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권력이동 / 박길성·한준 외 지음 / 굿인포메이션 발행 / 1만4,800원

소신은 있지만 세(勢)가 없다고 평가받던 불운의 정치인 노무현은 민주화에 헌신했던 386 지식인과 정권 창출의 기치 하에 결집한 젊은 네티즌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2002년 대선에서 드라마틱한 승리를 거뒀다.

공공연히 정치 개혁과 자주 외교를 표방하던 노 대통령은 취임 직후 ‘대북 송금 특검’을 전격 수용, 소속당에서마저 구(舊)세력과의 결별을 감행했다. 철저히 시대정신의 순혈을 자임한 참여정부와 이들에게 ‘수구 집단’으로 낙인 찍힌 기득권 세력 사이엔 시작부터 골 깊은 전선(戰線)이 가로놓여 있었다.

비유컨데 이 책을 쓴 7인의 교수들은 이러한 전선 곳곳에 파견된 종군기자다. 취재 내용은 권력이동.

이른바 ‘2002년 체제’는 ‘1987년 체제’에 버금갈 만큼 한국 정치사회 세력 간에 격렬한 헤게모니 싸움을 촉발한 시대라는 게 필자들의 공통 진단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간의 권력이동 논의가 대개 집권세력을 비롯한 파워엘리트의 교체에만 머물고 그마저도 특정한 정견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았음을 지적한다.

“권력이동은 비단 정치적인 것만이 아닌 세대, 이념, 문화, 가치 등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을 동시에 담고 있다”며 한마디로 그 전선은 드넓고도 복합적이라는 것. 그래서 필자들은 각자 주제를 하나씩 걸머지고 격전의 현장을 분석, 논문에 담아낸다.

우선 박길성(고려대)·한준(연세대) 교수는 참여정부의 행태에 초점을 맞춘다. 박 교수는 참여정부가 주창하는 ‘주류 교체’가 내부적 갈등과 모순 탓에 순조롭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특히 노 대통령의 탈권위주의 행보가 권위의 실종으로 여겨지면서 이해집단의 요구와 불만이 통제없이 폭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 교수는 과거청산, 균형발전, 제도개혁, 대외관계 측면에서 노무현 정부가 구사하는 정책적 전략을 분석한다. 이로써 사학법·신문법 개정, 수사권 조정 등 소모적 대립만 야기하는 듯한 사안들이 어떤 틀 속에서 추진되고 있는지 간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한 교수 역시 참여 정부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다. 독자적 비전 제시나 잠재적 우호세력과 연대 없이는 권력이동 방향이 역전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김선혁(고려대) 교수는 세계 양대 슈퍼파워라 할 수 있는 미국과 중국의 집권세력을 분석, 고전하는 한국의 신주류 386세대에 투영한다. 흔히 네오콘으로 지칭되는 미국 신보수주의와 덩샤오핑을 계승한 중국 개혁·개방주의를 짚으면서 필자가 도출하는 결론은 이들이 뚜렷한 권력의지를 갖고 치밀하게 비전과 정책을 가다듬은 세력이란 사실이다.

전상인(서울대) 교수의 화두는 지식권력이다. 냉전·산업화 레짐이 지고 광주·민주화 레짐이 대안적 지식권력으로 부상 중이라는 기본 인식을 깔고 고찰한 전 교수는 하지만 진보·좌파 지식인들이 5·18의 도덕적 권위에 기댄 채 지리멸렬하고 있다고 통박한다.

이남호(고려대) 교수의 논문 ‘상징권력의 이동’은 일상 속 지식·취향·생활양식에 대한 세심한 분석이 인상적이다. 동아리에서 싸이월드로, 백과사전에서 지식거래소로, 워크맨에서 애니콜로 변해가는 생활의 면면은 한국인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어떻게 바꿔가고 있을까. 이 교수는 절제, 논리, 인문학적 사유 등 고급문화가 ‘조야한 아마추어리즘’과 ‘분주한 상업주의’로 대체되고 있다는 탄식으로 질문에 답한다.

이선미(한양대)·함인희(이화여대) 교수는 각각 시민단체와 미디어 부문의 권력이동을 분석한다. 이 교수는 시민단체가 정부·언론과 같은 기존 권력에 기대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는 데 급급했음을 지적하며 시민 참여를 확대할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진단한다.

함 교수는 신문·방송이 순발력 떨어지는 포맷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장악했던 기존의 미디어 환경이 앞으로는 인터넷 매체의 활성화로 변화를 겪게 되리라 예견한다.

한국사회의 역동성을 감안한다고 해도 현 상황은 그저 그런 일시적 국면을 뛰어넘는 격변의 시기라는 것이 중론이다. 신구 권력이 엎치락뒤치락하며 빚어내는 권력 지형을 예견해 보는 일은 단순한 지적 도락을 넘어 존재론적 고민에 가닿는 작업일 수 있다.

중립적이진 않지만 7편의 논문에 담긴 관심과 분석은 시대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 노릇을 해줄 듯싶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