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와 절제 · 균형의 미에 현지인 · 월드컵 관광객 찬사

월드컵, 한국의 영광은 끝나지 않았다.

비록 축구 국가대표팀이 16강 진출에 실패, 일찍 짐을 싸야 했지만 또 다른‘국가대표’가 현지에서 한국을 빛내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대표적 휴양도시 바덴바덴에서 6월 5일 막을 올린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조각가‘문신 조각전(MOON SHIN in Baden-Baden)’이 바로 그것이다.

바덴바덴 · 마산시 공동 주최

‘88 서울올림픽’개최지 발표가 이뤄졌던 도시에서 한국과 독일이 나란히 월드컵 개최국이 된 것을 기념해 문신(1923-1995)의 고향 마산시와 바덴바덴시가 공동으로 조각전을 주최한 것이다.

문신 조각전은 월드컵을 맞아 독일에서 열리는 최고의 문화행사로 꼽히고 있다.

개막식 때부터 독일 15개 언론사와 유럽 신문,방송사가 앞다퉈 조각전을 보도하고 현지 독일인과 관광객, 각국 월드컵팬들이 조각품에 찬사를 보내고 있어 ‘문화 한국’의 위상이 크게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문신은 1961년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며 유럽 여러 도시에서 전시회를 가져 잘 알려져 있지만 바덴바덴에 소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9월 10일까지 3개월 이상 계속되는 전시에는 대형 스테인리스스틸 4점과 브론즈 6점 등 10점이 설치됐다.

본래 조각전은 월드컵 기간에만 열릴 예정이었으나 작품에 경탄, 입까지 맞추며 관심을 보인 바덴바덴 지그룬 랑 시장등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9월까지 연장됐다.

조각전 개막식은 5일 오전 11시, 바덴바덴의 유서 깊은 쿠어하우스 정원 야외 음악당에서 거행됐다. 성령강림절 축제로 휴일이었던 이날 이상기온으로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현직 장관, 정치인, 예술인, 기자단 등 600여 명의 많은 관람객이 함께 자리했다.

특히 마산 MBC의 후원으로 독일 지휘자 마티스 안데르센(만하임 음대 교수)이 이끄는 앙상블이 윤이상의 음악으로 작은 축하 음악회를 열어 조각전의 의미를 뜻깊게 했다.

문신과 윤이상은 고향이 경남 마산과 통영이며, 유럽에서 국제적 명성을 획득한 데 이어 1995년 같은 해에 타계, 남다른 인연이 있다. 두 위대한 예술가가 월드컵 기념 문화행사를 통해 특별한 인연을 이어간 셈이다.

지구룬 랑 시장은 개막식 인사말에서“문신 초대전은 우리에게 한국의 조각예술에 대해 일별하게 하는 특별한 전시회로서, 시내 곳곳에 전시된 대형 조각품들을 보고 경탄하는 사람들이 한국 문화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갖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황철곤 마산 시장은 한국과 독일의 분단된 역사와 월드컵을 개최한 공통점을 언급하고 문신 예술의 주제인‘화(和, 통일)’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바덴바덴은 로마 황제들이 즐겨찾던 온천들과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니예프, 푸쉬킨, 고골, 독일의 작곡가 슈만과 브람스가 살았던 유서깊은 도시다. 문신의 조각작품들은 바덴바덴시 언덕의 고성을 배경으로 푸른 숲과 고풍스런 건물이 어우러진 도심에서 햇빛을 받으며 진귀한 보석처럼 빛났다.

시내 중심 ‘오스’ 시내가 흐르는 다리 위에 설치된 조각 ‘화(和) I’를비롯해 레오폴드 광장에는 조각 ‘우주를 향하여’, 왕족을 비롯해 유럽 귀족들의 산책로로 유명했던 리히텐탈러 알레 옆 초원 위에 설치된 조각 ‘화(和) II’. 소피엔슈트라세를 따라 놓인 청동조각들.

