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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호감 가지 않는 외모의 연예인들이 서로 자신이 더 ‘못났다’고 의기양양하게 주장한다. 때로 성격이 이상한 점도 이들에겐 자랑거리다. 당연히 핍박과 질타가 따르지만 이들은 의기충천, 자긍심이 넘쳐 흐른다. 이상한 현상이다.

더욱 희한한 건 당당하게 ‘못난’ 연예인들이 반듯한 연예인들을 제압하는 상황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것이다.

잠시 시선을 돌려보면 현실적으로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 너무도 당연하게 전개된다.

생모가 딸을 며느리로 맞이 하더니, 이번엔 생부까지 딸을 며느리 삼겠다고 덤벼든다. 불치병에 걸려 죽음을 앞둔 아들과 냉정하게 모자의 연을 끊으려는 어머니도 있다. 가짜 의사가 버젓이 의술을 시행하며 신의(神醫)로 칭송받기도 한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매일 밤마다 술집에서 술을 먹으며 사랑 타령을 하기도 한다.

요즘 브라운관의 가치 전복 풍경이다. 예전에는 조연에 그쳤을 ‘비호감’ 연예인들이 오락 프로그램을 장악하고 있고, ‘비상식’ 시추에이션이 드라마의 주류로 득세하고 있다.

감초 역할조차 버거운 선남선녀들은 오락 프로그램에서 애처로울 정도로 망가지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고, 상식적인 상황을 앞세운 드라마들은 재미와 완성도를 갖췄음에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브라운관에 ‘아닐 비(非)자’의 전성시대가 활짝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KBS 2TV ‘해피 선데이’의 ‘여걸식스’, SBS ‘일요일이 좋다’의 ‘X맨’, ‘연애편지’,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 각 방송사 간판 오락 프로그램의 주도 세력은 요즘 유행어로 ‘비호감’들이다.

외모가 못나고, 때로는 성격이 괴팍하고, 나이 값을 못하는 이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당초 임무였던 감초 역할을 넘어 주류로 부각되고 있다.

역설적으로 지극히 호감 가는 연예인들은 살아 남기 위해 ‘비호감’의 인기 공식을 추종하고 있다. 반듯한 외모와 성품으로 잘 알려진 이들이 서슴없이 기존의 좋은 이미지를 버리고 못나 보이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KBS 1TV ‘별난 여자 별난 남자’, SBS ‘하늘이시여’, ‘어느날 갑자기’, KBS 2TV ‘소문난 칠공주’ 등 시청률 상위권을 장악한 드라마는 모두 현실감과는 상당한 거리를 둔 작품들이다.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비상식의 강도는 거세지고 있다. 드라마에 판타지 요소가 필요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다. 시청자의 비난 의견도 강해지지만 인기 만큼은 비난 여론과 정반대 양상이다.

오히려 SBS ‘연애시대’ 등 현실 속에서 잔잔한 재미를 추구하는 작품들은 기대 이하의 반응을 얻고 있다.

드라마 제작의 추세도 비현실적인 상황의 재미를 추구하는 방향을 택하고 있다. 남자 주인공은 건달 캐릭터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여자 주인공은 모조리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형 캐릭터들이다. 건달과 캔디가 만나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사랑을 나누고 있다.

이처럼 비호감과 비상식이 브라운관을 장악하면서 프로그램들이 전체적으로 1회성 재미를 추구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깊이 있고 여운을 남기는 재미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순간적인 재미를 좇는 경향을 띄게 되는 것이다. 이는 좀더 자극적이고 독한 아이템과 시추에이션을 필요로 한다.

결국 독(毒)으로 독(毒)을 제어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는 셈이다. 독은 자신을 해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안방극장의 추세는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계속 독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듯한 인상이다.


이동현 스포츠한국 기자 kulkuri@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