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전쟁 / 바턴 빅스 지음 · 이경식 옮김 / Human&Books 발행 / 2만 3,000원

상당 부분 환투기세력에 의해 촉발됐다고 여겨지는 1997년 외환위기, 국민의정부 시절 외국 금융자본에 떼밀리듯 줄줄이 팔려 나간 은행들, 최근에 와서 불거진 외국 자본들의 ‘먹튀’ 논란….

근 10년간 한국 사회에서 헤지펀드·사모펀드·핫머니 등 투기적 자본은 상종 못할 악의 존재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한편으로 한국은 투기 자본이 활동하기 좋은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세계적 금융자본주의 체제에 깊숙이 발을 들이는 중이다.

주식 및 파생상품 시장은 점점 몸집이 불어나고 내로라하는 국내 대기업 중 외국계가 대주주 아닌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론스타·칼라일 등의 행태는 무턱대고 비난만 할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기업 지배구조를 깊이 반성하고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 일이라는 일각의 논리가 힘을 얻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런 모순적 상황에서 헤지펀드 사람들의 속성을 파헤친 바턴 빅스의 신작 ‘투자 전쟁’이 국내에 발빠르게 소개된 것은 시의적절하다. 하지만 투자(혹은 투기)라는 행위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따라 독자가 이 책을 대하는 태도는 첨예하게 갈릴 수 있는 논쟁적 내용도 일부 담겨 있다.

번역자의 표현을 빌자면 “이 책은 투자 전쟁의 가장 치열한 격전지인 월스트리트에서 날아온 생생한 르포이다.”

이 르포의 품질을 보증하는 것은 바로 저자 빅스이다. 그는 미국 최대 투자기관 모건스탠리에서 30년간 투자전략가로 활약하다가 지금은 10억 달러 규모의 헤지펀드를 직접 운용하고 있는 월가의 터줏대감이다.

그는 막대한 투자금을 모아 그 돈의 수십 배 되는 차입금을 보탠 뒤 대박 아니면 쪽박인 머니게임에 전념하는 투자가(혹은 투기꾼)들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읽는 이의 교감신경까지 팽팽해지게 만드는 긴장감이 있다.

빅스는 투자 실력만큼 빼어난 솜씨로 투자 전쟁의 복판에 선 인간 군상을 묘사한다.

으리으리한 저택과 자가용 비행기를 꿈꾸고, 어디로 튈지 모를 장세를 예측하는데 골몰하고, 수십억 달러를 모아준 투자자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는, 헤지펀드 투자가의 전형적인 삶을 거듭 서술하면서도 인간성·사교 방식·투자 스타일 등 제각기 독특한 캐릭터를 놓치지 않는다.

말단 투자영업 사원으로 늙어가다가 생애 마지막에 스타급 단기 투자가로 떠오른 저드슨의 사례는 생생한 캐릭터와 이야기의 반전이 맞물려 등골이 오싹할 정도다.

“투자는 과학이라기보다는 예술”이라 말하는 그는 이처럼 월가맨들의 흥망성쇠를 총체적 개성과 결부한다. 덕분에 독자는 초를 다투는 생존 전투를 치르는 이 ‘낯선 자들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삶의 양상을 한층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베테랑 투자가로부터 한 수 배워볼 요량으로 책을 펼쳤더라도 수확이 제법 쏠쏠할 것이다.

빅스는 워렌 버핏 등과 더불어 가치투자를 지향하는 대표적 인물. 하지만 추세 분석과 시장 심리를 중시하는 모멘텀 투자가의 입장도 열린 마음으로 다루고 있다.

또 일반적인 주식투자뿐만 아니라 해외 포트폴리오 투자나 금·미술품 등 실물투자도 자주 거론되니 행간까지 꼼꼼히 읽어낸다면 그 또한 투자기법 공부에 도움은 될 듯싶다.

빅스는 이른바 ‘달러-월스트리트 체제’라고 불리는, 1970년대 이후 갈수록 세계화되고 있는 금융자본주의를 전적으로 긍정한다. 일말의 회의도 엿볼 수 없다.

그가 묘사한 헤지펀드 투자가들의 치열한 삶에서 매력을 느끼는 독자가 많아질수록 이 미국 주도의 경제 체제에 대한 정서적 호감 또한 저변이 넓어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한데 의미심장한 것은 그가 투자가란 “시장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성립하는 직업이라고 언급한 점이다.

자본주의체제의 첨병에서 활약하는 자신들의 역할이 사실은 자본주의를 안정화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임을 은연 중에 내비친 셈이다.

그래서 세기 말에 들이닥쳤던 투기자본의 여파가 가시지 않는 한국의 독자 중에는 벚꽃처럼 피고 지는 월가맨의 삶에서 화려함보다는 왠지 불길한 징후를 엿보는 이도 상당할 것 같다. 앞에서 이 책이 논쟁적이라 한 것은 이런 까닭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