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흘림골~오색약수

인제와 양양 사이에 솟아 있는 설악산(1,708m)은 한반도 최고 명산이라는 북녘의 금강산(1,638m)과 쌍벽을 이룰 만큼 빼어난 자태를 자랑한다.

한계령 남쪽에 있어 흔히 남설악이라 불리는 점봉산(1,424m)은 갖가지 기암괴석이 하늘을 향해 찌를 듯 솟아있고, 그 사이를 흐르는 계류엔 수많은 폭포와 담(潭)이 연달아 나타나 선계(仙界)와 같은 곳이다.

설악의 속살에서 샘솟는 오색약수

우리나라에서 첫손 꼽히는 구절양장 아름다운 고갯길인 한계령을 넘은 뒤 양양의 오색지구에서 약수교를 건너면 맑은 계류 옆 암반에서 솟아나는 오색약수가 반긴다. 톡 쏘는 맛이 강하면서 철분 맛도 진한 오색약수는 위장병, 신경쇠약은 물론이요, 피부병이나 신경통 같은 데에 좋다고 일찍이 소문이 났다.

오색약수터엔 모두 세 개의 약수공(藥水孔)이 있다. 아래쪽 물가에 두 개가 가까이 붙어 있고, 거기서 상류로 1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나머지 하나가 있다. 아래쪽은 남성들이 마시는 양(陽)약수요, 위쪽은 여성들이 마시는 음(陰)약수다. 예전엔 양약수의 물맛이 더 강했으나 요즘엔 음약수 물맛이 더 진하다.

이 지방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오색약수는 조선 시대인 1500년 무렵에 오색석사(五色石寺)의 승려가 처음 발견하였다고 한다.

1970년대 중반의 조사 기록을 보면 당시 용출량이 3개의 약수 구멍에서 하루에 나오는 양이 무려 4,852ℓ로 거의 5,000ℓ나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1990년대 중반 이후 갑자기 용출량이 줄어들어 이젠 약수 한 모금을 마시기 위해선 한참 동안 기다려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주민들은 용출량이 급감한 원인을 1994년 오색온천지구에 새로 들어선 호텔 측에서 개발한 탄산온천 탓이라 보고 있다.

오색온천은 원래 알칼리온천인데, 나중에 입주한 호텔 측에서 온천을 개발할 때 탄산약수가 지나는 수맥에 온천공을 뚫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래서 주민들과 온천측은 책임 소재를 놓고 최근까지 서로 법정 공방까지 벌이기도 했다.

오색약수의 대안으로 등장한 게 바로 주전골에 있는 제2오색약수. ‘원조’ 오색약수라 할 수 있는 오색약수터에서 주전골을 향해 상류로 1km 정도 거슬러 오르면 온정골과 주전골이 합류하는 암반에서 솟아나는 제2오색약수를 만나게 된다.

예전엔 제2약수를 안내하는 팻말도 없었고 사람들의 발길도 뜸했지만, 원조 오색약수가 명성을 잃으면서 요즘엔 방문객들이 많다.

제2약수로 가는 도중에 만나는 성국사는 옛날 오색석사터에 새로 지은 절집이다. 전설에 의하면 후원에 다섯 가지 색의 꽃이 피는 나무가 있어 오색사라 하였다고 한다. 경내엔 원래 대웅전 동서에 통일신라 양식으로 쌓은 두 개의 탑이 있었으나 동탑은 허물어져 파편들만 남아있다. 오색리삼층석탑이라 불리는 서탑은 1968년 복원되어 보물 제497호로 지정되었다.

신혼 여행객들의 단골 코스였던 흘림골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이처럼 오색지구에서 오색약수를 거쳐 제2오색약수를 지나 선녀탕까지만 다녀오지만, 만약 걷는 데 자신 있다면 흘림골 산행도 곁들여보자. 흘림골을 출발해 등선대에 오른 후 주전골의 선녀탕을 거쳐 오색약수로 하산하는 코스는 눈과 마음을 놀라게 만드는 비경의 연속이다.

한계령 정상의 휴게소에서 44번 국도를 타고 양양 방면으로 2.5km쯤 내려가면 오른쪽에 흘림골 입구를 알리는 입간판이 서 있다.

1985년 자연휴식년제에 들어간 후 20년간 속살을 드러내지 않다가 2004년에 개방한 흘림골은 1970~80년대 신혼 부부들의 단골 여행 코스였다. 흘림골의 명소는 여인의 상징을 닮았다는 여심(女深)폭포. 이 폭포수를 받아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 때문에 신혼 부부가 많이 찾았다고 한다.

만물상 정상인 등선대(1,002m)는 여심폭포에서 가파른 깔딱고개를 30여 분 올라야 한다. 고갯마루에서 송글송글 맺히는 땀방울을 훔치며 왼쪽 길로 5분쯤 오르면 남설악 최고의 전망을 선사하는 등선대가 나타난다.

정상은 큼직한 바윗덩이로 이루어져 있어 오르기가 조금 까다롭지만 중간중간에 밧줄이 설치되어 있다. 조심스레 정상에 오르면 기묘한 만물상과 한계령 너머로 대청봉이 손에 잡힐 듯하니, 정말 신선의 경지가 따로 없다.

하산길은 옛날 도적이 숨어들어 위조 엽전을 만들었을 만큼 깊디깊은 주전골로 이어진다. 주전골 역시 기묘한 암봉과 폭포가 연이어 나타나는 별천지다. 등선폭포, 무명폭포, 주전폭포, 십이폭포, 선녀탕 등이 쏟아지는 계곡은 더 없이 시원하다.

산행 길잡이

흘림골~여심폭포~등선대~주전골~선녀탕~제2오색약수~오색약수 코스는 산행 시간만 3시간30분~4시간 정도 걸린다. 이 코스는 제법 가파른 구간도 있으므로 노약자와 동행했을 땐 산길이 험하지 않고 산행 시간도 왕복 2시간 정도면 넉넉한 오색약수~제2오색약수~선녀탕 코스를 다녀오는 게 좋다.

교통

△ 서울→ 6번 국도→ 양평→ 홍천→ 44번 국도→ 인제→ 한계령→ 2.5km~흘림골 입구→ 5km→ 오색약수 입구. △동서울터미널에서 매일 13회(06:30~18:40), 상봉터미널에서 3회(08:30~18:00), 대전 동부터미널에서 매일 2회(09:20, 16:00) 운행.
△ 양양버스터미널에서 오색행 직행버스가 매일 18회(07:00~19:20) 운행.

숙식

오색지구엔 온천욕을 곁들일 수 있는 그린야드호텔(033-672-8500), 오색온천장(033-672-4088), 설악온천장(033-672-2645), 약수온천장(033-672-2645) 등을 비롯해 오색펜션(033-672-3700), 남설악펜션(033-672-8998) 등 숙박업소가 많다. 오색지구의 식당들은 대부분 산채비빔밥(1인분 6,000원)을 차린다. 맛있는 된장찌개도 곁들여 나온다.




글·사진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