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 전쟁의 문화사 / 존 린 지음/ 이내주·박일송 옮김 / 청어람미디어 발행 / 2만8,000원

'전쟁의 문화사'라는 제목에서 독자는 이 책이 기존의 전쟁사를 포스트모던적인 관점으로 재구성한 저작이겠거니 짐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의 역사학 교수이자 저자인 존 린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정통적이고 담론적인 것에 가깝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9·11 테러에 이르는 광범위한 전쟁의 변천사를 훑으면서 필자는 변화의 동력으로서 ‘담론’에 주목한다.

그는 “특정 주제에 대한 가정, 인식, 기대, 가치관의 총체”로 담론을 정의한다. 하여 담론은 시대에 따라, 동시대라도 문화권에 따라 상이한 형태를 지니는데 이것이 실제 전투행위와 상호작용하면서 전쟁의 특정한 성격을 빚어낸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시대문화적 요소를 중시하는 그는 전쟁 전반을 뭉뚱그려 일반화하려는 논의 일부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다. 우선 군인을 비인격적 존재로 표준화해서 인식하는 ‘보편적 군인’ 개념과 기술의 발전 궤적에 따라 전쟁 방식이 변해 왔다는 기술 결정론을 문제 삼는다.

2차대전 초반 프랑스와 독일의 승패를 가른 전차의 상반된 스타일이 좋은 예다.

프랑스가 기존 전투 방식을 답습하며 화력과 외장에 치중한 데 반해, 독일은 포와 장갑을 줄여 기동성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뒀다. 기술력은 비슷했지만 전투에 대한 담론을 달리한 까닭에 독일 전차는 프랑스의 것을 압도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또 서구적 전쟁이 중요한 전투, 즉 결전에서 승부가 판가름되는 전통을 계승해 왔다는 인식도 필자는 부정한다. 나폴레옹 이전의 장군들은 ‘전투는 어떻게든 피하는 게 상책’이라 여겨왔다는 것.

전쟁사에 큰 관심이 없을지라도 저자가 폭넓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짚어주는 전쟁의 풍경은 자못 흥미롭다.

그에 따르면 중세에 성행했던 마상 시합은 기사도라는 격조 높은 담론을 읊조리면서도 전장에 가면 자신에게 잠재된 야만성을 드러내야 했던 이율배반적인 기사 계급이 정신 건강을 위해 고안해낸 '완벽한 전쟁'이라는 것.

이런 가식적 장치조차 기사들의 위선을 감당하지 못하자 교회는 십자군 전쟁을 제안해 이교도를 상대로 파괴 본능을 맘껏 발현하라고 부추긴다.

이후 바로크 미학에 심취된 17, 18세기 프랑스 군대는 시쳇말로 ‘폼생폼사’였다. 그들은 당대 유행하는 패션의 군복을 입었고, 곧디곧은 선형 대형으로 정렬해 기하학의 미학을 구현했으며, 상대가 먼저 사격을 가하길 끈기있게 기다리는 사내다움을 과시했다.

태평양 전쟁 때 미군과 일본군이 유례없을 만큼 서로를 적대했던 이유로 저자는 문화적 편견을 든다. ‘국가를 위한 전사’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일본군의 전쟁 문화는 오직 ‘내가 살기 위해’ 상대를 죽이는 것이라 여기던 미군에겐 경악 그 자체였다.

일각에서 논의되는 인종적 편견보다 이런 문화적 차이가 당시 증오 속에 자행된 포로 학살·시신 훼손 등을 잘 설명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이와 같은 흡인력 있는 사례들은 전쟁의 특이성이 형성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저자의 주장을 일관성 있게 뒷받침한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긴 서술은 테러리즘이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갈무리된다. 9·11사건과 그로 인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일어난 전쟁을 다루면서 저자는 테러리즘을 전쟁의 영역에 포섭할 것을 제안한다.

이를 위해서 앞으로의 전쟁(정확히 말하면 미국의 전쟁)은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것뿐만 아니라 점령지의 평화를 유지하고 국가를 재건하는 작업까지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테러리즘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에는 일견 미국 중심적 사고가 짙게 느껴진다.

사실 민감한 독자라면 밀도 있는 논의 전개에 어울리지 않게 그의 정치적·철학적 근거가 성글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것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