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혼

요즘 우리나라 화랑계에서는 중국 현대미술이 대세다. 그림 값은 억대로 치솟고 있고 갤러리들은 중국의 유명 현대미술 작가를 모시느라 야단들이다.

중국 현대미술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냉소적 사실주의’나 ‘정치적 팝아트’로 불리는 중국 미술 속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혼재된 양상이 드러나 있어 서구적 현대미술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생경함을 주기 때문이다.

없어서 못 팔 만큼 인기 있는 중국 현대미술. 하지만 그 태동기에는 폐쇄적 중국사회에서 뿌리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중국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 판위량의 삶은 중국 현대미술의 지난했던 과거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장이머우(張藝謨) 감독과 공리 주연의 영화 ‘화혼’. 이 영화는 기생 출신이지만 중국 최초로 파리 국립현대미술관에 작품을 입선시킨 여류화가 판위량의 삶을 다루고 있다.

판위량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열네 살 때 삼촌 손에 이끌려 기생집에 팔려간다. 그곳에서 판위량은 혁명당 당원이자 세관 관리로 부임한 판찬화를 만나고 그 인연으로 그의 첩이 된다.

평소 수예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그는 판찬화의 친구이자 중국 공산당 총서기인 천두슈의 도움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후에 천두슈의 추천으로 상하이 미술전문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상하이 미술전문학교 교장은 수업 시간에 누드화를 그리게 했다는 이유로 구속된다.

정치적 업압 속에서도 판위량은 누드화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지만 그런 그녀에게 사회적 시선은 냉담하기만 하다. 그러던 중 그는 자신이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판찬화의 본처와 판찬화를 남겨두고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난다.

출신과 성에 의한 차별, 그리고 모든 정치적 억압에서 해방된 판위량은 파리에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펼치고 중국 최초로 파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누드화 ‘나녀’로 입선을 한다. 그 후 다시 중국으로 돌아오지만 중국은 아직 이 혁명적인 예술가를 받아들일 수 없는 예술의 암흑기였던 것. 결국 판위량은 프랑스에서 못다 불사른 마지막 화혼을 불태우며 생을 마감한다.

판위량이 누드화에 집착한 것은 기생 출신의 여류화가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에 대해 일종의 예술적 항거를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아마도 천한 신분에 천한 몸인 자신의 나체가 지닌 그지없는 아름다움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이러한 중국미술의 예술적 항거는 오늘날 중국 현대미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현재도 중국의 현대미술 작가들은 정치적 억압에서 벗어나 외국에서 먼저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중국미술이 세계로 뻗어나가게 된 결정적 계기가 바로 1989년 텐안먼(天安門) 사태. 정치적 억압으로 좌절과 냉소에 빠진 지식인들은 해외 각지로 나아가 시대가 낳은 우울과 냉소를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이것이 바로 ‘냉소적 사실주의’와 ‘정치적 팝아트’라는 중국 현대미술 특유의 장르를 만들어낸 밑바탕이다.

하지만 이제 중국 작가들은 더이상 판위량의 전철을 밟지 않아도 된다. 중국미술에 대한 러브콜이 여기저기서 쇄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7월 말부터 파주 예술인 마을 헤이리에서는 중국현대미술전이 대대적으로 열리고 있다. 걷잡을 수 없는 자유의 방출을 경험하고 있는 중국 현대 미술의 이정표를 확인해보고자 한다면 한 번쯤 방문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판위량이 불태웠던 화혼을 헤이리 마을에 머물고 있는 중국 현대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