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춘년은 쌍춘년인가. 200년 만에 한번 온다는 쌍춘년 덕에 결혼식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유명 연예인에서부터 재벌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쌍춘년 백년해로를 꿈꾸는 듯하다. 하지만 이럴 때 꼭 불청객이 있다. 유명인들에게는 결혼식을 마치 도떼기 시장으로 만들어버리는 취재진들이 불청객이면 불청객일 테고 일반인들에게는 축의금 안 내고 밥만 먹고 가는 사람이 얄미운 하객일 수 있다.

이런 불청객을 미국에서는 이른바 '웨딩 크래셔'라고 부른다. 이들은 남의 결혼식에 연고도 없이 찾아와 피로연 음식을 먹으며 파티에 무임승차하는 족속들이다.

종종 인터넷을 뒤지다보면 웨딩 크래셔되는 법도 나와 있다. 예를 들어, "대충 'Bob'의 친구라고 얼버무린다(아랍인 결혼식의 경우에는 모하메드면 다 통한다). 튀지 않는 복장에 어느 정도 취기가 올랐을 때 피로연장에 등장한다" 등이 가이드 라인이다.

그런데 영화 '웨딩 크래셔'는 웨딩 크래셔들이 공짜로 술과 음식을 즐기며 더 나아가 결혼식 전문 작업남으로 활동하는 행적을 다루고 있다. 이들은 성스러운 결혼식을 대놓고 만남의 장으로 활용하며 서슴없이 원나잇 스탠드를 시도한다.

하지만 왠지 여자들도 그런 작업남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사실 결혼식에 가는 싱글녀들이라면 은근히 남자의 작업을 기대되기 마련이다. 작업걸고 싶고 작업당하고 싶은 싱글남녀들의 응큼한 속셈, 이것이 이 영화의 은근한 재미다.

영화의 주인공은 이혼전문 변호사인 존과 제레미. 이들은 결혼식에서 여자 꼬셔서 하룻밤 보내기를 유일한 낙으로 여기며 사는 전문이자 악질 웨딩 크래셔다. 이들은 웨딩 크래셔되기 수칙을 경전처럼 외우며 실전에 임한다. 그 덕에 중국인, 일본인, 아랍인 할 것 없이 국경을 초월한 결혼식이 그들의 작업무대가 된다.

그런데 결혼식의 유흥과 환락의 즐거움에 빠져살던 그들에게 새로운 도전 과제가 생긴다. 바로 재무부장관 클리어가의 장녀 결혼식. 더이상 화려한 결혼식은 있을 수 없다.

클리어가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한 존과 제리미는 의심 없이 결혼식장에 침투하고 클리어가의 두 딸에게 속칭 '필'이 꽂힌다. 하지만 이 두 딸, 만만찮은 상대다. 여기에 게이 남동생과 영계 밝히는 엄마, 딸의 거들먹거리는 애인까지 합세해서 존과 제레미를 가만두지 않는다.

영화는 존과 제레미를 연기한 오웬 윌슨과 빈스 본의 슬랩스틱 코미디 연기와 엽기적인 주변인물들의 황당한 상황 연출로 재미를 끌어낸다.

특히 벤 스틸러와 잭 블랙, 오웬 윌슨과 함께 최고의 코미디 사단 프렛 팩(Frat Pack)의 멤버인 빈스 본은 현재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의 신예 스타로 인정받고 있다. (프랫 팩은 1960년대 프랭크 시나트라와 친구들을 일컬었던 랫팩(Rat Pack)을 본따 만든 말로 프랫은 대학교 남학생 사교클럽인 프래터니티의 준말이다.)

새롭게 뜨는 프렛 팩 멤버 빈스 본의 힘이었는지 영화는 미국 개봉 당시 3주 만에 1위에 오르며, 예상 외의 대히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눈에 띄는 흥행성적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아마도 축의금 문화가 확실하고 결혼식 피로연이 별볼일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웨딩크래셔 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인 모양이다.

그런데 얼마 전 우리나라 결혼식에도 부쩍 초대받지 못한 결혼 불청객, 웨딩 크래셔들이 기승을 부렸다고 한다. 바로 5.31 지방선거 후보들. 유권자를 만나기 위해 결혼식을 찾은 이들이 공짜로 밥과 음료를 축냈나고 하니 정치인들, 어디 공짜로 민심 얻기가 쉬운가.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