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연예가 핫라인] 잔잔하고 조용한 드라마 외면… '누나' 등 시청률 바닥

시청자들은 ‘자극 없는 잔잔함’에는 더 이상 눈길을 주지 않는 것일까.

SBS 미니시리즈 ‘천국보다 낯선’(극본 조정화ㆍ연출 김종혁)과 MBC 주말극 ‘누나’(극본 김정수ㆍ연출 오경훈)가 상상을 초월하는 부진한 성적을 거둔 데 대해 방송가의 ‘미스터리’가 되고 있다.

‘천국보다 낯선’과 ‘누나’는 이성재, 김민정, 송윤아 등 탄탄한 캐스팅과 관록 있는 연출자 및 작가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은 작품들이다. 영화계에서 탄탄한 입지를 굳힌 이성재와 방송과 영화를 넘나들며 활약한 송윤아, 김민정 등의 출연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가 될 법했고 시청자들의 호응을 기대하게 했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연 뒤 이들 작품의 성적은 처참함 그 자체다.

지난 7월 말 첫선을 보인 ‘천국보다 낯선’은 7%대 시청률에서 출발한 뒤 하락을 거듭한 끝에 8월 말에는 ‘애국가 시청률’에 필적하는 2%대까지 침몰했다. 8월 중순 첫 방송된 ‘누나’는 시작과 동시에 4%대 시청률을 기록하더니 4~5%대 시청률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두 작품의 경쟁작인 MBC 사극 ‘주몽’과 KBS 2TV 주말극 ‘소문난 칠공주’가 워낙 기세등등하기에 부진은 예상됐지만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천국보다 낯선’과 ‘누나’의 극심한 부진은 당초 기대했던 핵심 마케팅 포인트들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점에서 한층 뼈아프다. ‘천국보다 낯선’의 이성재와 ‘누나’의 송윤아 등 영화계에서 입지를 굳힌 스타급 연기자들이 새로운 이미지를 내세워 안방극장으로 돌아온 점에서 기대를 모았지만 결과적으로 악재로 작용한 것이다.

단정한 신사 이미지의 이성재가 초라하고 무능력한 소시민 모습을 보여주는 점에 시청자들은 일제히 외면 모드로 돌입했고, 차분한 30대 요조숙녀 송윤아가 20대 철부지 여성을 연기하는 점은 어색하기만 했다. 주인공이 시작과 동시에 비호감 캐릭터로 자리잡은 점에서 실패로 이어진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작가 및 연출자가 추구하는 편안한 잔잔함 역시 독이 돼 돌아오고 있다.

‘천국보다 낯선’은 ‘햇빛 쏟아지다’, ‘봄날’ 등에서 잔잔하게 시청자를 파고드는 전개로 호평을 받은 김종혁 PD의 장점이 극도의 심심함으로 주저앉아 버린 경우다. 절제된 대사와 차분한 영상은 나름대로 완성도를 갖추고 있지만 도무지 재미를 찾을 수 없었다. 연기자들 또한 흠 잡을 데 없는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지만 역시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심심함에 묻혀 버렸다.

‘누나’는 인간미 넘치는 글로 명성이 높은 김정수 작가가 잔잔한 인간미를 추구했지만 심심함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따뜻한 가족 이야기로 차분한 전개를 이어나가고 있지만 왠지 2000년대엔 어울리지 않는 촌스러운 인상마저 남기고 있다. 김정수 작가가 90년대에 집필한 드라마 ‘엄마의 바다’의 그늘이 너무 짙게 드리워진 점은 ‘누나’를 더욱 심심하게 만드는 요소다.

반면, ‘주몽’과 ‘소문난 칠공주’는 이 시기 짜릿한 갈등 요소를 쏟아내며 ‘천국보다 낯선’과 ‘누나’의 초반부를 초토화시켰다. ‘주몽’은 주몽(송일국)이 태조 책봉 경쟁에서 자진 사퇴해 부여 왕궁을 떠나 고구려 건국을 위한 험로에 접어드는 과정을 다뤘고, ‘소문난 칠공주’는 설칠(이태란)의 출생 비밀을 터뜨렸다.

‘소문난 칠공주’의 경우 그동안 질질 끄는 양상이었던 설칠의 출생 비화를 ‘누나’ 첫 방송에 맞춰 기다렸다는 듯이 내세우는 치밀한 계산적 전개를 펼쳤다. 시청자들은 자극적인 전개에 더 높은 점수를 줬다.

‘누나’의 오경훈 PD는 제작 발표회에서 “요즘 드라마에 독약을 너무 많이 쓰는 경향이 짙다. 자극적일 뿐 알맹이는 없다. 자극 없이도 시청자들이 즐길 수 있는 무공해 드라마로 승부하겠다”고 경쟁작 ‘소문난 칠공주’를 염두에 둔 다짐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시청자는 자극을 더 선호했다.

오 PD의 순수한 다짐이 요즘 시청자의 성향에는 그다지 맞지 않는 모양이다.


이동현 스포츠한국 연예부 기자 kulkuri@sportshankook.co.kr