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이야기 피터 L. 번스타인 지음, 강남규 옮김/ 이손 발행/ 1만8,000원

순수미술을 전공하는 지인에게 물은 적이 있다. 네가 공부하는 바가 대체 무슨 소용에 닿느냐고. 차라리 디자인 같은 응용미술을 공부하면 성취감도 있고 생계에도 유리하지 않겠느냐고. 아무튼 나 같은 비전공자들은 미술이라고 하면 광고나 상품디자인 분야가 가장 세련되고 전위적이라고 느끼기 십상이니까 말이다.

추궁 어린 질문에 친구는 약간 지겹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 네가 상업적 미술이 참신하다고 여기는 건 10년 전쯤 어떤 배고픈 화가가 시도했던 것을 고스란히 옮겨다 재탕하는 것뿐이라고. 순수와 상업성 사이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을 생각케 해준 여담이다.

미국 월가의 존경받는 원로 피터 L. 번스타인이 1992년에 쓴 책에서 하려는 얘기도 이와 비슷하다. 증권시장의 스타라고 하면 우리는 곧잘 펀드매니저나 자산운용사, 대박 터뜨린 개인투자자 등 현장 플레이어를 떠올린다. 또 이들이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몸소 체득한 교훈이 지금 통용되는 주식투자 원칙을 빚어냈다고 믿는다.

하지만 번스타인은 간명한 격언부터 복잡다단한 계산 공식에 이르기까지 투자 기법을 설계한 이들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그 전위적 존재는 다름아닌 경제학자들. 출간된 지 14년 만에 국내 번역된 이 책은 상아탑의 명민한 지성과 열정적 탐구가 금융시장을 어떻게 풍요롭게 했는가에 관한 소사(小史)다.

연대기적 구성을 취하고 있는 책은 그 필두에 프랑스의 수학자 루이 바슐리에를 놓는다. “금융연구사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업적”이란 평가를 받는 1900년도 논문에서 그는 “투기꾼의 수학적 기대치는 0”이라고 일갈한다. 주가 변동을 예측해 돈을 번다는 건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

완전시장 모델에서 주가 예측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이후 코울스(“예측 성공률은 동전 던지기 확률보다 높지 않다”), 새뮤얼슨(“주가는 기업 내재가치를 정확히 반영한다”), 파머(“투자자의 수익은 시장 평균을 결코 넘을 수 없다”)에 의해 지지된다. 예나 지금이나 투자자 입장에서는 믿고 싶지 않은 냉정한 결론이지만.

이 와중에 마코위츠가 1952년에 내놓은 14쪽짜리 논문이 학계 너머 현장을 강타한다. 그는 시장을 넘어서는 수익률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단 리스크, 즉 원금을 잃는 위험을 각오를 전제할 때만. 그렇다면 수익을 극대화하면서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마코위츠는 답을 내놨다. 리스크 보완적인 종목들에 분산투자하는 포트폴리오 전략이 그것이다는 것. 오늘날 투자의 상식으로 통하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의 원형이다.

분산투자는 토빈(“투자자 성향과 무관하게 최적의 분산투자 조합이 있다”)을 거쳐 샤프에 이르면서 실제로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기법으로 발전한다. 옵션시장의 발흥을 선도한 블랙-숄즈-머튼 트리오의 연구도 마코위츠의 아이디어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한편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경제학자들은 선진적 연구 결과를 현장에서 검증해보는 작업에 적극적이었다.

“마켓 포트폴리오는 어떤 것보다 뛰어나다”는 화두를 붙들고 맥쿠언·버틴·파우스는 명문 투자은행 ‘웰스 파고’를 접수(?), 철저히 시장 평균수익률을 추구하는 인덱스 펀드를 운용했다. 애널리스트-펀드매니저의 역량에 의존해 공격투자를 하던 기존 자산운용 관행에 쿠데타와 같은 행보였다.

로젠버그는 리스크 예측 모델을 연구한 뒤 그것을 전산 솔루션으로 개발해 큰 돈을 거머쥐었다. 리랜드·루빈스타인은 주식 포트폴리오에 옵션을 결합, 주가하락 때도 리스크를 현격히 줄인 ‘포트폴리오 보험’을 히트시켰다. 시장이 품고 있던 학자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킨 멋진 성공사례인 셈이다.

이론과 현실의 가교 역할에 헌신한 경제학자들을 소개하며 저자는 독자에게 역으로 “(증권시장) 연구자들의 세계에 우리가 뛰어들어 볼 것”을 제안한다. 그래야 우리가 접하고 있는 시장의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고 개선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이런 포부까지 품지는 않더라도, 세상을 움직이는 이 거대한 금융시장의 메커니즘에 일말의 호기심을 느껴본 독자라면 일독을 할 만한 책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