특히 바덴바덴이 자랑하는 독일 최대의 오페라공연장 페스트슈필하우스(축제극장) 옆 잔디에 자리한 대형조각 ‘화(和) III’는 시내로 들어서는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번 전시를 추진한 쿠르트 리벤슈타인 문화 담당 시장은 “문신의 조각은 긴장과 조화가 느껴지는 훌륭한 작품”이라며, “특히 페스트슈필하우스 옆에 전시된 조각 ‘화(和) Ⅲ’는 돌려주고 싶지 않을 만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관람객들은‘시메트리(좌우균제, Symmetry)’에 빛나는 문신의 조각에서 동아시아의 조화와 절제 및 균형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며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현지 독일인뿐만 아니라 바덴바덴 시내의 영국 축구대표팀 숙소를 찾아 온 2,000여 명의 영국팬,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발길을 멈추고 조각품을 만져보고 감상하며 작품해설을 읽고 토론을 벌이는 등 한국의 세계적 작가의 작품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1970년대에 독일에 왔다는 간호원 출신의 동포는“독일 언론에 크게 보도된 것을 보고 인근 도시에서 왔다”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조각품에 감탄하는 것을 보고 한국인으로 뿌듯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리벤슈타인 시장은 “이곳 인구는 4만5천명에 불과하지만, 성수기 하루 평균 유동인구는 백만 명이라면서, 문신 전시회의 홍보 효과도 그만큼 크다”고 자랑했다.

이번 전시회를 준비한 바덴바덴시 ‘갤러리 프랑크 파제스’의 파제스 사장은 “전시회를 수 십 년간 해 왔지만, 관람객들이 하나같이 ‘분더쉔! wunderschön! (너무 멋져요!)’을 연발하며 이 작품들이 영원히 여기 남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전시회는 평생 처음”이라며 흥분했다.

21세기의 화두는‘문화’라고 한다. 예술문화 수준이 국력의 척도가 되는 시대다. 지구촌 축제인 월드컵시즌에 맞춰 역사와 문화의 유서 깊은 도시 바덴바덴에서 열리는 문신 조각전은 개인차원의 영광을 넘어 문화 한국의 힘을 세계에 과시하는 국가적 경사가 되고 있다.

뛰어난 천재성… 70년대 세계적 명성

문신은 국내보다 해외에 더 알려진 작가다. 작고한 예술가임에도 세계 각국은 그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접촉을 해오고 있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기념해 문신 조각전을 준비 중이고 문신이 주로 활동한 프랑스에서는 내년에 대규모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문신 예술의 천재성과 세계성은 일본 도쿄미술학교를 다닐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으며 해방과 함께 귀국, 20대에 전국을 순회 전시하면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당대 최고 평론가인 근원 김용준은 "혜성같이 빛나는 문신 군이 등장했다"며 상찬의 평문을 쓰기도 했다.

문신은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가 독창적인 작품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70년 남프랑스 뽀르-발카레스 국제 조각전에 특별 초청돼 높이 13미터의'태양의 인간'을 발표해 참가자 및 세계 조각계 관계자들로부터 "최고"라는 격찬과 함께 세계적 조각가로서의 위상을 정립했다.

이후 문신은 파리, 독일 등지에서 각종 포름과 조각전 등에 참가하였으며 루오, 피카소 작품 등과 동시에 초대되기도 했다. 72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 최초 지하철전에는 대형 석고조각을 출품해 센세이션을 일으켜 프랑스 3대 TV에서 이 전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으며 73년 국제 현대미술교류전(파리)에서는 샤갈 등 당대 거장들과 동시에 초대됐다.

70년대 유럽 각 도시에서 국제 살롱전, 그룹전, 조각 심포지엄 등 전시에 참가하면서 세계적 작가로 우뚝 선 문신은 79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귀화 요청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80년 영구 귀국했다.

국내외 조각전을 통해 명성을 알리던 문신은 88년 서울올림픽 국제 야외 조각전에서 25미터 높이의 스테인리스스틸의 대형 조각인인 '올림픽 1988'이란 명작을 창작,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미국 NBC와 영국 BBC가 현장 인터뷰하여 세계 52개국에 동시 위성 생방송함)

90~92년에는 대규모 동서 유럽 회고전을 가져 유고, 헝가리 등 동구권에 한국 예술의 우수성을 알렸을 뿐만 아니라 국교 수립에도 기여, 민간 외교의 전령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작년 스페인 발렌시아 비엔날레에 초대된 문신조각전에는 100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

세계적인 평론가 쟈크 도판느(국제예술평론가협회 정회원)는 "문신의 작품에서 가장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위대한 독창성이다. 이 독창성은 기술적 세련, 영감의 자유, 전통의 존중 등 세 가지의 근본적인 요소가 놀라울 만큼 잘 융합되어 이루어진 것이다"고 평가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