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퀼리브리엄

제작 단계부터 논란이 되어 온 영화 '다빈치 코드'가 개봉하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모나리자'가 영화의 티저 광고에까지 등장했다. 영화 덕에 모나리자 그림을 직접 보러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하니 영화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만하다.

하지만 행여나 카메라 조명에 그림이 조금이라도 손상될까 실제 영화 촬영 당시에는 모조품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프랑스인들이 애지중지하는 명화 '모나리자'. 그런데 이 그림이 불태워지는 일이 벌어졌다. 물론 역시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명화를 모욕한 영화는 이름부터 독특한 ‘이퀼리브리엄’이다. 영화는 '모나리자' 그림을 불태우며 시작한다.

영화의 배경은 제 3차 대전이 일어나고 난 후 디스토피아에 빠진 지구. 제 4차 대전이 일어날까 두려워진 인간은 갈등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간에게서 모든 감정을 제거하는 통제사회를 구축한다.

'리브리아'라고 불리는 이 사회 안에서 인간들은 모든 욕망을 잠재우는 '프로지움'이라는 약을 투약받고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간다.

'모나리자'를 비롯해 베토벤, 모짜르트의 음악 같은 모든 예술작품은 인간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금지된다. (영화 제목 ‘이퀼리브리엄’은 고뇌가 없어진 평정의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프로지움 투약을 거부하고 정권에 저항하는 반군세력은 지하세계를 만들어 책, 미술, 음악을 통한 예술을 향유하며 인간 고유의 감정을 잃지 않으려 하고 이러한 반군세력을 소탕하기 위해 리브리아의 독재자는 엘리트 특수요원 '클레릭'을 선발해 통제를 더욱 강화한다.

영화의 주인공 존 프레스턴은 반체제 인사를 제거하기 위해 투입된 최고 엘리트 요원이다. 그러나 예술작품을 소장한 혐의로 체포된 반군 여성을 만나면서 묘한 감정의 동요을 경험한다.

프로지움 투약을 중단한 존 프레스턴은 감정이 말살된 사회의 무자비함을 느끼고 서서히 반군의 협조자가 된다.

이처럼 영화의 메시지는 간결하고 예상만큼 비주얼은 비장미 넘치고 그로테스크하다. 하지만 영화는 사실 개봉 당시 미국 평론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아마도 영화 ‘매트릭스’로 SF영화가 가질 수 있는 상상력의 최대치를 경험한 관객들이 이 정도 콘셉트에 혹할 리 만무하다는 얘기일 테다. 사실 영화가 말하는 감정 통제라는 것부터 허점투성이라면 투성이다.

인간의 의식을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눈다고 하면 하나가 고통이나 촉감을 느끼는 현상적 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믿음, 욕구, 의도를 갖는 지향적 의식이다.

영화는 현상에 대한 정서적 의식과 대상에 대한 지향적 의식을 구분해 각각을 통제하려는 사회를 그리고 있지만 문제는 인간의 의식은 이원적으로 분리할 수 없는 대상이라는 데 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감정을 잃은 인간의 모습은 SH 걸작 ‘신체강탈자의 침입’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처럼 섬뜩하게 보이고 이들과 달리 베토벤 교향곡을 들으며 전율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진지한 농담처럼 유머러스하다. 또한 반군 세력들이 애완동물을 키우고 그림과 음악을 감상하기 때문에 사회 위협인물이라는 설정은 나름대로 가치 전복적이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 전쟁을 치르는 아이러니한 영화 ‘이퀼리브리엄’. 감정을 말살시킨다면서도 등장 인물 대다수가 분노하는 오류를 피하지는 못했지만 주인공 프레스턴만큼은 홍콩 느와르가 부활한 듯 기막히게 총알을 잘 피한다. 이런 액션신 덕택에 관객의 비난 총알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