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평전 / 전인권 지음 / 이학사 발행 / 1만 6,000원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을 자전적 회고와 함께 분석한 <남자의 탄생>으로 출판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소장 정치학자 전인권씨가 암으로 우리 곁을 떠난 지도 벌써 1년이다. 그간 유족과 학우들은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던 고인의 유고를 그러모으는 작업에 매진했고 1주기에 맞춰 우선 2권의 책으로 묶는 결실을 거뒀다.

그중 하나인 <박정희 평전>은 고인이 2001년에 완성한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이다. 필자가 생전에 수정·보완해 출간하려 했던 이 책은 이젠 식상하다싶은 ‘박정희 이야기’를 예의 날렵한 논리와 명쾌한 문장으로 다시금 흥미롭게 꺼내 놓는다.

이 책이 수많은 박정희 연구서와 궤를 달리하는 지점은 부제의 한 구절처럼 ‘전기적 연구’라는 성격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전기를 쓰겠다는 뜻이 아니라 마치 전기를 쓰듯 박정희의 사상과 행동을(… ) 시계열적으로 살펴보겠다는 것”이라는 주석을 달았다. 이것으로 박정희의 정치 사상과 행동이 책 주제라는 건 알겠는데 그것을 ‘전기를 쓰듯’ 살피겠다는 건 무슨 뜻일까.

논문의 통상적 이미지가 무색할 만큼 매끈하게 엮인 간결체 문장을 쾌(快)하게 내달리다보면 독자는 그의 지향점을 금세 눈치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 박정희’ 자체에 주목하자는 것.

통치 시절의 정치·사회적 상황 혹은 국제역학과 같은 외부 요인이 아니라 유년 시절에 형성된 성격·사상·행동방식을 실마리 삼아 이 개발 독재 정치가가 살아온 불꽃같은 예순두 해(1917~1979)를 이해해보자는 도발적 제안인 셈이다.

그가 제시하는 ‘박정희 코드’를 짚어내는 데 대단한 수준의 집중력은 필요없다. 순차적으로 다뤄지는 박정희 생애의 각 국면마다 그것들이 되풀이 언급되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심리적 코드는 ‘심리적 고아’. 기존의 정신분석학 개념에 유교적 가족관계를 접목시킨 그만의 독창적 개념이다. 그는 박정희가 평생 견지할 정치사상의 바탕에 이 심리 기제가 놓여 있었다고 단언한다. 손윗형제들과 터울이 큰 막내로 태어나 어머니의 사랑을 독점한 박정희는 좌절한 유생이자 무능력자인 아버지를 경원한다.

경쟁상대를 잃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인 셈인데 이런 상황에서 소년은 이상화된 아버지를 특정 개체 혹은 집단과의 동일시를 통해 추구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심리적 고아로 성장한 박정희가 아버지로 삼을 만한 권위를 발견한 최종 지점이 ‘국가’였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영웅 숭배, 가부장적 인간관계, 계몽주의, 엘리트주의 등 박정희를 특징지었던 정치사상과 신념은 결국 이같은 심리적 외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필자는 간단없이 역설한다.

이런 방향성 있는 서술 덕에 이 책은 기존 연구에 대해 상당히 논쟁적인 위치를 점한다. 박정희의 심리 및 정치사상에 일관성이 부여되면서 그의 정책적·정치적 선택들 또한 음험한 마키아벨리즘이 아닌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일례로 파시즘과 폭력이 난무했던 암울한 시기라는 중론을 거슬러 필자는 유신 체제와 관련해 “그(박정희)에게 있어 장기 집권이나 독재는 부차적인 것이며, 자기 자신이 (…)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는 윤리적 존재라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라던지 박정희는 근대적 개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비민주주의자가 아닌 “몰민주주의자 또는 무민주주의자였다”는 등의 해석을 내놓는다. 입장에 따라서는 박정희 시대를 상당히 우호적인 논리로 평가한다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아쉬운 것은 인간 박정희에 대한 본격 심리 분석이 그간의 연구성과를 짜깁기한 수준에서 서술된 1960, 70년대사(史)를 체계적으로 관통하는 기제라는 느낌이 적다는 점이다.

박정희의 유년에서 나르시시즘, 유기 불안과 같은 심리적 코드를 뽑아내 해방 이후 그가 보여준 리더십과 행보에 적용하는 솜씨는 말쑥하지만, 정작 저자가 누누이 강조하는 ‘심리적 고아 박정희’가 그를 정점으로 전개된 당대 정치사의 전반적 흐름을 충분히 설명해줄 코드인지는 의심스럽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