 속하는 댕강나무와는 전혀 다른 종류이다.

약으로 쓴다거나 먹는다거나 하는 특별한 용도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관상용으로는 키울 만하다. 만일 그 깨끗한 이미지에 반하여 키우고 싶으면, 장소는 아무래도 자연을 닮은 곳이어야 할 것이다.

생존력이 강한 식물이라 특별히 키우는데 시간을 들일 필요는 없지만 햇볕이 들지 않는 곳에 놓아서는 안 되고 작은 물이 흐르며 옆에 다른 나무들이 있는 그 가장자리 즈음에 심으면 좋을 듯싶다.

처음 나무를 알기 시작할 때는 꽃이든, 줄기든, 수려한 형태든 무엇인가 아주 강렬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나무들이 먼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요즈음은 이 물참대처럼 한 눈에 반하지 않더라도 새록새록 정이 드는 나무들에 더 정이 끌리곤 한다. 언제나, 어딘가에서, 한결같이 편안하게 자라고 있을 그런 나무들 말이다. 사람도 그러하다.

올 봄엔 혹 물참대처럼 그렇게 곁에 있어 왔던 소중한 지인들도 찾아보고, 느릿느릿 편안하고 게으른 산행을 하며, 느껴질 듯 말 듯 향긋한 나무 내음을 느끼며, 잠시나마 고단한 세상사를 떠나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권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