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리더십 / 조지 비니·게르하르트 빌케·콜린 윌리엄스 지음 / 권오열 옮김 / 국일증권경제연구소 발행 / 1만5,000원

선악을 선명하게 가르는 세계관, 구악과 구태에 물들지 않은 영웅, 혁신을 위해 숱한 난관에도 굽히지 않는 의지…. 할리우드 영화의 전형적 요소를 나열한 게 아니다. 수많은 경영서에서 어슷비슷 꼽는 리더십의 덕목을 상기해봤을 따름이다.

흔히 인용되는 GE(General Electric)의 전설적 최고경영자(CEO) 잭 웰치나 유럽 최대 전기설비 업체 ABB(Asea Brown Boveri)의 퍼시 바네빅 전 회장을 떠올리면 우리 시대가 갈구하는 ‘혁신적 리더십’의 면모가 더 분명히 그려질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영웅’을 그만 잊자고 말한다. 혁신적 리더의 모델을 용도폐기하자고 제언한다. 중견 경영 컨설턴트인 세 필자는 확고한 비전을 갖고 뚝심있게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란 대개 현실에서 유리된 ‘신화’이기 십상이라고 진단한다.

물론 신화에 근접한 경영자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들은 더 이상 변화한 경영 환경에 부합할 수 없는 존재다. 회계 부정으로 몰락한 엔론의 케네스 레이가 그렇듯 말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달 미국 경제주간지 포춘은 이런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잭 웰치의 경영지침서를 찢어버려라’.

그렇다고 세 저자가 ‘우상 파괴’에 매달리고자 책을 쓴 건 아니다. 이들의 관심은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일’. 조직을 뒤흔드는 변수와 그 진폭이 확장된 오늘날 상황에 맞서 경영 책임자가 취해야 할 리더십의 원리를 구축하는 일에 의기투합했다.

저자들이 표방하는 ‘살아있는 리더십’은 4년에 걸친 실증적 연구에 기대고 있다. 인류학의 참여관찰을 닮은 이들의 연구는 유럽을 중심으로 신임 경영 책임자를 1~2년간 좇으면서, 중요 회의·토론 참가부터 조직 내 인간관계 관찰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이뤄진다. 이렇게 모은 여덟 사례가 13개 항목으로 구성된 저자들의 주장에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참신한 리더십 모델을 만들기 위해 필자들이 상정하는 권력관계는 여느 책의 그것과 차이가 있다. 대개의 리더십 논의는 수익·효율의 극대화를 목표로 조직에 적절한 조치를 가하는 리더의 행태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구도에서 조직원에 대한 리더의 우위는 애초 주어진 것이고 권력은 온전히 그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리더의 권력을 숙명적인 불확실성과 더불어 논한다. 가늠 안 되는 보스의 의중, 고참 직원들의 뚱한 반응, 결정을 저어케 하는 변수들, 자기 능력에 대한 환멸, 심지어 나쁜 몸상태까지 권력이 리더의 손에서 미끄러져 내릴 일은 산적해 있다. ‘권력관계는 일상에 편재해 있다’는 푸코의 권력관과 상통하는 셈인데 이로써 리더는 ‘초인(超人’에서 ‘범인(凡人)’으로 내려와 버거운 책무를 면제 받는다.

나아가 저자들은 리더의 지위와 그 역할에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공식은 없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관계망의 복판에 선 인간으로서 리더가 공인(公人)의 구실과 실존적 욕구 사이에서 갈등을 빚는 것은 당연지사.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조직원에게 의지하고픈 마음을 숨기지 말라는 게 이들의 조언이다.

또 자기 경험과 본능을 굳게 믿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처할 것과 혁신은 기존의 조직 문화에 조화하도록 천천히 해나갈 것을 충고한다. “진정 중요한 것은 리더로 선택된 자와 추종자들 사이에 형성된 관계의 질”이라고 결론짓는 이 책의 지향은 바로 ‘사람이 사람을 위해 일하도록 하는’ 인간적 리더십이다.

카리스마보다 인격이 살아있는 리더십의 요체라 주장하는 이 책은 ‘보통 사람들을 위한 헌사’로 읽히는 측면이 있어 독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한 명 빼고 모두 무난히 성공했다고 인정 받았다는 연구사례 속 리더들은 과연 ‘중성자 잭(Neutron Jack, 잭 웰치 별명)’을 전혀 닮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에서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호인(好人)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이 책을 자기계발서로 삼아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물론 독자에 따라서는 책에서 제안하는 리더십과 그 사례가 밋밋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리더십이란 단어를 제목으로 품은 책을 보면 자연스레 잭 웰치의 큼지막한 얼굴이 떠오르는 시대가 아직 지나지 않은 까닭일 것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