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태 감독 '플라이 대디'

잘난 것 하나 없는 지리멸렬한 주인공이 우연한 만남을 통해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흔히 볼 수 있는 영화의 소재다.

멀게는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등 미국 슈퍼히어로 시리즈가 그렇고 흡혈모기에게 물려 초인적인 능력을 갖게 된 형사의 이야기 <흡혈형사 나도열>도 그런 류다. 일상의 구태와 무력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생활인의 소망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반칙왕>도 같은 류라고 할 수 있다.

40대 가장의 싸움훈련

<플라이 대디>는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영웅으로의 비상을 다룬다. 현실 속에서 불가능한 꿈을 담는다는 측면에서 <플라이 대디>는 관객의 상상적 욕망을 부추기는 판타지다.

가필(이문식)은 40대 가장. 대출받아 산 자기 집 한 칸을 가진 평범한 회사원 가필에게 여고생 딸은 소중한 보물과 같다. 가필의 특별한 것 없는 삶은 애지중지 키운 딸 다미가 힘깨나 쓰는, 있는 집 자식 태욱에게 구타를 당하면서 돌변한다.

복싱 챔피언까지 먹은 우악스러운 놈팽이에게 당한 건 자신의 딸이건만,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힘의 논리가 그의 앞을 가로막는다. 법보다 주먹, 윤리보다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가필은 억울함을 호소할 길이 없다. 끓어오르는 복수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품 속에 칼을 숨기고 학교까지 찾아간 가필. 거기서 그는 미스터리한 싸움꾼 승석(이준기)을 만난다.

약한 자의 기구한 사연을 들은 승석의 친구들은 승석에게 가필의 '싸움 훈련'을 제안하고 40일간의 지옥훈련이 시작된다. 자신의 가족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고된 훈련을 감내한 가필은 마침내 결전의 날을 맞는다.

그렇고 그런 명랑만화에나 나올법한 줄거리를 지닌 <플라이 대디>는 의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원작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영화로 옮겼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인간들의 비상 의지를 형상화한 가네시로의 소설은 일본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테마이다. 원작을 옮기며 재일교포로 설정됐던 고등학생 트레이너는 자연스럽게 한국 버전으로 바뀌었다. 가네시로의 원작은 시나리오를 먼저 쓰고 소설작업을 했을 정도로 '영화적 상상력'으로 쓰여진 글이었다.

<플라이 대디>는 일본판과 다소간의 차이를 보여준다. 원작이 보여줬던 만만치 않았던 코미디 코드는 상당부분 줄어들었고 소심한 가장의 체면세우기를 앞세운 감동을 전면에 내걸었다. 연출을 맡은 최종태 감독의 말대로 아이들에 초점이 맞춰졌던 원작에 비해, 한국판 <플라이 대디>는 가족에 대한 가필의 생각이 중심에 놓인 영화처럼 보인다.

자연스럽게 미스터리한 고교생 승식보다 좌충우돌 가련한 가장 이문식이 드라마의 중심에 있다.

이준기를 위한 이문식의 열연

외견상 <플라이 대디>는 이준기를 위해 만들어진 영화로 보인다.

<왕의 남자>로 일으킨 신드롬에 가까운 열광은 이 여리게 보이는 청년 배우를 시대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준기는 자신의 이미지를 배반하는 극강의 싸움꾼으로 변신을 꾀한다. 그 변신이 썩 나쁜 건 아니지만 대단히 파워풀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문식이 연기한 힘 없고 빽 없는 월급쟁이 가장 장가필보다 영화의 톤은 모두 이준기를 돋보이게 하는데 맞춰져 있다.

그 빈틈을 채워주는 건 이문식의 호연이다. 이문식은 <라이터를 켜라>, <공공의 적>, <범죄의 재구성> 등의 영화를 통해 자신에게 씌워진 코미디 아이콘의 정체성을 조금은 벗는다. 물론, 이 영화에서도 그는 웃기지만 웃음을 위해 캐릭터를 희생하지는 않는다.

그가 연기하는 고개 숙인 샐러리맨 가필은 가진 것 없고 힘 없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추한 소시민들을 잘 살려낸다. 시종일관 달리고 구르고 무너지는 가필의 모습이 가슴에 와 닿지 않는 것은 연기 탓이 아니다. 가필이 딸을 위해 싸움을 배운다는 설정이 비현실적인 이유도 있지만, 비현실적인 설정을 받쳐줄 디테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딸과 부인을 둔 평범한 가장의 일상을 그리기보다는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화면들에 열중하고, 그린 듯 아름답고 다소곳한 아내와 역시 별다른 비중 없이 예쁜 외모만이 돋보이는 딸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가필의 집처럼 생생함이 부족하다. 가장의 고뇌와 콤플렉스가 이처럼 허약한 토대 위에 있는 만큼 영화는 가필의 고통에 집중하기보다 그와 미지의 고등학생 승석이 만나는 장면을 향해 서둘러 달려간다.

승석의 주변 상황 역시 영화 속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으며, 얼굴에 희미한 칼자국이 있는 이 싸움 잘하는 고등학생이 어떤 과거를 지니고 있는지도 주목의 대상이 아니다.

<플라이 대디>는 처음부터 이야기의 생생함에 관심을 두기보다 승석의 매력과 카리스마를 보여주는데 공을 들인다. 승석의 아픈 과거와 가필의 막막한 현재는 단지 그 두 사람이 기상천외한 싸움 수련을 하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짜맞춰진 듯 겉돌기만 한다.

고등학생과 소시민 가장이 스승과 제자로 만난다는 기상천외한 설정이 무게를 지니기 위해서 필요한 현실성이 거세된 영화는 비슷한 소재를 다룬 소시민의 판타지 <반칙왕>과 빈곤층 남성의 인간 승리를 그린 <록키>의 언저리를 어정쩡하게 맴돈다.

자본주의 사회의 냉혹한 규칙에서 도태된 남성의 판타지는 영화 속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해 온 소재이지만, <플라이 대디>는 그 판타지를 소시민의 욕망이 아닌 아이돌 스타를 향한 십대들의 욕망으로 치환하고 만다. 소재의 힘과 이문식의 열연이 애석할 따름이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